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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민 앵커가 MBC 뉴스데스크 메인앵커 하차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대문 문화센터에서 열린 동대문포럼에서였다. 표정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MBC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메인앵커 보직을 내려놨을 뿐이라고 말하자 일부 관객들이 안도했다.
신경민 앵커가 MBC 뉴스데스크 메인앵커 하차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대문 문화센터에서 열린 동대문포럼에서였다. 표정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MBC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메인앵커 보직을 내려놨을 뿐이라고 말하자 일부 관객들이 안도했다. ⓒ 오승주

신경민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최근 세상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운하지 않은 뉴스데스크 하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의식했는지 "누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내게 알려달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MBC 보도국 대기자로 일하고 있다.

 

19일 동대문문화센터에서 개최된 동대문포럼에 특별강사로 초빙된 신경민 앵커는 1시간 반 동안 그 동안의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어떤 사실을 보도하는 것에서부터 가치판단이 개입되며, 가치판단 과정에서부터 이미 유불리를 따질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언론의 고민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결국 사실만 보도하더라도 기사의 채택만으로 언론의 관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클로징멘트에 대해서 객관성 운운하거나 앵커의 개인 생각을 공적인 방송에서 한다는 비판들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신경민 앵커의 논리에 따르면 객관적 사실보도 역시 주관적 판단과 기자의 생각이 반영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에서는 '클로징 멘트'와 다를 게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MBC 뉴스데스크 하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결국 클로징멘트 때문에 '불편하신 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격론을 불러왔던 클로징 멘트 사례를 소개했다. 먼저 2009년 1월 1일 신년 뉴스데스크의 클로징멘트는 유명하다. 신 앵커에 따르면 1월 1일 때는 어떤 언론사이든지 "덕담"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멘트도 역시 "덕담"을 콘셉트로 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조작의 사안이 너무 심각하기에 "덕담멘트"를 지우고 문제의 1월1일 멘트를 한 것이다.

 

"이번 보신각 제야의 종 분위기는 예년과 달랐습니다. 각종 구호에 1만여 경찰이 막아섰고요. 소란과 소음을 지워버린 중계방송이 있었습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언론, 특히 방송의 구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시청자들이 새해 첫날 새벽부터 현장실습교재로 열공했습니다." - 1월1일 클로징멘트

 

이에 대해서 제야의 종소리를 담당했던 PD는 성명까지 내고 신경민 앵커에 대해서 "제야의 종소리는 뉴스가 아니라 쇼 아닌가. 신경민 앵커는 쇼와 뉴스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1월 1일 제야의 종소리 현장에서 시민 3만명이 구호를 외치자 당황한 KBS는 볼륨은 사이렌 처리를 하고 종 치는 것을 클로즈로 잡고 아나운서의 멘트를 보이는 등 무려 3가지 색깔로 조작했다.

 

KBS의 화면과 실제 화면을 비교한 동영상이 유포되자 인터넷에서는 "아니 이럴수가!!" 하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신경민 앵커는 이 사안을 그냥 넘어가야 할지 다뤄야 할지를 하루 종일 고민했다고 한다. 이 밖에 이 밖에도 4월 8일 장자연 리스트 관련 클로징멘트에서 "유력언론"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조선일보로부터 3억원의 민사소송을 당했다. (하단에 2번이 신경민앵커 멘트 부분)

 

1. 검찰 수사에서 박연차 리스트와 정대근 리스트가 결국 연결되고, 여권 핵심과 야권 이름이 함께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2. 이 와중에 계속 지지부진했던 장자연 리스트에서는 관련된 유력 언론이 떠들썩하게 거론되면서도 정작 이름이 나오지 않아, 유력 언론의 힘을 내외에 과시했습니다.행정관 성접대 리스트는 슬그머니 줄어들었습니다. - 4월 8일 클로징멘트

 

이 때는 이종걸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행자부장관엑 처음으로 신문사의 실명을 거론한 것이었는데, 신경민앵커가 유탄을 맞은 셈이다. 변호사에게 물었더니 글자 하나가 수백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자천금이다.

 

'실세' 박연차 회장의 '평향기행' 보도 안 한 것 후회돼

 

신경민 앵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자신도 이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고백했다. 다름 아니라 박연차 회장의 '입'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 오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는 것. 그러면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박연차 회장의 기행을 공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말이 2007년 평양을 방북했을 때 박연차 회장 역시 수행원으로 참여했는데, 거기서 박연차 회장은 있을 수 없는 결례를 범했다. 저녁에 연찬회를 여는 자리에서 만취한 박연차 회장은 두 정상에게 불쑥 다가가 술을 권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경우는 양측의 경호인단이 박연차 회장을 제압하고 상황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 하지만 두 정상은 박연차 회장이 권하는 술을 받고 다 마시는 것으로 상황이 종결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식 일정 수행을 위해 평양의 호텔을 나서는데, 수행원 1명이 빠져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박연차 회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관계자들이 호텔 전체를 뒤졌는데 박연차 회장을 찾을 수 없었다. 한참 후에 박연차 회장은 호텔 계단에서 만취한 상태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계단에 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평양에서만 2건의 대형사고를 쳤다. 돌아와서도 유명한 '김해공항 사건'을 일으킨 것도 박연차 회장이다. 만취해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결국 기소까지 당한 사건이다.

 

평양에서 취재하던 공동취재단은 박연차 회장 사건으로 고민했다. 신경민 앵커 역시 이 문제를 다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언론사는 실세 박연차 회장의 기행을 보도하지 않고 "해프닝"으로만 기록했다. 신경민 앵커는 이 날의 선택을 아쉬워하면서 "부질없는 아쉬움이지만 늦게나마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언론이 박연차 회장을 보도하지 않은 것에는 복잡한 사정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는 그가 '실세'라는 점도 작용을 했다. 마치 이명박 정부의 '천신일' 회장처럼. 언론이 '정직'하게 보도하는 것은 당대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이 다시금 확인된 순간이었다.

 

장자연 사건은 우리 사회 '힘의 변화'를 말해준다

 

신경민 앵커는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자연 사건은 예쁜 여자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의 힘의 변화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예쁜 여자 옆에는 권력과 자본이 있었다. 박정희가 암살당할 때 옆에 여자가 있었던 것은 당시의 권력의 지형을 말해준다. 하지만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이 보이지 않는다. 권력에서 '정치'가 밀려나고 그 대신 '언론'이 그 자리를 채운 것이다. 아무도 '조선일보'의 실명을 공개된 자리에서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언론의 힘이 급부상했다.

 

자신이 앵커멘트를 멈추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신경민 앵커는 '앵커'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앵커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는 40년이 넘었지만 이제까지의 앵커는 요약이나 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했다. 하지만 이 고정관념을 없애려는 자신의 노력이 다른 앵커, 특히 타사 앵커들의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클로징 멘트가 나가지 않으면 시청자가 야단을 치고, 민감한 멘트가 나가면 권력이 가만 놔두지 않으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클로징 멘트 때문에 정부에서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는 것도 신경민 앵커로부터 처음 듣는 말이었다. 국가기관 중에서 언론을 모니터링해야 하는 곳이 있는데(예전의 국정홍보처,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등) 거기에 '클로징멘트 모니터'가 신설됐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MBC가 KBS에게 10년 동안 10% 이상의 시청률을 밑도는 이른바 '10-10 장벽'에 균열이 가게 만든 것도 신경민 앵커의 공이다. 지상파의 시청률조사기관인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5월 29일 MBC뉴스데스크는 전국시청률 부문에서 10년 만에 KBS뉴스9를 0.4%(서울/수도권은 1.6%) 앞질렀다. 작은 차이지만 큰 진전이었다.

 

 KBS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국면에서 '조문객'을 '관람객'으로 잘못 표현해 사과방송을 하기도 했고, 특히 5월 29일은 전경들이 운구행렬 저지하는 사건을 조작해 보도하여 비난에 휩싸였다. 이에 비해 MBC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보도하고 비판을 멈추지 않은 점이 큰 점수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월 10일에는 뉴스데스크가 KBS뉴스9를 1.3%(서울/수도권 2.3%)나 앞섰다. 신경민 앵커의 하차에도 MBC뉴스데스크가 날카로운 클로징멘트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로서 MBC와 KBS의 간판 뉴스프로그램 시청률의 균형은 서서히 깨져가고 있다.

 

신경민 앵커는 강연의 결론으로 '젊은이'를 화두로 남겼다. 젊은이들이 뉴스를 자주 봐야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에게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비판언론은 좋은 판단과 좋은 언론의 기초이므로 이를 지켜야 하지만, 시청자들이 언론소비를 이렇게 한다면 비판언론이 절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하철에서는 대부분이 공짜 신문을 보고 있고, '김비서'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어용방송으로 낙인찍힌 KBS 뉴스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MBC 같은 방송사가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말이다. MBC는 최근 비상경영회의를 소집해서 전직원의 상여금을 전면 반납하는 등 고통분담에 들어갔다. 정부가 MBC 등 비판언론의 광고를 검열하고 차단하기 때문에 광고난에 휩싸인 탓이다.

 

강연 중에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100명이 넘게 들어찬 강연장에 젊은 사람이라곤 나를 포함해서 몇명이 되지 않았다. 신 앵커의 '젊은이'와 '언론소비'라는 두 글자가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신경민#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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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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