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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펼쳐진 들판 뒤로 먼 산이 보이는 곳이다. 여덟 살 때쯤이던가! 먼 산을 물들인  빨간 노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가슴이 쿵쾅거리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그때 그 노을을 잊지 못해 오랜 세월 서쪽 하늘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았다. 아직, 그때만큼 아름다운 노을을 본 적이 없다. 

신작로가 있었다. 그 길을 뛰어다니며 벌거숭이 시절을 보냈다. 아주 가끔씩 자동차가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신작로를 달리면 그 뒤를 정신없이 쫓았다.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이 그때는 구수했다. 머리가 한참 큰 뒤 그 이유를 알았다. 내 몸 속에 기생충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 매연이 구수했던 것이다.

우리가족 봄 나들이 (2007년)
 우리가족 봄 나들이 (2007년)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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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서 자전거를 배웠다. 수도 없이 넘어지고 깨지면서. 그렇게 배운 자전거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 길을 타고 학교를 오갔다.

들판 사이에 폭이 약 6m 되는 큰 농수로가 있었다.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예당저수지(충남 예산)부터 당진까지 뻗어 있는 농수로다. 내가 살던 곳은 예산군이 끝나고 당진군이 시작되던 곳이다.

그 농수로에서 여름에는 멱을 감았고 겨울에는 얼음을 지쳤다. 아무리 깊은 강이나 바닷가에 가도 난 절대 주눅이 들지 않는다. 어린 시절 배운 '개헤엄' 덕분이다. 그 개헤엄을 배운 곳이 바로 농수로다. 그 농수로를 어렸을 때는 '수리조합'이라 불렀다.

마을 뒷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마을 앞 들판에 시내를 만들었다. 그 시냇물은 목  마를 때 그냥 떠서 마셔도 될 만큼 깨끗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그 시냇가에서 천렵을 했다. 고기를 잡아 어죽을 끓여 놓고 마실 줄도 모르는 막걸리도 한잔씩 들이켰다. 그렇게 술을 배웠다. 그 시냇가에서.

저녁노을이 아름답고 시냇물이 맑았던 고향

자전거 여행 중에, 양재천(2008년 가을)
 자전거 여행 중에, 양재천(2008년 가을)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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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왔다. 많은 농촌 청년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나도 고향에 눌러 살지 못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도시로 왔다. 답답했다. 목마를 때 맘놓고 퍼 마실 수 있는 시냇물도 없고 더운 여름날 웃통 훌러덩 벗고 멱 감을 수 있는 수리조합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는 아파트가 그리 많지 않아 먼발치로 봉긋한 산이 보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아파트가 그 산마저 다 가려 버렸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온통 고층 빌딩에 고층 아파트 천지다. 

자전거 탈 만한 만만한 길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숨막히게 했다. 고향집에서 살 때는 서울에 가면 편편하게 잘 닦인 길에서 맘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줄 알았다. 고향마을 신작로는 울퉁불퉁 자갈길이다. 빨리 달릴 수도 없고 비라도 한 번 내리면 질퍽거려서 아예 자전거를 탈 수조차 없다.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여의도 광장뿐이었다. 큰 맘 먹고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나온 적이 있었다. 1988년경이다. 죽을 뻔했다. 봉천동에서 신림동까지 오는 동안 자전거 끌고 나온 것을 백 번쯤 후회했다.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에 자전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그 이후 한동안 자전거를 잊고 살았다.

서울에서 자전거 탈 수 있던 곳은 오직 여의도 광장 뿐

지천운하 주변 개발 초고층 개발 조감도
 지천운하 주변 개발 초고층 개발 조감도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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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경에 안양천 옆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이사 올 때쯤, 아내와 갓 돌을 지난 딸이 내 옆에 있었다. 그때부터 딸을 유아용 안장에 태우고 안양천변 길을 누비는 것이 취미가 됐다. 이름 모를 풀과 나무, 꽃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느릿느릿 다녔다. 구름에 달 가듯이.

안양천은 고향과 흡사하다. 물고기가 살 수 있을 만큼 비교적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고 천변에는 자전거 길이 길게 뻗어 있다. 자전거 길 옆으로는 꽃과 풀들이 있고 나비와 잠자리가 날아다닌다. 새들도 날아온다.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 매, 말똥가리, 흰죽지수리와 천연기념물인 원앙, 새매, 황조롱이들이 안양천변 경치를 즐기는 시민들을 반긴다. 

그래서다. 난 한 번도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2년이 멀다하고 이사를 다녔다. 안양천이 내겐 해방구였다. 답답한 콘크리트 틈 사이에서 그나마 숨을 크게 내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갓 돌을 지난 젖먹이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됐다. 유아용 안장은 이제 5살배기 아들 차지다. 우린 자전거 가족이다. 12살 딸은 앙증맞은 미니벨로를, 아내는 노란색 숙녀용 자전거를, 난 접이식 신사용 자전거를 탄다.

우리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간다. 간단한 요기거리를 배낭에 넣고 안양천으로 향한다. 2년 전에는 안양 석수동 부근에서 서울 한강 시민공원 서강대교까지 다녀왔다. 왕복 약 52km 거리였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먹은 김밥과 막걸리 맛이 끝내줬다. 

작년에는 혼자 고물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를 거쳐 양재천으로 이어지는 80km를 횡단했다. 여의도 선착장 부근에서 마신 맥주 맛이 일품이었다. 너무 무리한 나머지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안양천은 이런 곳이다.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는 해방구이며 자전거에 행복을 싣고 달릴 수 있는 '그린웨이'다. 또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촌뜨기가 발견한 해방구 '안양천'

한강운하-중랑천운하-안양천운하
 한강운하-중랑천운하-안양천운하
ⓒ 서울 환경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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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파헤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양천과 중랑천까지 운하를 만든단다. 수상버스와 수상택시를 띄우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이 같은 계획을 지난 23일 발표했다. 여의도나 용산에서 고척동 야구구장과 강북의 군자교까지 '한강지천 뱃길'로 만들어 서울을 파리의 세느강이나 베네치아의 물길처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발표를 듣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부아가 치민다. 결국, 바닥을 몽땅 파헤치고 어디선가 강제로 물을 끌어와 채운다는 이야기 아닌가? 수상버스와 수상택시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안양천과 중랑천 수심을 2미터 이상 유지해야 한다.

또 수상버스나 택시가 한강에서 안양천과 중랑천으로 그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천의 수위를 한강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려면 상류 지점에서는 각각 5.4m와 5.7m 깊이까지 파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하천 안에 더 깊은 하천을 다시 만들어 그곳에 배를 오가게 하는 셈이다.

한 가지만 묻자. 안양천에 살고 있는 풀과 꽃, 나비와 잠자리 또 물고기와 새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다 쫓아낼 것인가? 아니면? 예전에는 한강물을 살린다며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은 적이 있다. 지금도 한강 지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만드는 데 각 지자체가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그래서 겨우 요만큼 살려 놓은 것이다. 물고기와 철새들이 살 수 있을 만큼.

안양천과 중랑천에 운하를 만들면 자연형 하천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 뻔하다. 바닥을 파헤치는 순간 생태계는 몽땅 파괴되기 때문이다. 서울에 와서 간신히 찾은 '해방구'가 얼토당토않은 개발 때문에 훼손될까봐 걱정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제발 안양천만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그:#안양천 , #운하, #중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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