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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밤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대표공약이 좌절되었습니다. 경기도 교육위원회의 결정으로 초등학교 무상급식 예산이 반토막 났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예산도 절반가량 삭감되었습니다. 혁신학교 예산은 아예 전액 사라졌습니다.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집행부가 올린 예산을 50% 정도 자르거나 없던 것으로 만든 건 무상급식 하면 안 되고, 학생인권 신장시켜도 안 되고, 혁신학교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11명 중 7인의 교육위원이 한 일입니다.

 

2만명 간선 교육위원의 힘이 850만 직선 교육감을 누르다 

 

현행 제도에서 시도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사안은 시도 의회에서 다시 논의됩니다. 경기도 교육위원회에서 결정했다고 해서 바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 의회로 이송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교육위원회에서 정한 예산 등을 시도 의회가 손을 대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었습니다. '교육적인 관점'으로 교육위원회가 결정하였지만 시도 의회에서 번복되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시도 의회로 가기도 전에, 교육위원회가 '초전박살'을 냈습니다.  물론 교육위원회이니만큼 '교육적인 관점'이었겠죠. 교육의 논리에 입각하여, 어려운 동네 초등학생의 무상급식이 불가하다고 결정하였을 겁니다. 자신은 굶더라도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이 진정한 교육자 모습인데 말입니다.

 

조금 더 재밌는 부분은 대표성입니다. "이제 임기 초반인데, 신임 교육감이 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좌초시킬 수 있나? 너무 하지 않나?"라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대표성의 문제가 남습니다.

 

김상곤 교육감은 올 4월에 주민직선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김 교육감은 850만 경기도민의 뜻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이에 반해 교육위원은 2006년 7월 간선제로 뽑혔습니다. 당시 선거인단은 도내 초중고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들로 구성된 2만 2000명입니다. 대표성에서 400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물론 직선제와 간선제라는 제도 중 어느 것이 옳은지, 어느 것이 나은지를 단순하게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2만명 간선 교육위원이 850만 직선 교육감을 누른 상황"이라고 규정할 수는 있습니다.

 

소환도 안 되고, 직접 출마해서 '맞짱' 뜨기도 어렵고

 

이번 결정에 대해 '잘했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고, '잘못이다'는 의견도 있을 겁니다. 개인의 자유이니까요. 그런데 후자의 의견을 지니고 있다면, 즉 주민의 의사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대의기구의 위원들이 경기도민의 뜻을 거슬렀다고 판단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할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직접적인 항의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이라면, 주민소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 <지방자치법>이나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는 '교육위원'이 없습니다. 주민의 힘으로 7인의 교육위원을 소환할 수 없는 겁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선거입니다. 내년 2010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교육위원 선거가 있는데, 7인의 교육위원이 나오는 선거구에 직접 출마하여 소위 '맞짱'을 뜨는 겁니다.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서 교육위원의 자격을 '교육 및 교육행정 경력 10년 이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경력이 없어도 가능했지만, 지난 2006년 개정되면서 비경력자는 출마자체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개인이나 단체가 7인의 교육위원의 실정을 고발하면서 경기교육의 미래를 위해 나서기 어렵습니다.

 

가능한 건 직접적인 항의와 내년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는 겁니다. 물론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주민의 의사가 반영되기에는 한계가 많습니다.

 

교육위원 선거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교육위원 선출방식에 대한 법률이 없다는 겁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8조에는 "교육위원은 주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따라 선출한다"만 명시되어 있습니다. 다른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게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내년 6월의 교육위원 선거를 하려면 올해 안으로 관련 법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어떤 내용으로 만들어지는지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가는 복잡한 말들이야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도, 얼마나 주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방식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적어도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처럼, 민의를 거스른 교육위원을 소환할 수 있고, 교육경력이 없는 주민이라 하더라도 출마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소 요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주주의 나라이고, '지방교육자치'라고 부르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외에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은 게 있습니다. 경기도 교육위원의 정수는 13명입니다. 지난 2006년 개정된 법률에 의거하여, 내년 선거에서는 7명 이상을 주민직선으로 뽑습니다. 이들을 '교육의원'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6명 미만은 경기도 광역 의원이 돌아가면서 상임위 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지역주민이 나서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교육의원은 10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하고, 경기도 의원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니까요. 무소속으로 경기도 의원에 출마한 다음에 교육 상임위를 택하는 방법이 남아있기는 하나, 쉽지 않습니다.

 

교육의원은 어떻게 선출할까요? 현행법은 없지만, 교과부가 지난 5월에 입법예고한 법안은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교과부안을 보지 않더라도 난감한 문제가 있습니다. 경기도 전역에서 주민직선으로 7명 이상의 교육의원을 뽑아야 합니다. 선거구가 너무 넓습니다. 국회의원이나 기초 단체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김상곤 교육감을 좌초시킨 어떤 교육위원의 경우 지역구가 부천, 광명, 시흥입니다. 교과부 안대로 된다면, 경기 제4선거구로 안산이 추가됩니다. 또다른 교육위원은 안산인데, 역시 제4선거구입니다. 12개 국회의원 선거구와 4개 기초단체장 선거구를 합한 곳입니다. 넓습니다. 이 드넓은 땅에서 자신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해야 합니다. 그것도 현행법에 따라 정당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됩니다.

 

부천, 광명, 안산, 시흥에서 어떻게 선거운동을 할까요? 혼자 힘으로는 안 됩니다. 가족이나 선거운동원이 있어도 안 됩니다.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단체나 정당의 힘이 필요합니다. 현행법 위반이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무상급식하면 안 된다'는 경기도 교육위원회 결정의 배경에는 정치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내년 선거에 나갈 생각이 있다면, 어딘가 기댈 구석이 필요합니다. 그 광활한 토지에서 홀로 고군분투할 뜻이 없다면, 비공식적으로 간택해주고 조직과 경비를 지원해줄 곳이 필요한 겁니다. 그곳은 뻔합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만간 전국의 교육위원이 선거 방법에 관한 의견들을 더 활발하게 내놓을 겁니다. 경기도의 '반(反)김상곤' 교육위원 7인도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늘 그랬듯 교육자치, 교육의 자율성,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언급할 겁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표현이 들리면 하하하 웃어주십시오. '교육의 자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3일 밤 교육위원회 본회의장에서 이재삼 교육위원은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이번 예산안 심의처럼 마음이 무겁고 참담한 심정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 불쌍한 아이들 무료로 밥 좀 먹이는 무상급식예산마저 절반을 잘라버린 우리 교육의회를 보며, 먼저 경기도민과 학생들에게 교육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머리 숙여 사죄하고 아직 늦지 않았기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동료선배위원님들께 전액 부활시켜 원안 통과시켜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하지만 7인의 교육위원은 이를 저버립니다. 무상급식 예산을 반으로 만듭니다. 이명박 정부는 펀드를 반토막 내더니, 경기도 교육위원들은 급식예산을 반토막 냈습니다. 그리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갑니다. 휑한 회의장에는 석고대죄를 시작하는 이재삼, 최창의 교육위원 2명만 남아 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경기도 교육위원회의 오늘입니다.


태그:#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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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습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요, 정말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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