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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돈도 아닙니다. 우리가 힘들게 벌어서 낸 세금으로 우리 아이들 밥 먹이겠다고 하는 돈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라 먹는 돈입니다. 돈 없으면 밥 굶어라, 돈 없으면 죽으면 되지, 돈 없는 것들은 이 땅에 필요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반MB 교육'을 기치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대표적 공약이 좌절된 날. 누리꾼 '박지훈'은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이 글을 남겼다. 분노와 탄식 그 자체다. 그의 글은 더 이어진다.

 

"예산 삭감에 찬성한 당신들,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 한 명 한 명 이름, 경력, 얼굴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아이들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는 당신들, 내 아이들에게도 똑똑히 기억시킬 겁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대표 정책 예산 모두 삭감... 기득권에게 포위된 김상곤 교육감

 

우려가 현실이 됐다. 경기도민은 김상곤 교육감을 선택했지만 친여 색채의 경기도교육위원회는 그의 정책을 '저격'했다. 여러 안건 중 유독 김 교육감의 대표 공약만 집중 공략해 낙마시켰다. 특별한 근거는 없었다. 

 

경기도교육위원회는 23일 저녁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핵심공약인 초등학생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추경예산안 수정안을 최종 의결했다.

 

교육위원회는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위한 추경예산 171억원 중 50%인 85억 5000만원을 삭감했다. 또 김 교육감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던 학생인권 조례 제정 관련 예산 5970만원 중 2970만원을 삭감했다. 그리고 김 교육감이 야심차게 준비한 혁신학교 추진 예산 28억 2000만원은 아예 전액 삭감했다.

 

이로써 김 교육감의 대표 정책인 ▲ 경기도 초등학생 무상급식 ▲ 학생인권 조례 제정 ▲ 혁신학교 추진은 거의 좌절되거나 만신창이가 됐다.

 

김 교육감은 올해 2학기부터 농·어촌과 군 단위 지역, 그리고 도시의 전교생 300명 이하 초등학교에 무상급식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이를 토대로 2010년 말까지 경기도 내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었다. 친환경 유기농산물 제공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예산이 반토막 나면서 무상급식 확대는 불투명해졌다. 예산이 전액 삭감된 혁신학교는 추진 자체가 어렵게 됐다. 그냥 하지 말라는 것이다.

 

혁신학교는 학교당 1억원의 예산 지원을 통해 한 학년당 반을 5개 이하로, 학급당 학생수는 25명 이내로 줄인 형태의 학교를 말한다. 과대학교·과밀학급을 해소하고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게 김 교육감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김 교육감의 모든 계획은 현재 포위당한 형국이다. 먼저 교육위원회에서 막혔지만, 여기를 극복한다고 해도 한나라당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경기도의회도 뛰어넘어야 한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최창의 위원은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다른 위원들의 정치적 의도를 강하게 비판하며 예산 삭감 반대를 주장했다.

 

"김상곤 교육감의 핵심공약이라는 이유로 공격성 질의로 일관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감정에 치우친 예산 삭감보다는 진정으로 경기교육 안정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심사해야 한다."

 

무상급식은 50%, 혁신학교는 100% 삭감

 

또 이재삼 위원은 "어떤 명분보다 더 중요한 건 배고픈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행정실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밥 좀 먹도록 해주는 무상급식 예산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들 두 위원의 주장은 소수의견으로 그쳤다.

 

반대파 위원들은 "혁신이란,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학교들에 그런 고통을 겪게 할 수는 없다", "무상급식보다 시급한 사안이 많다", "부유한 학생들에게까지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교육예산 여건상 어렵다" 등을 주장하며 예산 삭감을 주장했다.

 

결국 이들 반대파의 뜻대로 예산 삭감안은 찬성 7, 반대 2, 기권 2로 통과됐다. 이런 경기도교육위원회의 결정은 2008년 국제중 설립안을 통과시킨 서울시교육위원회의 과거 모습과 몇 가지 점에서 비교된다.

 

서울시교육위원회는 졸속추진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국제중 설립안을 2008년 10월 30일 무리하게 통과시켰다. 그것도 불과 보름 전인 그해 10월 15일 "준비가 부족하다"며 자신들이 보류시킨 안건을 갑자기 의결한 것이다. 국제중 설립은 공정택 현 서울시교육감의 핵심정책이자 'MB 교육의 결정체'였다.

 

이에 반해 경기도교육위원회는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온 김상곤 교육감의 핵심 정책을 끝내 좌절시켰다. "다른 시급한 사안이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교육위원회 스스로 번복할 가능성은 없다. 무엇보다 김상곤 교육감이 '반MB 교육'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상곤 교육감의 핵심 정책 예산만 선택적으로 삭감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터넷에서는 교육위원회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과 교육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비난과 탄식, 그리고 안타까움이 쇄도하고 있다.

 

 

누리꾼들의 분노 "무조건 반대하다니, 똑똑히 기억하겠다"

 

"경기도민은 김상곤 교육감의 공약을 보고 그를 뽑았는데, 당신들이 그런 식으로 실력행사하며 보란 듯이 발목 잡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현 정권에 딸랑딸랑 방울 흔들며 '우리 참 잘했지요?'라고 인사하고 싶습니까? 공무원으로서 대체 누굴 두려워하는 겁니까?" - 나야라

 

"제일 반갑고 눈물 나도록 고맙던 정책이 어찌 저리되었는지요. 무조건 발목을 잡아야 하는 겁니까? 그게 당신들이 할 일입니까? 왜 경기도민의 민심을 거스르십니까.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 노은희

 

"있는 집 애들이 먹는 과자 하나 값도 안 될 우리 아이들 급식비 지원을 삭제하는 현 시점에서 나는 더 무엇을 기대할까? 애초에 기대한 바도 없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제 실망하다 못해 절망까지 하게 되었으니." - 강미화

 

또한 누리꾼 '윤'은 "한 시민으로서 대한민국 앞날이 걱정된다,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라며 "이기적인 1% 집단이 똘똘 뭉쳐 99%를 잡아먹으려 든다"고 비판했다.

 

한편 경기도 내 학부모 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르면 24일부터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서울에서는 '공정택의 버티기'가 시작됐고, 경기도에서는 '김상곤 지키기'와 발목잡기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둘의 차이는 크다.

 

서울에서는 시민들과 법이 '교육계의 MB' 공정택 교육감을 버렸다면, 경기도에서는 기득권에 포위된 '반MB의 상징' 김상곤 교육감을 시민들이 떠받치고 있다는 점에서다.


태그:#김상곤, #공정택, #교육위원회, #무료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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