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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로 올라가는 삼청동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정독도서관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들의 눈' 갤러리는 세계장신구박물관 쪽으로 가다 바로 건너편에 있다
 북촌 한옥마을로 올라가는 삼청동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정독도서관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들의 눈' 갤러리는 세계장신구박물관 쪽으로 가다 바로 건너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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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아이들도 그림을 그려요?"
"네, 그립니다. 미술은 오감의 산물입니다. 눈은 단지 그 일부일 뿐입니다."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작품을 모아 전시회까지 열었다. (사)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의 주최로 김미경 설치미술가가 기획하고 박지숙 화가 등이 후원한 '시각장애학생 드로잉전-오감지도(五感地圖)'전이 종로구 화동 세계장신구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7월 25일까지 열린다.

이 협회는 아트프로젝트로 1997년부터 충주성모학교의 미술작업을 비롯하여 지금은 서울맹학교, 한빛맹학교, 인천혜광학교 등의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미술활동과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고 이런 창작경험을 통해서 이들에게 문화를 향유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입구에 점자 새겨진 '우리들의 눈' 갤러리

우리들의 눈 갤러리 입구 안과 밖. 갤러리입구에 점자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가운데 작품은 윤성우학생의 '킥보드를 타고 달린다' 아래는 영문 소개글과 윤석현 학생작품
 우리들의 눈 갤러리 입구 안과 밖. 갤러리입구에 점자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가운데 작품은 윤성우학생의 '킥보드를 타고 달린다' 아래는 영문 소개글과 윤석현 학생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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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 들어서니 투명한 유리로 된 출입문에는 점자에 적여 있다. 익숙하진 않아도 추상미술이나 글자그래픽을 보는 것 같아 멋지다. 시각장애학생들은 촉각 등 모든 감각을 세우고 읽기에 불편하겠지만 기억에는 오래 남을 것 같다.

이곳은 "작은 박물관동네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갤러리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항상 손님이 많은 편"이라고 이 미술관 큐레이터 김정현씨가 알려준다. 직사각형으로 된 이 갤러리는 소규모지만 아늑한 분위기를 주고 학생작품이 사람들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천국의 이미지가 듬뿍 담긴 공동 작품

집단창작 서울맹학교 유치부 2008. 그림이 너무 길어 3단으로 처리함. 발자국이 보인다
 집단창작 서울맹학교 유치부 2008. 그림이 너무 길어 3단으로 처리함. 발자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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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가로로 아주 긴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눈부시게 화사하고 현란하고 황홀한 색채를 띠고 있다. 작품설명을 보니 서울맹학교 유치부학생들 공동작이다. 학생들의 손과 발로 마음껏 찍은 자국이 역력하다.

물론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겠지만 이런 색감을 낼 수 있다니 놀랍다. 그 마음속에 천국이 없다면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파랑, 노랑, 파랑, 빨강, 분홍, 초록 등 여러 색채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색채는 각각이지만 조화롭게 빛난다.

그리고 주변에 다른 작품을 보다가 3년 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본 루오의 '비애(Miserere)연작'이 떠오른다. 그 연작 중 '때론 눈먼 이가 눈뜬 이를 위로한다'는 작품이 있는데 여기서 갑자기 눈뜬 이와 눈먼 이 중 누가 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묻게 된다.

갤러리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2가지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가장 질문을 많이 받는 제목과 그 답변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가장 질문을 많이 받는 제목과 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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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갤러리에 온 사람 중에서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2가지는 바로 "안 보이는 아이들도 그림을 그리나요?"와 "시각장애학교에서도 미술수업이 있나요?"라고 김정현씨가 일러준다. 그래서 아예 벽에 그런 질문과 대답도 같이 적어놓았다.

미술은 물론 시각을 통해서 이뤄지기에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의 눈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보면 못 볼 것이 없다. 모든 게 일장일단이 있듯 시각을 잃었기에 다른 감각이 더 발달하고 그래서 더 창의적으로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각장애학생들을 조사해보면 미술시간은 그들에게 더 없이 즐거운 시간이라고 갤러리자료집에 나와 있다. 자신들의 시각표현의 본능적 욕구를 해소하고 그 나름의 감각을 찾아가며 창작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손으로 세상을 보고 만지고 느끼다

진성범 I '보이지 않는 힘(Invisible Power)' 테라코다 25×19×17cm 1998
 진성범 I '보이지 않는 힘(Invisible Power)' 테라코다 25×19×17cm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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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현재 '2009 경기도미술관 연례전 현대조형도자전 세라믹스-클라이맥스전'에 출품되어 1층 로비에 전시되고 있다. 손을 비정상적이라 할 정도로 큰데 그것은 이 작가가 시각장애인임을 짐작케 한다. 모든 걸 시각보다 촉각으로 그리기에 눈보다 손을 크게 그리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세상을 오감으로 그린다는 것인데 이는 현대미술의 맥락과도 통한다. 어려운 말로 '통섭'이라고 하던가. 백남준은 이를 비빔밥정신이라고 했고. 그림을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총동원하여 그리는 것, 그래서 이 갤러리의 영문명인 '사물을 보는 또 다른 눈(another way of seeing)'이라는 말이 더 와 닿는다.

움직임과 이동에 대한 열망 담긴 작품들

윤성우(한빛맹학교 초등6) I '레이스' 2006
 윤성우(한빛맹학교 초등6) I '레이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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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한빛맹학교 윤성우학생의 것으로 이 학생도 처음부터 눈이 안 보인 건 아닌데 후천적으로 약맹이 되었다고 김정현씨가 귀띔해준다. 어려서 본 자동차의 형체는 사실적이기는 하지만 그 선과 색을 선명하게 그림에 다 옮기는 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툰 그림의 가치를 재발견한 작가도 있다. 바로 장 뒤뷔페(1901-1985)다. 그는 1945년부터 전통적 미술재료를 거부하고 미술과 거리가 먼 사람들도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아르 브뤼(Art Brut)를 제창한다. 또한 최근 일본이나 영국에선 장애가 오히려 예술창작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에이블 아트(Able Art)'도 생긴다.

박정민(한빛맹학교 초등5) I '우리학교 지도(연작)' 2004
 박정민(한빛맹학교 초등5) I '우리학교 지도(연작)'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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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한빛맹학교 5학년인 박정민 학생의 '우리학교 지도'를 살펴보자. 그림이 약도 같다. 그는 발로 느낀 것과 손으로 만진 것의 경험을 추적하듯 그렇게 작품을 완성한다. 이 학생은 관객이 몰라볼까 여자화장실, 민들레반, 폐문까지도 적어 두었다.

이번 시각장애학생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그들이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다는 요구가 당연하지만 일반학생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지도같이 그리는 것인가. 이를 다 해소시킬 수 없으나 그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풀 수 있으니 다행이다.

'우리들의 눈, 아트 프로그램', 그 발자취 살펴보기

갤러리데스크 앞에 진열된 여러 자료들과 영상물 등. '2008 우리들의 눈' 도록도 보인다. 자료들이 영어로도 번역되어 있고 점자감촉책자로 만들어졌다
 갤러리데스크 앞에 진열된 여러 자료들과 영상물 등. '2008 우리들의 눈' 도록도 보인다. 자료들이 영어로도 번역되어 있고 점자감촉책자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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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갤러리 데스크에는 10년간 계속된 전시회도록 및 자료들은 내용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멋지다. 또한 영상자료도 마련되어 있어 학생들 작업과정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

'우리들의 눈-2008 한·일교류전' 책자에서 이 협회의 회장인 엄정순씨의 인사말도 눈에 띈다. "우리 학생들은 미술작업에서 뜻밖의 큰 즐거움을 느껴요. 그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자유로운 꿈을 표현하는 길을 열어줘야죠. 이젠 대학도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야겠죠." 등등. 그는 작년에 점자촉각 그림책 <점이 모여 모여>(창비)를 펴내기도 했다.

이번 전도 그렇지만 작년 한일교류전에도 갤러리 학고재, 포토넷, 아트인컬처, 아트스퀘어, 코리안 아트스페이스, 파파로티, 이건산업, 원더 보이스, 샌드위치, 그라프, 전인욱복지재단, 문화체육부 등 단체후원과 개인후원도 있었다.

"맹학교시절 받은 미술수업이 내게 자존심 심어줘"

'2008 우리들의 눈-한일시각장애학생 미술로 만나다' 도록에 나오는 중3 강금영과 명길훈 학생의 사진작품.
 '2008 우리들의 눈-한일시각장애학생 미술로 만나다' 도록에 나오는 중3 강금영과 명길훈 학생의 사진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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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복지정책도 문화예술과 연결시켜야 할 시점이 되었다. 창의적 활동을 지원하는 것만큼 사람들에게 행복감과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없을 것이다.

어느 사회나 소외된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돈이나 물질적 보상 이상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협회 홍보지에 나온 한 졸업생의 "나는 지금 침구사로 일하지만 맹학교시절 받은 미술수업은 나에게 인간으로서 품위 있게 사는 자존심을 심어주었다"라는 고백은 그런 면에서 감동적이다.

끝으로 우리사회에 보너스가 필요한 곳은 많겠지만 바로 이런 학생들에게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이런 사회적 약자에게 그들 나름의 창작과 표현 욕구를 해소할 장치가 마련될 때 삶의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래야 우리사회도 더 통합적이고 성숙해지리라.

덧붙이는 글 | 우리들의 눈 갤러리: 종로구 화동 23-14 주최: (사)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 우리들의 눈. 기획: 김미경. 후원: 화가 박지숙, 친친, 그라프(graf), 대장장이피자집, 파파로티코리아, 전광수 커피. 전화 02)733-1996, 팩스 734-1996 홈페이지 www.ka-ba.or.kr

'우리들의 눈' 동영상은 여기서도 볼 수 있다. http://video.naver.com/2008100917111615942



태그:#우리들의 눈 갤러리, #시각장애학생들 그림, #아르 브뤼, #에이블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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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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