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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모산재 정상에서 바라다본 황포 돛대바위(사진 가운데).  
경남 합천군 모산재 정상에서 바라다본 황포 돛대바위(사진 가운데).  ⓒ 김연옥

번잡한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산이 늘 그립다. 무더운 여름날 오후에 한바탕 퍼붓는 시원한 빗줄기나, 지루한 일상을 한순간 감미롭게 녹여 주는 초콜릿 맛 같은 산은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달콤한 유혹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나는 산을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부암산(695m, 경남 산청군), 감암산(834m, 경남 합천군)과 모산재(767m, 경남 합천군) 산행을 나섰다. 오전 8시 50분에 김해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이교마을(경남 산청군 신등면 장천리) 경로당 앞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10시 50분께였다.

부암산에서 위풍당당한 감암산으로

거대한 누룩덤.  
거대한 누룩덤.  ⓒ 김연옥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시멘트 길을 15분 남짓 걸어가자 우리는 시원한 숲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꽤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이어졌는데, 오솔길처럼 호젓하고 폭신폭신한 흙길에다 쏠쏠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으로 나는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걸었을까,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산행 전날 냉동실에 얼려 둔 수박을 곁들여 시원한 막걸리를 쭉 들이켜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스승바위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부암산(傅岩山)은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보암산(寶岩山)이란 이름으로 고쳐서 표기되기도 했으나 이정표뿐만 아니라 산청군 홈페이지에도 여전히 부암산으로 소개되고 있는 산이다. 부암산 정상 표지석이 있는 곳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35분께. '이름없는 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거기가 부암산 정상임을 말해 주고 있지만, 건너편에 있는 수리봉을 부암산 정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표지석에 창립 날짜까지 버젓이 새겨 놓은 것으로 미루어 산악회 이름이 분명한데 왜 하필 산악회 이름이 '이름없는 산악회'일까. 어떻게 보면 역설적 표현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수준 높은 유머 같기도 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지나친 겸손이리라.

수리봉을 오르는 등산객들.  
수리봉을 오르는 등산객들.  ⓒ 김연옥

사실 이번 산행을 함께한 친구들과 얼마 전 작은 산악회를 만들었다.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신두진 선생님, 유치원서 놀이 수학을 지도하는 조수미씨, 한때 귀금속공예를 했던 이미영씨 등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산악회 이름을 놓고 한창 고민 중이다.

부암산 정상에서 배넘이재로 내려와 건너편 암봉인 수리봉으로 올라갔다. 수리봉에 서면 멀리 대기저수지와 누룩덤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스라이 황매산 정상과 삼봉도 보인다. 문득 거대한 누룩덤을 처음 보던 날이 떠오른다. 신비스러운 위엄이 서려 있는 듯한 경이로운 형상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던 내 모습도 아른아른하다. 

암수바위를 지나며.   
암수바위를 지나며.   ⓒ 김연옥

엉덩이처럼 생긴 암바위가 눈길을 끈다.  
엉덩이처럼 생긴 암바위가 눈길을 끈다.  ⓒ 김연옥

감암산 정상까지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길이 이어져서 제법 힘들었다. 그러나 암수바위를 지나면서 예전의 감동이 그대로 되살아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치 바위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위풍당당한 산세를 보며 그때에도 가슴이 얼마나 콩닥콩닥 뛰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도 감암산의 매혹적인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감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에서.  우리가 걸어온 부암산과 수리봉이 멀리 보인다.
감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에서. 우리가 걸어온 부암산과 수리봉이 멀리 보인다. ⓒ 김연옥

경남 합천군 감암산 정상.  
경남 합천군 감암산 정상.  ⓒ 김연옥

오후 2시 40분께 감암산 정상에 이르렀다. 산세에 비해 서글프고 초라했던 옛날 정상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정상 표지석이 우람히 세워져 있어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감암산 정상에서 좀 더 걸어가 점심을 먹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앉았다. 그리고 등산용 식탁보를 펴서 행복한 밥상을 차렸다.

늦은 점심을 한 뒤 828고지로 계속 걸어가서 누룩덤을 가까이에서 구경하려고 대기마을(경남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천황재를 거쳐 초소전망대까지 오른 후 모산재로 하산하려면 시간이 많이 부족해 결국 누룩덤이 있는 곳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도중에 되돌아왔다.

천황재에서는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흙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바위들을 타야 하는 구간이 나온다. 위험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스릴이 넘치고 재미가 있어서 지금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비단덤으로 여겨지는 그곳에서는 지리산 천왕봉도 어렴풋이 보였다.

시원한 초소전망대에서 신령스러운 모산재로

모산재.  
모산재.  ⓒ 김연옥

우리는 초소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계속 올라갔는데, 그 길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초소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10분께. 황매산 정상이 시원스럽게 보이는 전망대에 앉아 맛있는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모산재로 내려갔다.

우리가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철쭉밭에서 산토끼 한 마리가 부리나케 달아났다. 산토끼의 평화를 깬 것 같아 괜스레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30분 정도 내려갔을까, 모산재 정상을 향해 또 올라가야 했다. 너무 많이 걸은 탓에 오르막을 또 오른다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산재에서.  식빵처럼 생긴 바위가 인상적이다.  
모산재에서. 식빵처럼 생긴 바위가 인상적이다.  ⓒ 김연옥

모산재에서.  돛대바위(오른쪽)도 보인다.  
모산재에서. 돛대바위(오른쪽)도 보인다.  ⓒ 김연옥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 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 돛대야

     - 황포 돛대 일부(작사 이용일, 노래 이미자)

바람이 아주 상쾌하게 불어 대는 모산재 정상에 이른 시간은 저녁 6시께였다. 그러고 보니 모산재 정상을 찾을 때마다 이상스레 바람이 엄청 불어 댔다. 왠지 원초적 신비가 느껴져서 나는 바위산을 좋아하는데, 아름다운 모산재 또한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신령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황포 돛대바위는 참 멋있다. 순풍에 돛을 달고 떠나가는 배를 보고 있는 듯하다. 순결바위와 함께 모산재의 명물인 황포 돛대바위를 뒤로 하고 우리는 하산을 서둘렀다. 모산재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7시가 넘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 단성 I.C→ 신안면 원지(국도 20번)→ 문대마을→ 신등면 단계(1006번)→ 청산마을(지방도 1089번)→ 이교마을→ 부암사→ 부암산
* 산청 I.C→ 산청읍 외정(국도 3번)→ 척지마을(지방도 60번)→ 신등면 단계→ 청산마을(지방도1089번)→ 이교마을→ 부암사→ 부암산



#감암산누룩덤#모산재돛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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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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