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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최고 정점에 서 있던 최고의 가수. 본인 소유 앨범]
▲ 조용필 앨범 LP [80년대 최고 정점에 서 있던 최고의 가수. 본인 소유 앨범]
ⓒ 무비조이(MOVIE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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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한국 대중가요계를 빛낸 뛰어난 가수들이 많다. 지금은 기억 속에 남아 희미해진 가수들도 있지만 아직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가수들도 있으며, 최근 컴백을 발표한 가수들까지 있다. 이젠 더 이상 음악이 아닌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가수들이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80~90년대 가요를 즐겨듣던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80년대 한국 가요사 정점에 서 있던 가수는 조용필이었다. 조용필이란 걸출한 톱 가수를 필두로 하여 과연 누가 조용필이란 아성을 무너트릴 수 있을지 관심을 받던 시기였다. 당시 조용필의 인기에 근접하는 것만으로 이미 톱 가수로 인정받았던 시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기억 속에 떠오르는 가수로 이용과 전영록이 조용필 1인 독주체제에 제동을 걸 가수로 거론되곤 하였다. 이중에서 전영록은 만능엔터테인먼트의 재능을 뽐내며 영화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80년대에는 다양한 음악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한국 메탈의 산증인 시나위, 한국 록 음악의 독보적인 존재 들국화,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산울림 이외에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송골매, 이치현과 벗님들, 다섯손가락 등이 한국 밴드 음악의 대표주자격이었다.

비단 그룹뿐만 아니라 80년대 최고의 여가수 이선희, 한국 댄스 가요의 대중화를 앞당긴 나미, 댄싱퀸 김완선, 댄스 그룹의 새로운 모습 소방차, 댄싱머신 박남정, 떠오르던 하이틴 가수 박혜성과 김상진 등도 기억에 남는다. 이 시기 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가수로 한국 발라드 음악의 신기원을 연 이문세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이들뿐만 아니라 윤수일, 이은하 등도 당시를 주름 잡았던 가수들이다.

80년대를 넘어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가요는 상당히 풍성해졌다. 다양한 가수들이 대중들에게 사랑받았고 백만 장 이상 팔리는 앨범 역시 상당수 나온 시기였다. 분명 이 시기 다양한 가수들이 나왔지만 또 다른 문제로 발라드와 댄스에 편중된 음악시장으로 재편되면서 한국가요 몰락의 전주곡이 되었다는 분석 역시 있다. 90년대는 한 마디로 한국가요 최고의 전성기이자 최악의 시기를 위한 과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시기에 특히 아이돌 스타들이 많이 나왔는데 H.O.T, 젝스키스, 핑클, S.E.S 등은 남녀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트로트를 이끌어오던 여제 주현미의 최전성기가 지나고 몰락할 것 같았던 트로트 음악장르가 젊은 층에게 사랑받으며 새로운 활로를 연 시기이기도 했다. 현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트로트 톱 가수 대부분이 90년대 대중들에게 사랑 받았던 가수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엄정화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했으며, 변진섭, 신승훈 등은 이문세 뒤를 잇는 발라드 가수로 자리 매김했다. 또한 김건모는 자신의 특유한 음색을 잘살려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터보, 듀스, 쿨, DJ D.O.C 등도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 록 메탈 밴드의 계보를 잇는 대형밴드 N.E.X.T는 90년대 밴드의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록 음악에 기반을 두고 솔로로 데뷔하여 폭 넓은 연령층에게 사랑 받은 이승철, 이승환, 김경호 역시 90년대 가요계에서 자신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렇게 다양한 가수들이 활동했던 80~90년대 가요를 좋아했던 팬들이라면 분명 위에서 언급한 가수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많은 인기를 끌었던 그리고 최근 컴백을 선언한 추억의 가수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원준희] 18년 만에 돌아온 청순가련 여가수

최근 애벌레로 컴백한 원준희
▲ 원준희 최근 애벌레로 컴백한 원준희
ⓒ (주)바탕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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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청순가련형 여가수 세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다음 가수 중 한 명의 이름은 이야기할 것 같다. 바로 강수지, 하수빈, 원준희다. 이 세 명의 여가수는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특히 남자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여가수들이다. 이들의 노래가 빅히트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이들이 당시 팬들에게 남겼던 기억이 그만큼 선명하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대단한 인기몰이를 했던 세 명의 여가수 중 오랫동안 가수 활동을 이어간 사람은 강수지뿐이란 것이 조금 아쉽다.

특히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가창력도 인정받았던 원준희의 경우 1989년 1집 앨범 발표 후, 1991년 결혼과 함께 은퇴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남성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녀는 한국가요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현미씨의 둘째 아들 이영준씨와 결혼 한 후 도미하여 오랫동안 팬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

18년이나 지나고 난 뒤 그녀는 드디어 <애벌레>란 노래로 가요계에 컴백했다. 그녀의 새 앨범에 포함된 <애벌레>는 애잔한 멜로디와 가사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드는 곡이다. 특히 부활의 리드보컬인 정동하가 그녀의 새 앨범에 듀엣으로 참여하였으며,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희아 역시 이 앨범에 참여했다.

오랜 시간동안 쌓아두었던 그녀의 노래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이번 앨범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 블루] 여심 흔들던 손지창-김민종 돌아오다!

손지창과 김민종
▲ 더 블루 손지창과 김민종
ⓒ SM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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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평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런 것은 단순한 앨범판매고나 인기에 대한 것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가요계에 새로운 획을 그으며 기존 대중음악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 그들이었기에 이런 평가가 가능했다.

그들의 음악성에 대해 아직까지 논란이 있지만 최소한 90년대 가요계를 이야기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당시 그들의 음악이 얼마나 많은 가요팬들과 이후 나온 여러 그룹에 영향을 미쳤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당시 큰 인기를 얻을 때 그들과 유일하게 라이벌이란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팀을 찾는다면 만능엔터테인먼트인 손지창과 김민종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더 블루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두 사람이 결성한 더 블루는 폭 넓은 층에서 인기를 얻었다. 10대들뿐만 아니라 손지창, 김민종을 좋아하는 20대 여성 팬들 역시 더 블루를 상당히 좋아했다. 두 사람은 연기자로서의 매력과 외모를 지니고 있어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워낙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팀이었기에 노래방에 가면 남자들 대부분은 더 블루 곡을 필수로 부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소개팅이나 미팅을 통해 노래방에 가게 되면 꼭 더 블루의 노래 몇 곡을 반드시 불러야했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데 더 블루 곡이 상당히 유용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90년대 가요를 즐겼던 사람들이라면 종종 더 블루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고 있을 것이다.

해체 후 오랜 시간 제 갈 길을 갔던 두 사람이 최근 다시 뭉쳐 또 다시 더 블루란 이름으로 앨범을 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 사람의 개성 넘치는 목소리가 합쳐져 또 어떤 새로운 더 블루의 느낌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모아진다.

[박지윤] 6년 만에 싱어송 라이터로 변신

90년대 최고의 여가수 한명을 뽑으라면 대부분 엄정화를 거론할 것이다. 분명 90년대 한국가요를 이야기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빼놓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당시 그녀가 보여준 여러 가지 퍼포먼스는 이후 나온 대부분의 솔로 여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노래만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보여준 그녀의 모습 또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당시만 해도 포스트 엄정화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한 명의 이름이 따라 나왔다. 바로 1997년 1집 <하늘색 꿈>으로 데뷔한 박지윤이다. 그녀는 성공적인 데뷔와 함께 착실하게 자신의 기반을 가요계에서 다져나갔다. 그리고 2000년 박진영과 함께한 4집 <성인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확실한 포스트 엄정화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녀의 이후 행로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솔로 여가수가 되지 못했다. 그녀에게 최고의 성공을 안겨준 4집이 오히려 이후 음악적 행보에 족쇄가 된 꼴이 되고 말았다. 2002년 나온 5집은 4집과 마찬가지로 박진영이 프로듀싱 했지만 <성인식>과 같은 충격을 팬들에게 주지 못했다. 중성적인 이미지로 팬들에게 어필하려 했지만 오히려 <성인식>과 같은 비슷한 이미지를 계속 소비하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매력 일부분이 증발하고 마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그녀의 침체기는 6집에서도 회복되지 못했다.

6집 이후 오랫동안 정규앨범이 없었던 그녀가 7집 <꽃, 다시 첫 번째>란 의미심장한 앨범제목을 가지고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7집 앨범의 타이틀곡 <바래진 기억에>는 싱어송 라이터로 다시 돌아온 그녀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이 앨범 발매와 함께 7월초에 그녀의 첫 번째 단독 콘서트까지 열린다고 하니 오랫동안 그녀를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태그:#가요, #더 블루, #박지윤, #원준희, #무비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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