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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동연

골목에서 두 아이가 싸운다. 상대가 되지 않는 몸집과 테크닉에 일방적이다. 하지만 작고 힘없는 아이는 지칠 줄 모른다. 온몸이 멍들고 코피가 나도 끝까지 주저앉지 않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상처 하나 없는 큰 아이를 노려본다.

 

거대 권력이나 기득권 세력 등에 작은 내가, 우리가 꼭 무엇인가를 이루려 할 때. 결국 필요한 것은 싸움, 투쟁이다. 좋게 말하려 해도 그 이상의 단어는 없다. 투쟁하지 않으면 승자는 정해져 있다. 항상 약자는 피해자이며 그것도 소수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20%가 95%를 가지고 있는 사회. 이 사회에서 나머지 80%는 싸워야 겨우 자신의 밥그릇을 지킬 수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싸움중이다. 과거 기나긴 싸움에서 겨우 '반쪽의 승리'를 일구었던 KTX 여승무원들, 천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공장안에 갇혀서 싸우는 쌍용자동차, 용산사태에 대한 유족들과 시민단체의 정부와 경찰을 대상으로 한 긴 싸움도 점점 힘들어 진다.

 

우리와 함께 있는 자연. 환경과 관련한 싸움도 곳곳이다. 지역주민의 여론에 힘입은 새만금은 막혔으나, 시화호는 막았다가 뚫어놓은 지금 갯벌이 살아나고 있다는 최근의 소식에 모두가 기뻐한다. 이미 시작된 경인운하를 필두로 '4대강 살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땅의 생명인 물을 담보로 하는 무식한 토건국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정점이다. 온 국민이 반대해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와 지방 토호들. 그들에 대응하는 것도 결국 환경단체를 주축으로 한 시민들의 투쟁이 될 것이다.

 

계양산이 위치한 인천시는 철새사무국을 유치해서 조류보전에 앞장선다고 하고 뒤로는 새들의 서식처인 송도갯벌의 매립을 추진하는 한편, 벌써 몇 년을 두고 롯데건설과 손잡고 인천의 마지막 녹지 계양산을 골프장으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지금도 릴레이단식과 서명운동을 통해 계획 백지화를 향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굽힐 줄 모르는 의지는 양자 모두의 것이되, 힘 있는 자는 좀 더 여유가 있고 어차피 내가 이길 거라는 믿음이 있는 반면, 힘없는 자의 외로운 투쟁은 힘들고 지치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생명을 걸어야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도 움직인다. 힘을 내지 못하던 싸움의 동지들도 힘 있게 뭉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공장굴뚝이나 타워 크레인, 빌딩의 옥상 등 그 높은 곳으로, 높이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른 채 오르게 된다.

 

올라가서 하는 싸움은 최후의 보루이다. 온갖 악조건에 물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힘이 들기도 하지만, 더 이상 땅위에서 끌어 내쳐지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깝다. 두 평정도 되는 공간. 소나무 넷을 기둥삼아 대나무로 바닥을 엮고, 그 위에 합판으로 디딜판을 만들고 천막하나 달랑 놓으면 그곳이 계양산 지키기 운동장이 된다.

 

싸움의 어려움은 토지 소유주이자 시공주관사 '롯데'도 시청도 아니다. 정작 제일 두려운 대상은 해당 사유지를 기업회장을 대신해서 관리하는 아저씨이거나 그린벨트로 묶여서 고통 받았던 지역주민과의 소통문제다. 왜 자연은 보호하고 살리려고 하면서 우리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냐 라고 하면 정작 마음을 다져먹고 투쟁의 의지를 불태우는 웬만한 인간은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정작 등산을 하면서도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생각 없는' 어른들도 홀로 외로울 투사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개발주의, '돈'이 국익인 세상, 그래서 수억의 돈을 자면서도 벌 수 있는 세상, 그렇게 되면 축복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는 세상, 갯벌과 숲이 한낱 개발의 장애로 여겨지는 이 광폭하고 야만적인 수레바퀴를 향하여 온몸과 마음을 던질, 그런 깨어 있는 삶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p.52

 

운하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이 정권이 건재한 오늘에 통하는 말이다. 4대강 살리기가 아니라 죽이기라는 것은 이제 초등학생들도 알 정도이다. 정보를 교묘히 위장하고 호도하는 정부와 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지방토호세력과 건설사가 있다. 반대를 위해 바닥을 기어서 천리를 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종교인 및 시민들을 보면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억지로 하는 것만큼 나쁜 일도 없다.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억지로 하는 것은 결코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중략……. 숲에는 '억지'가 없다. 통이 큰 나무도 바람이 몰아쳐오면 그 바람에 내맡기어 흔들린다. 억지로 맞서지 않는다. 그런데 추호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제 모습을 쉬 찾는 나무들이다. 그 의연함은 거듭거듭 나를 일깨운다. 흔들리면 망가지는 내 모습과 다르게, 흔들리다 고만 제자리, 제 모습 찾는 나무들이 대단할 뿐이다. p.197

 

10미터가 넘는 고공에서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윤인중 목사는 자기 자신을 다지기 위한 다짐을 글로 풀어 놓는다. 그리고 길고 지루한 여정을 견디기 위한 자기다짐은 자신을 알기위한 도를 닦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나저나 이 싸움 오래갈 조짐이다. 100미터 달리기 하듯 전력 질주를 해왔는데,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라톤 코스로 마을을 변경해야 겠다. 누군가 그랬다. "질긴 놈이 이긴다." 질긴 싸움이 될 것이다. 여한이 없어야 한다. 여한이 없는 유일한 길은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는 없을 것이다. p.152

 

솔숲의 고공에 오른지 100일이 다 되가는 시점의 한 인간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글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의지를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한 다짐이 엿보인다.

그런 다짐을 공고하게 해 주는 것은 그가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책이었다.

 

친구가 똥물에 빠졌을 때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가 쉽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얘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면 친구도 알아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옵니다. - 『좁쌀 한 알』 최성현, 도솔, 147쪽

 

솔숲시위를 시작하고 56일 만에 윤인중 목사에게 바톤을 넘겼던 신정은씨의 일기는 좀 더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공감이 간다.

 

"뭣 하러 와! 오지 마! 안 와도 건강하게 있으니까 오지 마!" 하며 오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내 행동이 부끄럽다거나 후회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강한 모습을 보이시지만 이 모습 보면 속이 얼마나 타실는지. 마음 아파할 부모님께 너무나도 죄송하기에.......  p.256

 

210일. 솔숲 높은 하늘에서 쓴 두 사람의 일기를 모은 책이다. 읽고 있으면 마치 숲속에서 명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황대권의 '야생초편지'가 갇힌 공간속에서 자연과 소통하는 것이라면, 자연과 소통을 위해서 산 속에서 그것도 소나무 위의 '까치와 같은 높이'에서 펼치는 외로운 투쟁기이다.

덧붙이는 글 | 솔숲에서 띄운 편지/ 동연출판사/윤인중. 신정은 글 신종철외 사진/12,000원


솔숲에서 띄운 편지 - 계양산 소나무 위에서 보낸 210일

신정은.윤인중 지음, 신종철 사진, 동연(와이미디어)(2008)


#계암산#솔숲에서띄운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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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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