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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보보 발견!

 

"3000원이요!"

 

중국 돈 3000원이면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60만 원! 지난 주말 우리 집에서 주인을 잃은 개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청소하는 아줌마의 도움을 빌려 개 주인을 찾아주었으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월요일부터 그 개가 내 눈 앞에서 계속 아른아른 거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개를 사기로 결심했다. 그 때부터 개를 갖고 있는 이들을 보기만 하면 가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예쁘고 깨끗해 보이는 개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물어보니 무려 중국 돈 3000원에 샀다는 것 아닌가. 지금 환율로 대략 계산해보면 60만 원에 육박하는 거금이 아니던가.

 

이왕 살 생각이라면 좋은 것을 사고자 했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예산으로 잡은 것이 500원, 예방 접종과 애견 용품을 다 합쳐서 1000원까지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애완견을 사고 싶다는 내 말에 아는 사람 모두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저희도 예전에 싼 개를 데리고 키웠어요.  그런데 한 달 후에 같이 자고 있는데, 일어나 보니까 눈이 하늘을 향해 있고, 거품 물고 죽어 있더라고요. 정말 무서웠어요."

"개가 집에서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긴데,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우리 집 개는 전선을 다 뜯어 먹더라고요."

"아침마다 산책시켜주고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돈이 은근히 많이 들어요."

 

별의별 이유들이 다 나왔지만, 하늘을 날 만큼 평소에는 팔랑팔랑 얇던 귀가 어쩐 일인지 이번만큼은 꽉 닫혀서 그 이야기들을 다 튕겨내고 있었다. 그리고 개를 사기로 마음먹은 지난 일요일 바로 하루 전인 13일 토요일 저녁! 그 결심은 대단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어?"

 

집에 들어가다 보니 우리 1층에 사는 이웃 애완견 숫자가 늘어난 것이었다. 종종 집 앞 화단에 나와 놀기에 자주 보았지만, 1마리만 보았던지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전에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잤던 바로 그 애완견이 1층 이웃과 함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자세히 물어보았다.

 

"이 개 지난 주에 혼자 왔다 갔다 하던?"

"처음에 우리 집 문 앞에 있기에, 하룻밤 재웠어요. 그리고 사라져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난 주 내내 우리 집 앞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인이 버린 것 같아서 데리고 있는 거예요."

 

지난주라면 분명 우리 집에서 잤던 그 개가 맞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청소 아주머니가 그 개를 데려다 준 곳에는 그 개와 똑같은 종류의 개가 살고 있었다. 주인을 만나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역시나 이렇게 된 것이다. 새 주인은 그 개에게 '보보'라는 이름도 벌써 붙여준 상태였다. 주인을 제대로 찾아주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잠시, 어쩐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버린 개라면 원래 내가 주인이 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그래서 지난주에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보보를 며칠간 데리고 가서 재워도 된다는 얘기가 그 개를 거둔 주인에게서 나왔다. 그 이야기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전개> 보보와 산책하기!

 

"저 그러면 오늘밤에는 내가 보보 데리고 가서 자도 되나요?"

 

순간 보보의 새 주인이 된 이웃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가득했으나, 이내 허락했다. 자기 스스로 한 얘기가 있지 않은가. 기쁜 마음에 보보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왔다.

 

"문 앞에서 빙빙 돌면 대소변 보고 싶다는 뜻이니까 목줄 채워서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해요."

 

보보 주인이 이 말을 할 때만 해도 그게 뭐 그리 어렵나 싶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있어 보보가 문 앞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보에게 가슴 줄을 채워 밖으로 나갔다. 대소변 살짝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보보가 조금씩 앞으로 가더니 결국은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다 돌게 되었다. 개가 워낙 힘이 센 것도 있고, 들어가자고 그러면 안 들어가겠다고 벌렁 들어 눕는 바람에 결국 1시간 동안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운동이 되어서 좋겠다고? 밤 11시가 넘어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산책하는 것이 과연 좋을지는.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5시쯤, 방문을 자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보보였다. 꼬리를 기운차게 흔들며 문을 바라보는 것을 보니 나가자는 이야기였다. 집에서 대소변을 안 보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정말 화장실에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쨌든 또 다시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새벽이라 이 녀석이 기운이 넘치는지 마구 앞으로 전진 하는 것이었다. 워낙 뛰놀기를 좋아하는 녀석인데 나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 불쌍하여 이번에는 그냥 같이 뛰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원래 빨리 뛰는지라 같이 뛰는 데만 신경 쓰다 보니 후진하는 차에 치일 뻔 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갑작스런 보보의 방향 전환에 앞으로 넘어져 코가 깨질 뻔한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온갖 모험을 다 겪고 온 후 피로에 지쳐 침대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위기> 보보 씻기기!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보보를 씻겨서 산책가자는 것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보보를 잘 씻겨서 빗기고 나가면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 말에 동의했는데 그것이 실수였다. 처음에 그 친구가 개를 잘 다루어서 목욕을 시킬 줄 알았다. 그랬는데 결과는 보보와 나만 샤워 부스 안에 갇혀 목욕을 하는 것이었다.

 

보보가 자꾸 욕실에서 도망치자 그 친구가 샤워 부스 안에 들어가 보보를 씻기라는 것 아닌가. (우리 집은 화장실 문이 안 닫힌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가긴 했는데 보보가 씻기를 싫어하는지 샤워 부스를 긁어대며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다. 이미 물도 묻히고 비누칠도 조금 한 상태라 그대로 나가게 하면 집안이 난장판이 될 판이었다. 그래서 보보의 목을 감싸안고 괜찮다며 사투을 벌이며 씻겼다. 보보를 안고 있다 보니 손이며 팔이며 보보 발톱에 긁혀 상처가 나고, 중간 중간 물을 털어대는 녀석 때문에 옷이 물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처절한 사투 끝에 결국 보보를 다 씻고 내보냈다.

 

친구가 닦아주고 말려준다고 해서 좀 쉴 수 있을까 했는데 갑자기 "왈왈" 짖는 보보 소리가 들렸다. 개를 길러본 적이 없다는 친구는 그 소리에 얼어 약간의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보보를 잡았다가 수건을 털을 닦고 드라이기로 말려주기 시작했다. 샤워할 때와 달리 드라이기에 대한 거부감은 금세 사라져 눈을 감고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드라이를 다 한 후에 빗으로 예쁘게 빗기고 빗겨 드디어 외출 준비를 마쳤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으나 이제 와서 나가지 않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시작한 산책. 어디선가 개가 주인보다 앞서 걸으면 안된다는 것을 봤기에 보보보다 앞서 걸으려 노력했으나, 이 녀석이 절대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빨리 걸으려는 경쟁을 두세 번, 결과는 역시 내 패배였다.  나보다 빨리 가지 않게 가슴줄로 그 녀석을 통제할 수 밖에 없었다. 가는 길에 보보가 좀 큰 편이라 그런지 때때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순종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털이 하얀 편이고 귀엽게 생겨서 만져보고 싶어하는 여성들도 있고, 아이들도 있었다. 아 이 맛에 애완견이랑 산책을 하는가 싶었다.

 

<절정> 보보 싸움 말리기!

 

그리고 아파트 근처에 있는 별다방에 가서 보보를 앉혀 놓고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슈나이저 세 마리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인사를 하는 가 싶더니 갑자기 슈나이저 한 마리가 마구 짖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뒤에 있는 주인이 데리고 갔으나, 그것이 열이 받았던지 보보가 그 개들을 보며 따라가려 온갖 힘을 다 쓰는 것이었다.

 

 결국 보보에게 진 내가 그 개들을 따라가려고 일어나는 순간, 보보가 앞으로 미친 듯이 달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의자 아래 줄이 꼬여 있었기에 내 발은 엉키고 커피는 엎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찌어찌하여 보보를 따라 마치 만화 속 주인공처럼 개에게 끌려 아까 보보와 신경전을 벌인 개들에게 갔다.

 

보보가 큰 덩치를 이용해 겁을 주려고 했는가 싶었는데, 그냥 가서 물지도 않고, 발로 내려 치지도 않는 것이었다. 친구가 필요했던 탓이었을까? 그런 여러 사연을 겪은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저녁쯤에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생각이었으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1층 이웃에게 들려 보보를 돌려주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보보가 얌전한 편이라 물어뜯은 것이 없는데도,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보보 발톱에 긁힌 상처들이 선명했다. 하지만 애완견을 기르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난장판이 된 집도 발톱에 긁힌 상처들도 아니었다.

 

 

<결말> 애완견 구입 보류!

 

그것은 내가 정말 애완견을 배려해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처럼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나니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러나 그 짧은 만족을 위해 우리 집에서 애완견을 기른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 듯 싶었다. 1층에서 내내 생활하는 이웃과 달리 나는 하루종일 밖에 있어야 하고, 하루만 같이 지내도 이렇게 피곤해 하는데 일주일을 같이 있으라고 하면 아무래도 애완견에 대해 쏟는 정성이 부족해 질 것 같았다.

 

비록 짐승이나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나랑 같이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뭐, 물론 내가 하루뿐이지만 개를 길러본 결과 무척 힘들었다는 것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그래서 일단 애완견을 사는 일은 보류하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 애완견은 안 사는게 좋겠지?"

일요일에 그렇게 고생을 한 나를 본 친구가 물어본 질문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한 것은 대체 무슨 마음인지.

"보보는 좀 큰 개라서 그렇고, 작은 개는 괜찮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애완견 구입 전 애완견 주인들도 기를 능력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자격 심사 제도가 있으면 참 좋겠네요.^^


태그:#애완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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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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