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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고양이 똥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고양이고양이 똥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 위창남

고양이 똥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강아지 똥을 보신 적은 있어도 고양이 똥을 본 적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양이들은 여간해서 자기 똥을 남이 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보고는 얼른 흙으로 똥을 덮어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바로 흙속에 묻혀 버리는 거죠.

어느 봄날이었어요.
겨우내 민들레씨앗을 품고 있던 강아지 똥은 노란 민들레꽃을 피웠답니다. 민들레가 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에이, 개똥이잖아!" 하며 다를 더럽다고 했는데, 민들레꽃이 피어나니 보는 이마다 '저렇게 더러운 강아지 똥에서 저렇게 예쁜 민들레가 피다니!' 감탄하는 것입니다. 강아지 똥은 어깨가 으쓱으쓱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강아지 똥이 민들레를 피우고는 너무 행복해하는 몸짓이 땅속에 묻혀 있는 내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보지 못해도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강아지 똥이 해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똑같은 똥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강아지 똥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 철 따라 피어나는 들꽃,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풀잎 사이를 오가는 곤충, 아침이면 풀잎에 맺혀 있는 이슬도 보는데 고양이 똥은 캄캄한 흙 속에 묻혀서 살아가다 그냥 흙으로 돌아간다니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닙니다. "에이, 더러워!" 소리를 듣더라도 강아지 똥처럼 따스한 봄날 파란 하늘 아래서 따스한 햇볕에 마음껏 몸을 쐬면 얼마나 좋을까 날마다 꿈을 꾼답니다.

고양이 난 정말로 청결한 동물이랍니다.
고양이난 정말로 청결한 동물이랍니다. ⓒ 위창남

어느 날 민들레를 피운 강아지 똥이 흙 속에 있는 고양이 똥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고양이 똥아, 이젠 네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무슨 말이야? 세상의 온갖 칭찬은 네가 다 듣잖아."

"아니야, 그건 너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야. 들판에 피어 있는 꽃들은 다 알아."
"무엇을 안단 말이지?"
"맨 처음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때까지, 뿌리가 깊이 내리지 않을 때까지는 물론 내가 많이 도와준단다. 그러나 꽃을 피우고 뿌리가 더 깊어지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정말이야?"
"그럼, 내게서 민들레만 피어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들판에 피어나는 수많은 꽃을 피워냈단다."

"어떤 꽃들이니?"
"민들레, 냉이, 꽃다지, 제비꽃, 양지꽃, 봄맞이꽃……. 봄에 피어나는 꽃 중에서 한 번이라도 나를 거쳐 가지 않은 꽃들이 없을 거야."

"너 대단하구나?"
"그런데 내가 피워낸 꽃들만큼 너도 많은 씨앗을 맺는데 도움을 주었단다."

"정말? 난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게 진짜 사랑이야. 자기를 주면서도 주었는지조차도 모르는 것.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을 고양이 똥 네가 풀꽃에게 준거야."

강아지 똥의 이야기를 들은 고양이 똥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저 흙 속에 묻혀 있다가 흙이 되어버리는 줄만 알았는데 들판에 피어나는 예쁜 풀꽃들 속에 자신이 들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고양이 똥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자기 몸 여기저기에 실뿌리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고양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 위창남

"얘, 넌 어떤 꽃을 피우니?"
"난 괭이눈이라는 꽃을 피운단다."

"괭이눈?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고 괭이라고 하는데 혹시 그 괭이니?"
"그래, 이파리가 시큼털털하지. 고양이들이 배탈 나면 나를 뜯어먹는단다. 그러면 감쪽같이 낫는단다."

"난 고양이 똥이야, 나도 피어난 꽃들을 보고 싶어. 나를 좀 데려가 줄 수 있겠니?"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 그런데 그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의 모습도 달라질 거고."

"무슨 뜻이니?"
"우리는 꽃을 피우려고 뿌리를 통해 많은 것을 먹지. 그렇다고 배탈이 날 정도로 먹진 않아. 그리고 먹으면 우리도 똥을 싼단다. 그걸 사람들은 일액현상이라고 하는데 그냥 이슬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내 뿌리를 타고 올라가면 내일 아침에 너는 작은 이슬이 되어 내 이파리에 맺힐 거고 넌 세상을 볼 수 있을 거야."

고양이 똥은 괭이눈의 실뿌리를 타고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생전 처음 긴 여행길을 떠난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올라갔을까 희미한 연록의 빛이 비치는가 싶더니 환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괭이눈 내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어 꽃을 피웁니다.
괭이눈내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어 꽃을 피웁니다. ⓒ 위창남

"와!"

이슬이 되어 괭이눈 이파리에 맺힌 고양이 똥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들판에는 봄꽃이 가득합니다. 아침 햇살에 이슬방울들이 반짝입니다. 그 예쁜 이슬방울 중의 하나가 자신이라니 믿어지질 않습니다. 하늘에서 맑은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양이 똥아, 너는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구나. 여기 풀잎 위의 이슬을 보아라. 각기 다른 모습이었지만 여기에 있는 이슬방울들은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준 것들의 흔적이란다. 하늘의 보석들이지. 너희는 작지만 너희로 인해 아름다워진 온 세상을 다 담을 수 있는 복을 주겠다."


#고양이#동화#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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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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