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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언덕 중턱 비탈에 자리하고 있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수도 아크라에서 차로 세 시간 거리인 읍내, 베고로마을에서 다시 차를 타고 한 시간동안 덜컹거리며 찾아온 학교. 진흙으로 이긴 교실 벽이 아이의 키높이 만큼만 빚어져있다. 나는 그들이 사는 곳에서 가장 흔한 흙과 나무로 된 학교를 보고 이 모습 그대로가 이 마을에 가장 알맞은 건축형태가 아닐까 하고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이 사진 틀 안으로 슬며시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 보쏨츠웨 초등학교 아이들이 사진 틀 안으로 슬며시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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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네요. 교실에 서면 언덕 위의 숲도 보이고, 맑은 하늘도 보이구요. 혹시 시멘트로 된 학교가 이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다소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어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 궁금증을 해결해야만 되겠다 싶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지은 건축물이 가장 생태적으로 좋다는 내용의 짧은 수필을 어느 생태주의 월간지에서 어설프게나마 읽은 적이 있어 기억을 더듬으며 주민들에게 문의를 했다.

"그건 지금 이 모습만 봐서 그래요. 이제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집으로 가죠? 염소와 닭들은 물론, 온갖 들짐승이 교실에 와서는 배설물을 남기고 간답니다. 심지어 새들이 천정에 둥지를 틀기도 하죠. 그리고는 또 교실바닥에 사정없이 배설물을 뿌리고요."

선생님의 항변은 계속 이어졌다.

"또 우기 때는 어떻구요. 비가 천정에서 새죠, 또 교실 벽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면 수업은커녕 아이들이 비를 피하기에 정신이 없어요. 그것뿐만 아니에요. 바로 옆 교실에서 수업하는 내용이 모두 들려와서 집중하기에 어렵고요, 또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뻥 뚤린 교실벽면을 쳐다보며 선생님의 수업에 집중하기가 쉽지가 않답니다."

"거기다가 낮 시간 해가 강렬할 때는 빛이 교실에 들어와 칠판을 바로 쳐다볼 수도 없어요. 수도 아크라나 베고로 읍내마을처럼 튼튼한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보는 것이 아이들의 소원이에요. 학교가 이렇게 열악하다보니, 선생님들도 도통 이런 시골까지 내려오려고 하지 않아요. 어쩌다 이런 곳에 부임을 받으면, 큰 도시로 나갈 때만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는 선생님들도 있죠."
 
그랬다. 온통 진흙으로 이긴 집, 이엉으로 이은 집이 가득한, 어쩌면 온통 생태적인 건축물뿐인 이 마을에서 비가 새지 않고, 들짐승들이 함부로 들어와 배설물을 남겨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튼튼한 시멘트 구조물의 학교를 가져보는 것이 아이들과 선생님의 오랜 바람이란다.

특히나 이번에 새로 짓는 학교들은 코이카 사업을 포함해서 한 후원자님의 개인 후원으로 짓는 보쏨츠웨 초등학교까지 설계나 시방서, 물량내역서 모두 한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 가나 교육부에서 가장 표준으로 제시하는 내용을 전적으로 받아드리고 그대로 따르기로 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는 듯 했다.

튼튼하고 안정적인 건축물이면서 가장 생태적으로 조화로운 건축물은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할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고, 아이들이 속히 쾌적한 학교 건물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서둘러 사업을 진행하기로 약속하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가나 교육부에서 권장하는 표준 초등학교의 외부 전경입니다.
▲ 표준 초등학교 가나 교육부에서 권장하는 표준 초등학교의 외부 전경입니다.
ⓒ 차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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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몇몇 학교를 들렀다. 보쏨츠웨 학교처럼, 벽면이 없거나 부실한 초등학교와 유치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역시나 흙벽으로 되어 있는 학교는 한눈에 보기에도 관리가 잘 안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로 염소들이 교실 바닥에 들어와 있는가 하면, 마른 잡풀과 먼지들이 들새의 배설물들과 뒤섞여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 숙소 앞마당에 염소가 노닙니다.
▲ 초등학교 경내 한 초등학교 교사 숙소 앞마당에 염소가 노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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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짐승들 배설물과 먼지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 초등학교 바닥 바닥에 짐승들 배설물과 먼지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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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에, 이번에 코이카 지원 사업으로 신축할 대상학교 스물 두 개소 중 하나인 유치원을 방문했다. 이건 정말 설명하기가 무안할 정도다. 아니, 차라리 아이를 이 유치원에 안 보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학교시설이었다. 금방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얇은 함석이 겨우 지붕이랍시고 흉내를 내고 있고, 벽면은 숫제 아예 없다고 설명하는 게 바른 표현일 듯 하며, 바닥은 그나마 흙바닥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여기서 서너 살 난 아기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들이 무엇을 한다는 걸까? 우유를? 밥을 먹일 수나 있을까? 잠을 재울 수나 있을까? 설마, 여기서 아기들을 재운다고? 바닥과 지붕, 그리고 그 지붕을 지지하고 있는 몇 개의 각목 버팀목이 전부인 그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물을 길으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온갖 집짐승 들짐승들의 배설물들이 널부러진 이 지저분한 먼지투성이 바닥에서 뒹구는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왔다.

코이카-월드비전 교육사업으로, 이 유치원 건물을 대신할 안전하고 튼튼한 학교를 새로 지을 것입니다.
▲ 유치원 코이카-월드비전 교육사업으로, 이 유치원 건물을 대신할 안전하고 튼튼한 학교를 새로 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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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내가 바라본 그 '유/치/원' 앞에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국가로 UN이 평가하는 가나, 이 나라의 유치원을 바라보며 갑자기 아직 가보지 않은 그 숱한 이웃 아프리카 국가의 학교가 연상되어 차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생태주의 건축이고, 원조철학이고를 다 떠나서, 당장 안전하고 깨끗한 학교를 서둘러서 짓는 게 가장 급선무라는 생각이 너무나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들었다.

보쏨츠웨 초등학교는, 한국의 은퇴하신 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평생 모으신 월급으로 짓는 학교인지라, 하나라도 더 정확히 파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를 아직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으시다는 그분에게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제자들을 키우는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의 열악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꿈을 꾸셨고 상상을 하셨을까 생각하면, 사업초기단계에서부터 무엇 하나 허투로 대충 진행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떤 학교를 짓는 게 올바른지 더 알고 싶어, 나는 이웃마을을 방문하여 한 장로교단에서 지원해서 신축했다는 번듯한 한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튼튼한 벽과 미닫이문이 설치되어있는 학교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고 모두 학교를 떠나 있었고 문은 닫혀 있었다.

벽 틈 사이로 두 눈을 가져가 교실내부를 훔쳐보길 반복하다 마침 교실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남자가 교실 밖에 앉아서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 학교를 관리하시는 분인가 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꽤나 나이가 많으신 분이셨다. 교장선생님이라고 하시면서, 아이들 성적표를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하며 웃음을 건네신다.

볕 좋은 날, 아이들은 귀가하고, 파란 잔디가 돋아난 앞뜰을 마주한 채, 아이들의 성적표를 보고 있는 교장선생님의 뒷모습은 사뭇 몽환적일 정도로 평화롭게 느껴졌다. 마을은 조용했고, 이따금 동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이전에 보고 온 보쏨츠웨학교와 달리 무척이나 잘 정돈된 학교였다.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곧 다시 여기 내려와 몇 년간 정착할 거라 소개를 한 후 다시 뵙기로 한 채 학교를 떠났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난 오후, 교장선생님 혼자 남아서 아이들 성적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 교장선생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난 오후, 교장선생님 혼자 남아서 아이들 성적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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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베고로 마을로 돌아왔다. 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또 주민들 스스로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그들 스스로 찾아가면서 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쉽지는 않겠다 싶다. 아직은 머릿속에 모세혈관처럼 세부적인 그림이 그려지진 않는다.

하지만,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처럼, 여기서 만나는 아이들과 주민들 안에, 그들의 몸속에, 유전자 속에, 영혼 속에 분명히 그들을 위한 최적의 답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 이 마음을 접어버리는 순간, 그 땐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무모한 수고에 불과할 것이다.

갑자기 몰려든 먹구름으로 나를 당황하게 했던 방문 첫날, 그날 묵었던 호텔로 다시 돌아갔다. 말이 호텔이지, 호텔 전체에 - 객실, 화장실, 욕실 전체 통틀어 - 거울이 단 하나도 없는 이 기괴한 호텔에서 교육청 공무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달팽이 요리가 나온다. 장정 주먹보다도 더 큼직한 달팽이 몇 마리가 사발에 풍덩 들어가 있다.

도로가에서 아이들이 달팽이를 잡아 길다란 나무막대기에 봇짐처럼 매달고서는 지나가는 차량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 하루 종일 한 개라도 팔까 싶지만, 아이들에겐 자연이 공짜로 선물해주는 값진 선물이다. 누가 저런 것들을 살까 했는데, 오호라 이런, 바로 저녁 식탁 위에 떡하니 올라오다니. 나는 무척 허기가 졌으나, 현지 음식에 천천히 적응하기로 하고 밥을 주문했다. 아직, 달팽이 요리보다는 손으로 먹는 것에 훈련이 되지가 않아서!

저녁 식사 자리에 등장한 야생 달팽이 요리입니다.
▲ 야생 달팽이 요리 저녁 식사 자리에 등장한 야생 달팽이 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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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고로 마을에 또 다시 저녁이 잦아든다. 한가롭게 볕을 쬐던 도마뱀도 어둠이 내리자 집으로 돌아갔다. 산할아버지는 이제야 나를 베고로 주민으로 인정했나보다. 언덕 아래를 내다본다. 정전이 되기를 몇 차례, 베고로 마을은 어둠과 반짝임을 반복하며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평화로운 밤이다. 내일은 다시 수도 아크라로 가야한다. 

가나에서 가장 흔한 야생동물 중 하나인 도마뱀(수컷)이 한가롭게 볕을 쬐고 있습니다.
▲ 도마뱀 가나에서 가장 흔한 야생동물 중 하나인 도마뱀(수컷)이 한가롭게 볕을 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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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나, #보쏨츠웨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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