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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거 맛있다. 우리 이거 사자" "그래 사라" "왜 자기는 안사게?" "응 난 안사" 하곤 그곳을 나왔다.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성읍민속마을 오기만 하면 무엇인가 사라고 한다. 지난번에 제정신을 잃고 거금을 주고 건강식품을 산 경험이 있다.

 

하여 다음부터는 그런 것에 눈길도 안주기로 맹세를 한 것이다. 그런데 나도 그곳에서 주는 식품을 먹어보고 안 사면 미안할 것같기에 아예 그곳을 나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한번의 쓰라린 경험은 허당이 아니었다. 잠시 후  친구들은 양손에 잔뜩 사들고 나온다.

 

 

 
요즘은 빌딩, 아파트, 연립주택, 빌라주택 등 콘크리트로 만든 건축물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가끔은 예전에 많이 살던 초가집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포선면 성읍리에 가니깐 그런 그리움이 해결이 되었다. 무언가 정겨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제주도 성읍민속마을 대문에는 커다란 나무가 세 개가 걸쳐 있었다. 한 개 걸쳐 있을 때는 주인이 집에 있다는 것이고, 두 개는 이웃집에 마실간 것이고, 세 개는 멀리 가서 집에 없으니 그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란다. 성읍민속마을의 봉사자가 제주도의 특색을 설명해 준다 .
 
우리가 흔히 똥돼지(흑돼지)라고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흑돼지를 키우게 된이유는 뱀이 많아서이고, 흑돼지는 뱀을 무서워 하지 않고, 독이 번지지 않아서라고 한다.  
 
 

 

아기를 키우던 애기구덕은 억새풀을 많이 깔아 푹신하게 만든 다음 아기를 그곳에 눕혀 키운다고 한다. 자신도 그곳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물허벅(물동이)과 물구덕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그 물허벅은 여자만 지는 것이라 강조했다. 남자가 지면 안 되는 경우는 지금 사는 아내와 이혼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현재는 남자들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예전의 풍습대로 생활하는 남자가 많아 젊은 부부들은 이혼율이 많다고 한다.
 
우리들은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제주도 사투리를 섞어 말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쩜 같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면서 말이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는지. 이럴 땐 우리나라도 넓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가르쳐 준 제주도 사투리는 큰딸은 큰 년, 둘째는 셋년, 세째 딸은 조금년(말젯년)이라고 한다. 큰아들은 큰놈, 둘째는 셋놈, 세째는 말젯놈이라고 한다. 외동딸은 좋고 크다는 뜻으로 조 큰 년, 외동아들은 조큰놈, 비바리는 쳐녀, 냉바리는 시집간 색시, 좀녀는 해녀 등을 가르쳐 주었다. "얼른 들으면 욕같지만 욕은 정말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
 

잊혀지고 사라지는 초가집과 그 시절의 생활분위기는 차분하고 평화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집집마다 돌담을 만들어 놓았고 그 돌담 위에는 초록의 이파리들이 가리워져 상큼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돌하르방의 손이 오른손이 위로 올라가 있으면 문관, 왼손이 위로 올라가 있으면 무관을 나타낸다고 한다. 현재 제주도에는 제주대학, 시청, 삼성혈, 관덕정 등제주시내에 21기,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12기, 대정읍의 인성 안성 보성 에 12기등 도합 45기가 있다고 한다.
 
돌하르방 석상은 수호신적, 주술종교적, 경제금표적 기능을 지녔듯이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성읍민속마을에서 만난 초가집과 그곳의 풍습은 여행길에서 만난 비타민 같았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게 하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는 무엇을 산다는 것에 대한 유혹을 물리쳤다는 것이 큰 수확이라 하겠다. 제주도에서  귤나무 한그루를 사와 큰 화분에 심은 것이 전부이다.

덧붙이는 글 | 5월11일~13일까지 제주도 갔다왔습니다


태그:#성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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