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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통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올해 들어 2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4천원. 그러나 내년엔 이마저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2010년도 최저임금액이 이번 달에 결정된다고 하는데, 노동계는 인상안인 5150원을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경제악화를 이유로 3770원으로 삭감하자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경제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의기양양했다. 그게 철없는 시민기자의 호기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과거 어려웠을 때 주유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터라 주유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 줄 알았다.

내가 사는 곳은 충청남도. 카메라를 손에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평소 이용하는 주유소로 향했다. 빨간색 기자명함을 내보이고 사장부터 찾았다. 사장은 몹시 바쁜 표정으로 "누구세요? 왜 그러십니까?"라며 극히 사무적으로 다가와 내 곁에 섰다. '나는 이 주유소를 이용하는 고객이자 시민기자다. 시간을 잠시 내주면 사장은 물론, 근무하는 분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로 시작하여 취재 취지를 알리고 시간을 내달라고 사정을 했다.

"보시다시피 바쁩니다.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사장의 싸늘한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유하러 오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지 말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직원도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래도 사장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자, '지금이 바쁘면 다른 때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바쁘기 때문에 다음에 와도 별 수 없단다. 당당한 시민기자의 호기는 그렇게 보기 좋게 짓밟혔다.

딱지를 맞고 돌아서면서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주유소 바꿔야겠다'. 같은 말이지만 하나는 단골 주유소를 바꾼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취재할 주유소를 바꾼다는 말이다. 사장에게 주유소 취재를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나서 '기자들은 대단히 위대한 분들'이라는 결론도 얻었다.

주변의 이야기, 경험담, 전화취재, 인터넷 취재원을 이용한 기사 등은 써봤지만 직접 인터뷰를 요청하기는 처음이었다. 근데 초장부터 퇴짜를 맞고 보니 기자로 밥 벌어먹는 이들(?)이 참으로 위대해 보였다.

사장에게 취재 거절당하고 직접 '들이대다'

종일 차량과 주유기, 주유기와 사무실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집에 와서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진다고 했다.
 종일 차량과 주유기, 주유기와 사무실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집에 와서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진다고 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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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방법을 바꿔 무작정 들이대기로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취재하는 경우, 고용주에게 직접 접근하는 방식은 무리다 싶어 직접 비정규직 노동자인 주유원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1번 국도변의 주유소 세 개가 연달아 있는 그곳을 목표로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주유원이 가장 한가한 시간은 오전 11시경이다. 전투 채비를 갖추고 목표 주유소로 갔다.

꼭 주유할 이유도 없는 차를 주유소에 들이대고 주유하는 척하고는 슬그머니 주유원을 붙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3만원 어치로 주유가 끝난 차, 할 수 없이 빼서 한쪽에 세웠다. 그리고 짐짓 이야기가 덜 끝났다는 듯 다시 주유원 김아무개씨(57)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더니 의외로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하루 일과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근무자에 따라 다 달라요. 제 경우 낮 근무죠.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합니다."

계속해서 그가 털어놓은 하루 일과는 이렇다. 출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주유기 주변을 청소한다. 그 전날 주유소에서 잠을 잔 밤 근무자가 아침밥을 먹으러 가면 자신이 들어와 주유를 하는데 아침 출근 시간대가 가장 바쁘단다. 아침을 먹고 밤 근무자가 오면 같이 오전 10시까지 주유를 한다. 밤 근무자는 저녁 7시에 시작하여 밤 10시까지, 그리고 새벽 4시에서 오전 11시까지 근무한다.

김씨에 따르면 자신이 근무하는 주유소에는 사장 말고 3명의 주유원이 있는데 자신처럼 낮 근무자가 한 명 더 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 마침 그는 유조차를 몰고 배달을 나가 자리에 없었다.

내가 취재한 시간은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난 오전 10시경이어서 그런지 차량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 노닥거리듯 취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조차가 오면 받아내는 일이며, 세차가 많아 앉아 있을 틈이 없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세차를 할 때는 사장이 주유를 도와준다고 한다.

종일 차량과 주유기, 주유기와 사무실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집에 와서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진다고 했다. 사무직으로 지내다 명예퇴직을 한 터라 김씨의 경우는 특히 더 주유소 일이 몸에 부친다고 했다.

하루 11시간 일하고 한 달 90만원... "그래도 이게 안정적"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어떻게 살아요. 오늘로 꼭 세 달이 되어 가는데 아직 몸에 배지 않아 힘듭니다. 11시간을 꼬박 이러고 들어가면 삭신이 야단법석이죠. 아직은 그래요."


한가함은 잠시, 그치지 않고 들어오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주유를 하는 그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범벅이다. 하루 11시간 주유소 콘크리트 바닥을 뛰어다니는 셈이다. 듣자 하니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어서 공식적으로는 10시간 일하는데, 실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단다. 주유하다 짬을 내 인근 식당에서 주유원들이 번갈아가며 들러 식사를 하는데 10분에 '뚝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하시고 한 달에 얼마나 받으세요?"

내 질문에 그는 머리를 긁적인다.

"아, 그게… 90만원 받습니다."

한 자녀는 독립을 했지만 대학생이 한 명 있어 걱정이란다. 하지만 1년 전 실직 후 이곳저곳 기웃거렸지만 주유소가 제일 나은 것 같다고 했다. 나은 이유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되고, 자신이 그만두지 않는 한 안정된 직장(?)이란 거다.

쉬는 날은 한 달에 세 번 정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계산을 해봤다. 하루에 11시간, 한 달 27일, 총 297시간 일하며 90만원을 받으면, 결과적으로 하루 11시간씩 주유총을 쏜 대가라는 게 시간당 3030원이다. 현재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 시간당 4000원도 못 받는 꼴이다.

그러나 주유원이 모두 90만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경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김씨와 같이 근무하는 또 다른 김아무개(72, 배달을 나간 주유원)씨는 125만원을 받는단다. 유조차를 운전하고 경력도 3년이 지났으며 위험물안전관리자 자격증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그도 계산해보면 시급 4200원, 가까스로 법정 최저임금을 넘긴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법정최저임금, 시골에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요

김씨가 일하는 인근의 다른 주유소에서 젊은 여주유원을 만났다. 그 학생 주유원의 경우, '알바'를 하고 있으며 시급 2800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일전에 들른 24시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학생도 시간당 2800원을 받는다고 했다. 이곳은 시골이라서 법정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며 투덜대던 그 학생 생각이 났다.

법이 정한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노동자가 올해 들어 220만 명을 넘어섰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특별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헐값노동이 심각한 수준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5150원으로 정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3770원을 주장하고 있다. 오르는 물가를 감안해 올리지는 못할망정 깎겠다는 발상은 무엇일까.

"월급 받아 봐야 집세 내고 공과금 내기도 바빠요. 그간 들어가던 보험료며 이웃의 경조사에 눈감을 수 없고, 그저 풀칠하는 수준이죠."

이렇게 말하며 허탈하게 웃던 김씨는 "최저임금이 하향 조정될지도 모른다던데요?" 했더니 "그럼 죽으라는 거죠 뭐. 지미. 허긴 지금도 최저임금도 못 받는데요. 뭐" 한다. 그의 씁쓰레한 웃음이 자꾸 돌아선 내 목덜미를 잡는 듯하다.


태그:#주유원, #주유소, #비정규직,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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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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