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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 김룡사 동종(보물 제11-2호,사인 비구 동종)은 당좌에 특별한 장식을 더했다.
 문경 김룡사 동종(보물 제11-2호,사인 비구 동종)은 당좌에 특별한 장식을 더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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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구도자의 길>전을 보러 불교중앙박물관을 향하는 동안 사인 비구의 종과 인각사 출토유물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가슴 설렜다.

'사인 비구의 종들을 모두 직접 봐야지' 몇 년 째 마음먹고 있었지만, 종들이 있는 경상도 등의 여러 사찰로 쉽게 나설 수 없어 몇 년째 애간장만 태웠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 사인 비구의 종 한 점이 전시된단다. 그것도 나사는 곳과 먼 거리에 사인 비구가 남긴, 김천 직지사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그 종이란다. 그러니 어찌 마음 설레지 않으랴!

사인 비구는 조선 숙종 무렵의 승려이자 장인이다. 그는 경기도와 경상도 등에 8구의 종을 남겼는데 이 종들은 모두 보물로 지정(보물 제11-1~보물 제11-8까지)되어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종은 보물 제11-2호로 지정된 '문경 김룡사 동종'으로 직지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보관되던(는) 것이다.

드디어 사인 비구의 종들을 만나다

사인 비구의 종들은 특별하다. 신라종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풍부하게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남긴 모든 종의 형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비천상 대신 보살상이나 위패를 새긴 종도 있고, 불경이나 주조 내력을 새기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종에서 볼 수 있는 9개의 유두 대신 1개, 혹은 5개의 유두를 넣기도 했고, 대좌나 용뉴 등 종의 특정 부분에 변화를 준 것도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종처럼 당좌(종을 치는 부분)에 특별한 장식을 베푼 것도 있다.

한사람이 만들었지만 저마다 모양이 다른 이 종들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서로 연결, 그리하여 사인 비구가 남긴 종 8개가 모여 우리나라 종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요소와 가능성을 갖추었다. 때문에 사인 비구의 종들을 모르고서는 우리나라 종들을 결코 이해했다 할 수 없을 만큼 이 종들이 우리나라 종 연구에 절대적인 존재라고 한다.

'구도자 사인은 종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하였을까?' 사인 비구의 종을 볼 때면 묻곤 한다. 이건 참 웃기는 이야기인데, 사인 비구의 종을 두고 막상 돌아오려니 참 아쉽다. 그리하여 마냥 서성거리며 종의 부분 부분들을 보고 또 보며 종 앞에서 한참을 더 서성였다.

 금동사자진병향로(통일신라 9세기, 군위 인각사 2008년 출토):지난해 출토된 유물로 일반인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손잡이가 특별한 이 향로는 귀하다. 손잡이 끝은 사자로 장식됐다.
 금동사자진병향로(통일신라 9세기, 군위 인각사 2008년 출토):지난해 출토된 유물로 일반인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손잡이가 특별한 이 향로는 귀하다. 손잡이 끝은 사자로 장식됐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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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각사 2008년 출토 청자완으로 우리나라 청자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유물이다. 통일신라 8~9세기 인각사의 흔적이 스며있는 유물.일반인들에게 첫공개라 이 유물만 보러 오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인각사 2008년 출토 청자완으로 우리나라 청자 발전사를 볼 수 있는 유물이다. 통일신라 8~9세기 인각사의 흔적이 스며있는 유물.일반인들에게 첫공개라 이 유물만 보러 오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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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중국산 해무리굽 청자, 탑 모양 꼭지 뚜껑이 있는 청동 향합, 사자상이 장식된 손잡이가 달린 금동병 향로 등 인각사에서 지난해 출토된 10여점의 유물들 또한 사인 비구 종처럼 한번 보고 말기에는 아무래도 아쉬웠다.

유물들 중 완형 손잡이 향로(금동사자진병향로)는 세계적 희귀유물로 국내에 두 점밖에 전하지 않던 것이라 특히 주목받는 유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토된 이 유물들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그러니 더욱 더 특별하다.

마음이야 매일 드나들며 인각사 출토유물들을 시시때때로 보고 싶었다. 일연 스님도 워낙 좋아하고 또한 볼 때마다 이전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거나 무언가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뒤로 멀찍이 서서보고, 앉았다 섰다 구부렸다… 이렇게 보고 또 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묻는다.

"뭐 대단한 것이라도 있어요?"
"이 청자 바닥 무늬들 속에 앵무새 세 마리가 있어요. 한번 찾아보세요. 중국에서 건너온 건데 그릇의 선들을 비교해 보세요. 점차 달리지고 있지요? 이 유물들이 우리나라 청자가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내요. 지난 해 인각사에서 출토된 건데 처음 공개되는 거라 이걸 보려고 지방에서 일부러 오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로 중요한 유물이래요. 국보로 지정될 거라는 소문도 있고, 일연 스님이 머물며 삼국유사를 쓴 인각사 잘 아시죠?"

군위 인각사는 삼국유사의 현장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다. 일연 스님은 고려시대 사람으로 무신정권과 몽골의 말발굽에 온 국토가 유린되던 13세기에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때문에 인각사는 그간 고려시대 유적지로 더 유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에 출토된 이 유물들은 모두 통일신라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인각사의 역사를 새롭게 쓸 유물들이다.

종교를 팔아 배불리는 너희가 지옥에 갈 악귀 !

<승-구도자의 길>에서 취옹화사 김명국의 <달마도>를 만날 수 있어서 특별하다. 워낙 유명한 '달마(대사)'나, 지니고 있으면 '복이 깃들고 액이 소멸 된다'는 '달마도'에 대해서는 생략하고라도 역사 인물 중 달마도로 유명한 사람은 단연코 '취옹화사 김명국'이다.

조선의 화가로는 삼원(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과 삼재(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가 유명한데, 이들 못지않게 유명하여 널리 회자되는 화가로는 최북과 김명국이 있다. 김명국은 최북, 장승업과 함께 미치광이 화원으로 불린다.

인물화와 산수화에 뛰어났던 그가 남긴 작품은 <달마도>를 비롯하여 <기려도><탐매도><설경산수도><사시팔경도> 정도가 고작이다. 당대 신필로 불렸으며 도화서 교수까지 지냈건만 김홍도나 신윤복처럼 이름이 낯익지 않은 것은 그들처럼 그림을 많이 남기지 않았기 때문(그것도 대중적인 그림을)이라고 혹자들은 말한다.

 취옹화사 김명국의 <달마도>와 심사정의 <보남도>
 취옹화사 김명국의 <달마도>와 심사정의 <보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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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화 하나. 김명국도 다른 화원들처럼 술을 워낙 좋아했단다. 때문에 양반이건 일반인이건 그림을 부탁하려면 반드시 술을 내밀어야만 했다. 어느 날 김명국의 소문을 쫒아 중 하나가 '명사도'를 그려달라며 포목 수 천 필을 사례로 바친다. 명사도는 죽은 사람이 염라대왕 등의 십왕에게 재판을 받고 지옥 혹은 극락으로 가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는 사례로 받은 포목 수천필로 매일 술에 취해 살 뿐, 몇 달 동안 붓 한 번 들지 않는다. 중이 화난 것은 당연하다. 수차례의 재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몇 달을 술에 취해 살던 그가 어느 날 붓을 휘둘러 순식간에 그려낸 그림이란…. 그림을 본 중은 그림값을 되돌려 달라며 노발대발했다. 그림 속 명부전의 죄인들이 모두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이런 그림을 그렸단 말이오? 죄인들이 모두 중이니 내가 그림을 가지고 절로 돌아가면 큰 낭패를 볼 것이오. 이런 그림은 필요 없소. 내가 준 포목을 도로 내놓으시오"
"이 그림이 뭐가 잘못되었소? 그대들이 일생동안 하는 일이란 중생을 현혹하고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기만하는 것이니 지옥으로 갈 사람들은 중들이 아니오? 포목은 내가 먹어치워 내 뱃속에 있으니 가져가려면 내 배를 째시오. 중이 살생계를 범하는지 한번 봅시다. 껄껄~"

그 다음은 어찌 됐을까?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쩔쩔매는 중에게 그는 "술을 더 가져오면 또 모를까!" 라며 배짱을 튕겼단다.

중이 또 가져온 술 몇 말로 종일 취해있던 그는 어둑해질 무렵에야 순식간에 붓을 휘둘러 삭발한 중들의 머리에 머리칼을 모두 심는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염라대왕 앞에서 벌벌 떨던 악귀 형상의 스님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괴기스러운 지옥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그림에 그 중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나!

김명국의 <달마도> 앞에서 그가 남긴 '촌철살인'의 일화를 떠올렸다. 구도자(종교인)의 바람직한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일화 같아서. 비단 스님들뿐이랴. 김명국이 살던 시대가 지금과 같았다면 그는 또 다른 종교의 구도자들을 또한 이리 비웃지 않았을까? 종교도 사업화 되어버린 이 시대, 모든 종교인들이 뜨끔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화 아닐까?

노승이 소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가사를 꿰매고 있는데 그 앞에는 작은 원숭이 한마리가 실 장난을 하고 있는 심사정의 <보납도>도 볼수록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보고 또 보고 시시때때로 보고 싶은 유물들

 스님과 불자, 도반들끼리 온듯한 일행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스님과 불자, 도반들끼리 온듯한 일행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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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놓고 두드렸음직한 커다란 목탁과 그리 흔하지 않은 목탁 및 염주
 놓고 두드렸음직한 커다란 목탁과 그리 흔하지 않은 목탁 및 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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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중앙박물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승(僧)-구도자의 길(2009.4.29~7.12)>전은 '불교 유물들을 통해 스님의 일생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전시 유물들은 출가->수행->전법(傳法)->입적에 이르는 스님들의 일생을 상징하는 유물 247점. 이중 보물은 모두 11점이며 나머지 유물들도 우리 유물사에 무척 중요한 것들이란다.

전체적인 구성도 탄탄하다. 출가에서 입적에 이르기까지를 큰 주제로 분류, 큰 주제 아래 소제목을 두고 그에 맞는 유물들을 전시하였다. 때문에 유물들을 출가부터 흐름따라 보다보면 스님들의 일생을 칼라 사진을 풍성하게 넣어 알기 쉽게 설명한, 잘 만든 한권의 책 같다고 할까?

우리 불교유물들 중에는 스님들과 관계되는 것들이나 스님들이 주인공인 경우도 많지만 스님들이 장인이나 예술가가 되어 남긴 작품들도 많다. 출가자(구도자)이면서 장인이나 예술기로 산 이런 스님들을 이번 전시에서 조명한다. 사인 비구를 비롯하여 불상을 조각, 불화(탱화)나 스님들의 진영을 그린 화가 스님 등 여러 스님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스님들의 일생을 다룬 전시회이지만 우리 유물사에 워낙 중요한 유물이 많아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다는 소문이다. 두 차례나 박물관에 갔다. 두 차례 모두 꽤 꼼꼼하게 유물들을 관람했다. 그럼에도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가서 다시 이 유물들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아야 할 유물들이 많았다.

또한 이번 전시회의 유물 대부분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전국의 박물관이나 대학의 박물관, 각 사찰의 박물관에서 보관·전시되는 것들인 만큼 전시회 후 이 유물들을 보려면 유물들이 있는 곳으로 일일이 나서야만 한다. 때문에 이 유물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이 전시회의 의미는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청허당 진영(1767, 봉정사), 사명대사진영(1768, 봉정사), 청동 붕어형 삭도(조선후기, 직지 성보박물관), 지정4년명 청동 은입사향완(고려 1344년, 봉은사, 보물 제321호), 16나한도(조선 1725년, 송광사, 보물 제1367호), 영전사지 보제존자 서탑 사리장엄구 일괄(1388, 국립 춘천박물관) 등도 꼭 눈여겨보자.

아쉬운 점도 있다. 각 유물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넣었으면 좋으련만, 유물명과 문화재지정, 시대와 출처 정도만 간략하게 적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용도의 물건들일까?' 궁금한 유물들도 있었다. 불자인 나도 이정도인데 비불자들은 오죽할까?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이들이 우리역사와 문화재를 좀 더 친근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의 체험행사도 있다. 자세한 것은 불교중앙박물관에 문의(02-725-0112)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불교중앙박물관은 서울 조계사에 있다.


#승-구도자의 길#불교중앙박물관#조계사#부처님 오신날#승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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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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