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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족과 함께 콜로세움 쪽에서 고대 로마의 정치 중심지,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길의 한쪽 벽면에는 전성기 로마시대의 영역을 나타내는 지도가 대리석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지도 옆을 지나면서, 이 거대한 지도가 찬란했던 로마 제국에 대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향수가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왠지 이곳은 천천히 걸어야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걸어 나가자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의 청동상이 포로 로마노 앞에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서 있었다. 그 청동상의 얼굴은 미술학원의 데생용 석고상 얼굴과 매우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각국 여행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나는 청동상 아래에 새겨진 그의 이름을 읽어 보았다. 아! 그는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 ~ BC 44)였다. 물론 이 청동상은 고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청동상은 청동상의 배경인 포로 로마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카이사르의 모습을 현대의 사람들에게 참으로 적절한 위치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왼 손을 들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리 속에서는 그 누구도 모르지 않는 그의 세계적인 명대사가 하나씩 지나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부르투스 너마저도!".

 

  고대 로마의 전쟁 영웅이기도 했던 카이사르는 복잡한 사건을 이렇게 문학적이고 호소력 있는 한 마디 한마디로 핵심을 줄여 말할 줄 아는 천재적인 웅변가였다. 원로원과의 싸움, 소아시아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는가? 그런데 그는 그의 역사적 경험들을 단어 몇 마디로 요약해서 대중들에게 설파했다. 참으로 알아듣기 쉽고 기억에 오래 남는 말들이지 않은가?

 

  카이사르 청동상을 향한 사진 세례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서양 사람들은 이 청동상 앞에서 모두들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그를 로마의 독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카이사르의 위대함을, 창조적 천재성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를 아직도 로마 제국 역사 상 최고의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한 여행사를 통해 오늘 하루 동안 로마 시내의 역사유적을 설명해주는 지식 가이드를 신청했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한국인 가이드 아가씨를 따라 로마 시내를 차분히 주유하고 있었다. 키가 큰 가이드 아가씨는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피톨리노(Capitolino) 언덕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우리 지식여행 팀은 그녀를 따라 따가운 태양이 비켜가는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자유여행을 나온 배낭여행 여대생들도 이 엄청난 양의 로마 유적 앞에서 소중한 비용을 투자하여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서양 사람들의 카이사르는 우리가 생각하는 카이사르보다 훨씬 인기가 있어요. 서양인들은 유럽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사람 중의 한 명으로 카이사르를 기억하고 있어요. 그는 인간적 매력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인자하였으며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왜 저 아가씨는 2천년 전의 인물인 카이사르에 대해 저토록 열변을 토하고 있을까? 로마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카이사르가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전쟁 영웅이자 뛰어난 정치가였던 그가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그가 매우 인간적이고 따뜻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로마시대의 많은 여성들은 그 한 사람이 가졌던 강력한 힘, 그리고 그가 지배하던 로마를 보면서 그를 동경했다기보다 최대 권력자가 가진 인간적인 면모에 흠뻑 빠져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로마와 카이사르에 대해 쉬지 않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 가는 가이드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가이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아가씨의 목소리는 많이 잠겨 있었다. 이역만리 로마 땅에서 고국 동포들을 모아 두고 로마 역사에 대해 한 마디라도 더 전달하려는 가이드 아가씨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녀의 카이사르 찬사 중에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내용은 그가 「갈리아 전기(戰記)」라는 책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 책을 남겼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카이사르가 생활하던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면서 생각해보니 피부로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를 이끌던 무장이 남긴 위대한 명작. 갈리아 지방의 총독이었던 카이사르가 남긴 이 책은 갈리아와 게르만 등에 대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 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문학작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책에서 이 사실을 읽었을 때와는 다른 감흥이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전장을 누비고 수많은 정적들과 싸웠던 그가 차분히 앉아서 책을 저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지만 나는 그가 위대한 저술을 남긴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많은 역사적 사실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곡해되기도 하지만 그의 책에 남겨진 그의 생각과 사실들은 쉽게 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포로 로마노 전경을 외부에서 내려다보면서 진행되는 로마시내 지식 가이드는 아쉽게도 포로 로마노 내부로 들어가서 진행되지는 않았다. 대학생 당시의 로마 여행 때도 포로 로마노를 밖에서만 보고 지나갔기 때문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로마 역사책을 한국에서 읽고 왔던 나의 딸, 신영이도 아쉬워했다.

 

  "아빠, 저 포로 로마노 안에 안 들어간다고? 그러는게 어디 있어? 들어가서 봐야지. 아빠, 나 들어가서 보고 싶어. 왜 지식 가이드를 신청했어? 어제같이 우리 가족끼리 같이 다니면 좋잖아"

 

  지식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며 좋아하던 딸의 얼굴이 갑자기 울상이 되어 있었다.

 

  나와 나의 가족은 가이드를 따라 로마의 다음 일정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며칠간 이탈리아 북부 여행을 마치고 로마에 돌아온 후 다시 포로 로마노로 발걸음을 돌렸다. 결국 나의 가족은 옛 로마의 영광만큼이나 밝은 태양이 비추는 포로 로마노의 내부로 들어섰다. 나는 아내와 신영이를 데리고 암살된 카이사르가 화장되었던 자리를 찾아갔다.

 

  포로 로마노 지도를 보며 베스타 신전(Tempiodi Vesta) 쪽으로 걸어갔다. 신전의 왼쪽에 무너져 내린 작은 건물이 있었다. 누군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이곳이 서양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소였다는 것을 알 리 없을 만큼 허름한 유적이다. 벽면만 일부 남은 건물 유적지 왼편에는 '카이사르(CESARE)'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동판이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카이사르의 화장터였다.

 

  원래 이 무너진 건물터는 기원전 31년에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가 카이사르를 추모하여 건설한 신전이 있던 자리였다. 현재 신전 건물은 일부 벽면과 함께 건물을 받쳐 주던 일부 장식 부재들만 주변에 남아 있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육신이 태워졌던 화장터는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고, 특히 단체 여행자들은 이곳에 서서 카이사르의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카이사르는 왜 이리 끈질기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 아마도 불세출의 영웅이 심복과 정적들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기에 더욱 사람들 뇌리에 남았을 것이고, 그의 육신이 이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많은 여행자들의 연민을 자아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육신이 타 내리면서 스며들었을 화장터 아래의 바닥 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로마인들은 시신을 화장하면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고 한다. 화장하다가 한번 불꽃이 꺼졌다는 카이사르의 영혼은 하늘로 잘 올라갔을까? 2천년 전에 있었던 한 사건을 저 멀리 동양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애도할 필요야 없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치열한 삶을 살다간 한 인간에 대한 외경심이 일어나고 있었다.

 

  카이사르가 누웠던 마지막 장소를 한 여름의 따가운 태양이 계속 치열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한 영웅이 간 자리에 아무 흔적 없지만 그의 생각은 그가 남긴 책 속에 전해지고 그의 역사적 행동들은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에게 논란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나는 지난 일주일을 달궜던 우리의 영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인간의 덧없음을 생각하면서도 이런 영웅들에 의해 인간사는 조금씩 발전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로마, #포로 로마노, #카이사르 화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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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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