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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이 따이 바깥 칼데라의 모습, 거대한 모습을 잘못 보면 거대한 강줄기 같아 보이지만, 그저 거대한 호수라는걸 깨닫게 된다. 다만 엄청난 규모 탓에 한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따가이 따이 바깥 칼데라의 모습, 거대한 모습을 잘못 보면 거대한 강줄기 같아 보이지만, 그저 거대한 호수라는걸 깨닫게 된다. 다만 엄청난 규모 탓에 한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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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이 따이'를 가는 길은 국도와 고속도로를 거쳐 가게 됐다. 중간중간 피로가 몰려와 조는 바람에 정확한 길 이름이나 도로 사정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곳곳에서 교통체증을 겪을 수 있었다. 만만치 않은 차량이 메트로 마닐라를 빠져나와 인근 도시와 관광지로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음 달부터 오는 우기, 성수기에 막바지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날씨 좋은 오늘을 호기 삼았던 것 같다.

코카콜라, 도요타 등 수많은 외국계 공장들이 들어와 있는 라구나 쪽으로 난 고속도로의 나들목을 빠져나와 오후 3시가 다 되어 '따가이 따이' 초입에 들어설 수 있었다. 흡사 거대한 바다에 몇 몇 섬들이 떠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칼데라 호가 내 눈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다도 강도 아닌 호라는 것에 한 번 놀라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번 놀라고, 칼데라 안에 또 다른 칼데라와 중간중간 솟은 일부 지형들에 세 번 놀라는 곳이 바로 '따가이 따이'였다.

보통은 높은 곳에서 전경을 본 뒤, 보트를 타고 이동하여 칼데라 안의 칼데라로 들어간다는 소리를 들은 우리 일행은 산을 굽이굽이 넘어서 보트 선착장까지 이동했다. 곳곳에는 빌리지(고급주택이 모여있는 마을, 비슷한 규모 크기의 이층 양옥들이 반듯하게 들어서 있고 입구에는 경비원들이 총을 메고 출입하는 차량과 인원을 통제하는 곳)가 있거나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곳은 1년 내내 날씨가 비교적 시원하고 수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탓에 각 국의 은퇴이민자들이 선호하는 또 다른 명소이기도 했다.

어느 새 도착한 선착장, 도착하자마자 일행을 본 선착장 직원은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배를 타고 칼데라 안에 화산으로 향하는 길, 바다에 우뚝 서있는 그저 작은 섬이라고,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든다.
 배를 타고 칼데라 안에 화산으로 향하는 길, 바다에 우뚝 서있는 그저 작은 섬이라고,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든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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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만 타는데 한 사람당 1000페소!"

배를 타고 칼데라 안 칼데라에 가서 말을 타는 것까지 800페소 정도면 충분하다고 들은 우리, 안 그래도 '팍상한'에서 기분이 팍 상했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그러니 우린 그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주변 경관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다시 차에 올랐다. 기사를 향해 집으로 돌아가잔 말을 했다.

그 때부터 선착장 직원의 태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받아주지 않으니 배 삯은 어느새 500페소까지 떨어져 있었다. 기사도 분명 그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시켜줬으니 소개비를 받는 듯했다. 팍상한이야 가격이 어느 곳이나 같다는 것을 알아서 그려러니 했고 못 이기는 척 바로 돈을 지불했지만, 이 곳에서 우리가 꽤나 고자세로 나가니 기사까지 덩달아 안절부절이었다.

"배랑 말이랑 다 해서 얼만데?"

우리가 마지못해 한 마디 받아줬다. 이미 차에 오른 뒤 신발까지 벗은 상태였다. 그는 한참 고민하는 듯이 망설이다,

"한 사람당 700페소만 주면 배랑 말이랑 다 해결해줄게"라고 말했다.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보고나 가자는 심정으로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나중에 무슨 소리를 할 줄 몰라서 우린 치러야 하는 가격의 절반 정도인 1000페소만 먼저 지불하고 나머진 여행이 끝난 뒤 준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우리 말을 순순히 따랐다. 그제서야 우리 기사는 선착장 직원과 수더분하게 이야기를 하며 웃기 시작했다.

햇빛 가림막이 제법 견고하게 처진 기다란 배에 우리는 올라탔다. 큰 생수통에 가는 관을 연결해서 연료통을 사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제법 빠른 배는 칼데라 호를 가르기 시작했다. 4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이었지만 아직도 제법 해는 뜨거웠다. 오후에 팍상한에서 보트를 탔더라면 아무리 햇빛에 강한 사람이라도 살이 익을 것이 눈에 선했다. 다행히 '따기이 따이'에서 계속 햇볕을 받을 일은 없었다.

10분 조금 넘게 갔을까? 어느세 칼데라 안 또다른 칼데라에 우린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모자를 든 사람, 음료수를 든 사람, 마부들이 뒤엉켜서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햇볕이 뜨거울 것 같아 20페소씩 주고 모자는 빌렸지만, 음료수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들은 끊임없이 옷을 잡아채고 몸을 만졌는데, 그들의 사정이 딱하기도 했지만 이래도 되나 싶어서 뿌리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들은 약간 당황한 듯 멈칫했다. 관광객 중 이리 야박한 사람이 그리 흔치 않은 것 같았다. 옆 쪽으로 다른 나라에서 온 노년의 관광객은 말만 타는데 800페소를 지불하고 있는 참이었다.

따가이 따이의 소년 마부, 쉴세없이 중얼거리고 노래를 불러대는 아이지만, 말을 달래면서 팁까지 받아내는 전문가중에 전문가다.
 따가이 따이의 소년 마부, 쉴세없이 중얼거리고 노래를 불러대는 아이지만, 말을 달래면서 팁까지 받아내는 전문가중에 전문가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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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가 말을 끌고 왔다. 말은 조랑말 정도라고 보면 적당할 것 같은데, 생전 처음 타보는 말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한 손에 카메라를 든 탓도 있었고, 가방을 든 탓도 있었다. 특히 가방은 마부와 말을 함께 타야 할 때 계속 신경이 쓰이곤 했다. 여하튼 우리는 그들이 사는 마을을 가로질러 정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곳곳에 널려있는 말똥 때문인지, 마을에는 파리가 즐비했다. 농구하는 젊은이들과 빨래하는 아낙, 그리고 온몸에 천으로 칭칭 두른 채 농사일을 하러가는 청년들이 보였다. 다행인 것은 마을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생기가 있어보이고, 어느 곳에서 본 필리피노들보다 얼굴빛이 좋아보인다는 점이었다.

마부는 수더분했다. 이름을 묻고, 나라를 묻고, 항상 재미있냐 즐겁냐고 묻고 노래를 불러댔다. 평지에선 유유히 걷던 말, 본격적으로 수풀이 나오고 오르막이 시작되자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마부의 알듯 모를 듯한 노래 중간중간에 넣는 추임새는 말을 격려하고 끌고가는 원동력이었다. 신기한 건 말을 때리지 않으면서 좁은 길을 용케 가게 한다는 점이었다. 낭떠러지가 있는 곳으로 지나갈 때도 있었는데 고삐도 잘 잡지 않은 채 목소리만으로 말을 쥐락펴락하는 그들은 불과 10살 남짓이었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면 마부는 나를 앞으로 바짝 땡겨 앉으라고 말한 뒤 말에 함께 오른다. 말은 중간에 지치면 침을 흘리고,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내려오는 이들과 마주치게 됐을 때 끊임없이 풀을 뜯어댔다. 수풀을 지나면 거대한 평원이 나오고 다시 수풀을 지나면 얕은 구릉이 나온다. 꼭 지리산 등산할 때 정상 가까워 진 곳에서 등산을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오르는데는 30분 정도가 걸린 것 같은데 중간 지점을 지나자 말이 너무 힘들어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탓에 불편하게 앉아서 아슬아슬하게 오르느니 내려서 걷는 것을 선택했다.

내가 제법 빠른 속도로 가파른 경사를 오르자 마부 역시 놀라서 재빠르게 말을 끌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시종일관 마부는 내게 괜찮냐고 물으며 말을 끌고 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정상, '마부 힘들어'를 외치며, 내게 음료수를 사주라고 건네는 노점상 필리피노. 이번엔 팁을 줄 돈은 제외하고 차에 지갑을 놓고 온 탓에 사주고 싶어도 사줄 수가 없었다. 이런 권유와 옆에서 간혹 뱉는 한국말들은 여행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내가 여행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아닌, '내게 어떻게 하면 돈을 뜯어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란 생각이 극단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여행문화가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말과 마부는 쉬고, 정상 풍경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칼데라 안에 칼데라 호가 있고 그 안에 다시 칼데라가 있고 칼데라 호가 있다. 거대한 칼데라는 끝이 보이질 않고, 이 자연경관이 수많은 필리피노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올라오는 코스는 끊임없이 햇볕을 비추고 있는데 차마고도를 넘어가는 보부상의 움직임인양 보였다. 어찌보면 그들은 이들에게는 중요한 희망을 안고 이 곳을 여행하고 있을테니까. 정상의 한 편에는 어느 사람이 버리고 간 듯한 한국 담뱃갑이 홀로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마부가 올라와 내려가자고 손짓한다. 내려가는 길엔 말에 계속 있을 참이었다. 등산도 내려갈 때가 원래 더 힘든 거라는데, 다행히 말은 내려갈 때 덜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보였다. 주변 경관도 조금 보고, 시원한 바람도 맞으며 내려가려는 순간 또 팁타령이 시작됐다. 이번엔 '100페소는 달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내려가며 말이 뒤뚱거리니 엉덩이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수려한 자연의 중심에서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더불어 한국에서 필리핀의 자연을 벗 삼아 휴가를 보내고 싶은 이들이 '팍상한'과 '따가이 따이'를 선택했다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칼데라 안의 칼데라의 모습, 고요하고 평온한 이 칼데라가 왜 이리 작아보이는지, 크기는 그저 상대적이라는게 새삼 느껴진다.
 칼데라 안의 칼데라의 모습, 고요하고 평온한 이 칼데라가 왜 이리 작아보이는지, 크기는 그저 상대적이라는게 새삼 느껴진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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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여를 오르고 내린 뒤 칼데라 안의 칼데라와 작별을 고했다. 그래도 올라갈 때 팁 소리를 한 번 안하고 올라온 마부에게 필리피노 친구가 과하다고 말한 100페소를 건넸다. 배를 타기 위해 오르려는데 잠깐 내린 운전수가 20페소짜리 한 장을 팁으로 달라고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못 들은 척 해버렸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시간은 어느새 6시가 다 되어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우린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다. 한 번 볼만한 곳을 다녀왔지만,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는데 우린 모두 동의하고야 말았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지긋지긋한 교통체증을 체험하며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하고도 30분.

수려한 자연경관은 말 그대로 탄성을 지르게 했지만, 오늘 들은 어설픈 한국 말 몇 마디와 팁 소리가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난 여행사를 통해서 이 곳에 온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 얼씬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 곳을 찾는다면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라.

첫째, 절대 한국 말의 비속어나 욕설을 그들에게 가르치지 말고
둘째, 너무 많은 돈을 팁으로 주지 말고,
셋째, 처음 부르는 가격에 절대로 동의하지 말라.

한국 사람을 깔볼 수 있고, 돈을 뜯어내는 지름길은 한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명하지 못한 팁문화나 여행문화, 그리고 그들이 잘못 배운 관광방식 탓에 그 곳을 떠나는 대다수 이들은 그리 맘이 편하지 않다.

돈을 현명하게 쓰는 것이 순수한 필리피노를 변하지 않게 하는 지름길이며 그들을 정말로 위하는 길 아닐까?


'팍상한'과 '따가이 따이'의 하루 코스 여행경비(가격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입니다)
차량 주유비 : 1,500페소

운전기사 팁 : 1,000페소(식사값을 포함해서 이 돈을 준다고 해도 꽤 후한 편이란다. 참고로 저희는 운전기사의 식사는 모두 사주었다. 참고로 차량은 아는 분이 호의로 빌려줬다.)

아침 졸리비(필리핀 패스트푸드 체인점) 햄버거 세트 : 600페소(3명 여행객 + 1명 기사)

팍상한 보트 삯 : 3,000페소(3명)
팍상한 보트맨 팁 : 150페소(3명)

따가이 따이 배 삯 + 말 삯 : 2100페소(3명)

저녁 초우킹(필리핀 중국음식 체인점) 음식 : 600페소(3명 여행객 + 1명 기사)

간식 파인애플 6개(100페소), 바나나 2 다발(150페소), 음료수(200페소)

총 : 9400페소(개인당 대략 3000페소 정도)

※ 현재 1페소는 26.5원 정도이며, 한국 돈으로 1인당 8만원이 조금 안들게 여행경비가 지출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티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필리핀 팩키지 투어, #따가이 따이, #칼데라, #필리핀 관광, #필리핀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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