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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신문을 읽었다
옛날 신문을 읽었다 ⓒ 다우

2109년 5월을 살아갈 사람들이 2009년 5월 23일까지 발행된 신문과 24일부터 29일까지 발행된 신문을 읽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판단할까? 하룻만에 논조가 이렇게도 바뀔 수 있는지 혼란스러워 하면서 역시 하룻밤을 자고 나니 역사가 바뀌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고 말할까? 궁금하다.

 

오늘 신문은 내일이면 '역사'가 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노 전 대통령 서거 같은 역사 물결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만 역사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 바로 우리 같은 서민들 작은 일상도 모이고 모이면 역사가 된다는 사실이다. 

 

1950년부터 2002년까지 우리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서민들 삶과 애환을 보도한 신문 내용을 모아 <스포츠 조선> 출신 이승호 기자가 지은 <옛날 신문을 읽었다>는 어느덧 역사가 되어버린 그 때 그 시절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1960년대 어느 새해였다. 20대 여성이 강제로 남자 동무에게 키스를 당해 비관, 어머니가 묻혀 있는 망우리 공동 묘지를 찾아 쥐약을 마시고 자살을 했다. 그 여성은 유서에 "입술을 잃은 것은 순결을 잃은 것과 같으므로 어머니에게 죄를 지은 나는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아니 키스 한 번 당했다고, 생명을 끊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불과 50년 전이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학교 앞 '불량식품'. 선생님께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하지만 엄청 맛있었다. '쫀드기'는 지금 생각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 우리 아이들도 불량식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60년대 불량식품 목록을 보면 놀랄 노자입니다. 우유, 엿, 주스, 막걸리, 꿀, 조미료, 과일, 음료, 고춧가루, 간장, 된장, 설탕 따위. 유해 불량식품을 만드는 방법도 천재적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신고 다니는 군화를 화공처리하여 식육으로 팔 정도였다니."(19쪽)

 

이런 재료로 불량식품을 만들었다니 아연질색이지만 '쫀드기'는 정말 다시 한 번 먹고 싶은 맛있는 금단의 식품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식품도 불량과 가짜가 있었다면 혹시 '사람'도 가짜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사람도 '가짜'가 있었다. 1963년 9월 7일자 <조선일보>에 난 "박정희의 동생"이라고 사칭한 사기꾼 기사는 그 때뿐만 아니라 요즘도 권력을 힘입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이들과 별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기생충 검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기생충 검사 한다고 아침 일찍 '응아'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양한 '똥'들이 선생님 앞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얼마나 웃었는가? 하지만 1964년 6월 13일자 <한국일보>는 "1063마리 회충으로 목숨을 잃은 아홉살 어린이" 기사를 보면 그 때 우리들이 얼마나 열악한 위생환경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비행청소년' 참 많이 듣던 말이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말이다. 아마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남아있는 말 중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말이 아닐까?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어른을 몰라 본다. 학교 폭력이 너무 심하다고 말한다. 그럼 1955년 2월 9일자에 실린 "교사가 본 학생도의는 이렇다"는 기사를 보자. 그 때 학생이라면 지금 일흔~여든 살 되시는 분들이다. 

 

"고등학교에서 나쁜 면: 구타충돌, 남녀교제, 금품강탈, 성인에 대한 반항과 불손, 흡연음주, 극장출입 따위다. 초등학교에서 나쁜 면: 금품강탈, 도벽, 구타충돌, 물품파괴 따위다."(98쪽)

 

남녀 교제를 보는 시각을 제외하고는 요즘과 별 다르지 않다. 아주 옛날 문헌을 보면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말세'라는 내용이 있다고 했는데 헛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은 이렇게 젊은이들을 닥달하고 있다.

 

참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있어 소개한다. '앙드레김'이다. 1967년 6월 13일자 <대한일보> "우리는 즐거운 컴비"라는 연재물인데 여섯 번 째 기사 '꾸며주고 빛내주고 함께 3년, 정적인 아름다움으로 환상적 작품에 빛 더해'다.

 

"어릴 때부터 그림과 의상 스케치를 즐겨했던 앙드레김은 여성의 의상을 보는 눈은 여성 자신들보다 남성 편이 뛰어나리라 생각하고 용감하게 투신한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 우아하며 환상적인 자기 작품을 입어낼 수 있는 모델 역시 우아하며 환상적인 분위기여야 한다는 주장"(290쪽)

 

그때나 지금이나 앙드레김은 '우아함'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앙드레김이 우아함을 강조했다면 1979년 8월 17일자 <동아일보>가 실은 "외국 잡지에서 보던 노브라의 여성이 어느새 서울 한복판을 활보하고 있다"면서 "여성이 기억해두어야 일이 있다. 즉 몸매가 옷맵시를 만든다는 생각은 오신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옷 입기에 따라서 아름다운 신체가 만들어질 수 있으니 노브라를 계속하다간 앞가슴이 늘어질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의상 디자이너들은 경고한다"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옛날 신문을 읽었다>는 이것 말고 야간통금, 만원버스, 긴급조치, 장발족, 혼분식 따위를 담았다. 40대 중반인 나도 경험한 내용들도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는 이렇게 사소한 것이 모여 만들어진다.

덧붙이는 글 | <옛날 신문을 읽었다> 이승호 지음 ㅣ 다우 펴냄 ㅣ 9,800원


옛날 신문을 읽었다 - 1950~2002

이승호 지음, 다우출판사(2002)


#신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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