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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나고 6월 국회 개원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여의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후폭풍 때문이다.

 

애초 여야는 6월 국회에서 미디어관련법과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여기에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대사건이 더해져 6월 국회는 그야말로 방향조차 잡을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시작하게 됐다. 

 

궁지에 몰린 청와대와 여권은 바짝 엎드린 상태다. 지난 7일간 500만명이 넘는 추모인파가 봉하마을과 전국 각지 분향소에 몰리면서 나라 안은 온통 추모 물결이 너울대고 있다. 잘못하다간 이 물결에 휩쓸려 돌이킬 수 없는 재해를 입을 수도 있다. 추모 물결을 잠재우기 위해 누군가를 던져야 한다는 여론(책임론)이 당 안팎에서 커지는 것도 청와대와 여권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때마침 터진 북한 핵실험, 한나라당의 기회? 

 

일단 한나라당은 하루 빨리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국민적 분노와 충격을 잠재울 방안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 흘러나오는 '개각설'도 한 방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배제하고, 중립적인 인사를 기용함으로써 국정 쇄신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소장파(원희룡, 남경필, 권영세 등)는 또 박희태 대표의 사퇴와 조기전당대회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우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단순한 개각과 당 쇄신만으로 국민적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는 점은 한나라당도 잘 알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충격을 상쇄할 만한 '외부 요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때마침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면서 한나라당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유엔과 미국이 서둘러 대북 재제에 나서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이명박 정부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 참여로 인한 국지전(서해 교전 등) 가능성도 높아지면서 한나라당은 전통적 구호인 '안보'를 내세우며 국민의 눈을 북쪽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졌다가 북쪽에 탈출로가 생긴 셈이다.

 

31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북핵 위기'를 언급한 것도 이런 속내를 반영하고 있다. 안 원내대표는 "(국민이 북핵)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경고한 뒤 "(북한이) 서해 도발 등 여러 가지 도발 징후가 보이고 있는데, 대비를 단단히 할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대책을 같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여기에 발을 맞추고 있다. 지난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조문차 방한한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를 만나 북핵 문제 해결 공조를 다짐하고, 31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에서 북핵을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서해 교전과 같은 전투가 발발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눈길이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뜻대로 북쪽을 향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은 또 "오는 8일 임시국회를 열어 '국회 안에서' 토론과 타협을 해 나가자"(안상수 원내대표)라고 야당에 제안했다. 지난해 5~6월 '촛불'에 덴 한나라당으로선 야당과의 정치적 타협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하필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 6월 항쟁 기념일(10일)과 맞물리면서 또 한 차례 대형 촛불집회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가 열리더라도 한나라당은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야당에 끌려갈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MB악법'이라 불리는 미디어관련법이나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입 밖에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6월 임시국회 초반에는 여론의 추이를 살피면서 야당이 제기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책임론'을 어느 수준으로 합의해 주느냐와 국정 쇄신 방안을 놓고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지율 27%... 당 창건 이래 한나라당 처음 뒤집어

 

반면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사실상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31일 정세균 대표가 직접 나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장관·검찰총장 등 파면, 검찰수사팀 처벌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단 민주당은 6월 국회를 '보이콧' 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31일 정세균 대표는 "국회는 국민의 뜻과 국회법에 따라 개회되기로 돼 있기 때문에 이를 막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6월 국회에서 민주당이 미디어관련법 처리 등 한나라당의 요구를 거절하리라는 것은 명확하다.

 

대신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책임론으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압박해 나갈 예정이다. 특히 천신일 특검법과 국정조사 두 갈래로 청와대를 압박해 반민주적인 국정운영과 냉전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민주당에게 동력을 제공할 '국민 여론'도 조성돼 있다. 31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윈지코리아컨설팅> 조사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과 합당 이후 처음으로 지지율이 10%대를 넘어서 27.3%를 기록했다. 더구나 한나라당 지지율(20.8%)마저 추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3%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검찰수사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고 보고 있으며, 국민의 66.8%는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여론도 여론이지만, 다른 야당과의 공조도 어느 때보다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대사건에 묻히기는 했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 야4당은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에 합의를 한 바 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국정조사나 검찰 책임자 처벌 등에 대해서도 손쉽게 발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다. 31일 정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민주개혁진영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자신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시기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열흘 뒤인 6월 10일에는 87년 6월 항쟁 22주년 기념식이 치러진다.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규정해 온 시민사회는 이 시기에 맞춰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하지만 민주당은 당장 '장외투쟁'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 아직까지는 국회 안에서 타협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과 요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국회를 통해서 따질 것은 따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장외투쟁에 대해서도 "아직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청와대나 한나라당의 태도에 따라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대규모 집회에 동참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민주당은 내부적으로는 6월 항쟁 기념대회 등 외부 집회에 참가한다는 방침을 세워 둔 것으로 알려졌다.


태그:#노무현, #한나라당, #북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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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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