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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는, 무작정 소개 받아 찾아 간 집. 허름한 시골집이다. 조그만 방의 침대엔 할머니가 3년째 투병 중이란다.

 

"어르신, 연세가?"

"아, 나 말여. 8학년 3반."

"정말요? 정정하시네요."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가 깊어지기 전까지는 할아버지의 진가를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시골에서 흔히 만나는 아주 평범하게 생긴 시골할아버지다.

 

"6.25 한국전쟁을 참전한 후, 6년간 군복무를 끝내고 31세에 사회에 나온 겨. 내 친구 김기복(안성 남사당 무형문화재)이 소개로 남사당을 배우기 시작한 겨. 기복이는 평택에 가서, 난 송탄 가서."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할아버지는 남사당을 해왔다. 해마다 전국 축제마당에서 부르면 달려가 신명나게 놀았다. 안성에서 35~40명이 한 팀이 되어 버스로 움직였다. 1박2일 정도 머물면서 축제를 빛냈다. 요즘 말로 하면 유명 연예인이 각종 행사를 뛰는 것과 같다. 그렇게 가본 곳이 강릉 단오제, 무안 연꽃축제, 수원 축제 등. 심지어 제주도, 대만, 일본 등 해외까지.

 

"89년도엔 열두 발 상모를 돌려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상도 받은 거 아녀. 농사지으면서 가끔 돈도 벌고 신나게 놀고. 그땐 우리가 요즘 연예인만큼 인기였지. 놀 것도 볼 것도 많이 없던 시절이었응께."

 

조그만 방에 가득 걸려 있는 남사당 사진과 상장들 속에 '노태우 대통령 상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상장들을 자세히 보니 수여자가 주로 대통령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등. 남사당을 해서 받은 상이랑 참전용사라고 해서 받은 증서 등이다.   

 

"아, 요즘도 남사당 원년 멤버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신명나게 노는 겨. 이 나이에도 가끔 행사도 뛰는 디."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지갑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어 쑥 내민다. 명함이다. 거기엔 '안성남사당 무형문화재 21호 박필석'이라고 적혀 있다. 아하, 그럼 이때까지 그 말로만 듣던 '무형문화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 잠시 어안이 벙벙할 즈음 할아버지의 촌천살인 한마디.

 

"나, 이렇게 키도 작고 볼품없게 생겼어도 대단한 사람이여. 허허허허허."

 

그 말 듣고 나니 조금 전과 달리 보인다. 확실히 후광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대단해 보이는 것은 '6.25 참전 용사, 안성남사당 무형문화재, 대통령상 수상' 등의 외형만이 아니었다.

 

농사가 시원찮아 논농사는 다 접어 버리고 지금은 조그만 밭농사만 하고, 62년간 함께 동행 해오던 할머니가 3년 전부터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그 연세 되도록 번듯한 집하나 없어서 허름한 시골 흙집에 살지만, 그에겐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 하루 종일 할머니를 수발해야 하고, 각종 채소들을 돌봐야 함에도 할아버지는 평소 상모를 돌리는 신명나는 심정으로 산다.

 

웃기 힘든 상황일지 모르는, 하지만 우리의 대화 내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8학년 3반의 웃음이 더 대단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7일 박필석 할아버지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안성남사당, #안성남사당 무형문화재, #박필석, #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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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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