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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필리핀의 메트로 마닐라로 떠날 때, 여행 패키지로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어딜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만한 곳. 바로 '팍상한'과 '따가이따이'다.

원래의 도심과 주변의 계획도시가 합쳐져 탄생한 거대한 메트로 마닐라(우리나라의 수도권역 정도), 인트라무로스나 마닐라 베이 같은 관광지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자연 경관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필리핀을 방문한다면, 꼭 한 번 쯤은 방문하게 되는 곳이 이 곳이다.

'팍상한'은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아시나요'의 배경이 된 곳이자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촬영지이고 '따가이 따이'는 거대한 칼데라 안에 또다른 칼데라가 있는 수려한 경관과 한국의 은퇴이민자들이 급격하게 몰리면서 유명세를 탄 곳이다.

당신도 이름은 들어봤을 만한 그곳에 내가 다녀왔다.

마닐라에서 만만치 않은 이동 거리

팍상한 팩키지 투어 시작 지점. 맑은 하늘과 수려한 자연환경을 볼 수 있다. 시작 지점은 많은 관광객 탓인지 다소 물이 더럽지만, 토질의 특성상 그럴 뿐 물이 오염된 것은 아니다.
 팍상한 팩키지 투어 시작 지점. 맑은 하늘과 수려한 자연환경을 볼 수 있다. 시작 지점은 많은 관광객 탓인지 다소 물이 더럽지만, 토질의 특성상 그럴 뿐 물이 오염된 것은 아니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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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로 인해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한 탓일까. 필리피노들은 주말에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리고 그 때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편안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메트로 마닐라와 그 주변 도시는 꽤 심한 교통체증을 앓는다. 토요일 새벽 6시가 조금 넘어서 메트로 마닐라의 퀘존 시티를 나섰지만 숙련된 운전기사는 지금 고속도로에 잘 못 들어서면 안된다며 안티폴로를 구불구불 넘어가 국도를 타고 메트로 마닐라에 남동쪽에 있는 팍상한으로 이동했다. 안티폴로 정상 쯤에서 보이는 메트로 마닐라는 슬프게도 뿌옇다. 매연이 그 푸르고 창연한 하늘을 감싸쥐고 있었다.

가는 길, 우리네 시골길을 가끔 달리다 보면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수확한 농산물을 볕 좋은 아스팔트 길 위에 말리는 아낙들 탓에 차는 서행하다가 그 곳을 피해 지나가고 논과 밭 사이로 유유히 나 있는 국도 주변에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웃는다. 이 풍경을 뒤로 하고 세시간여가 지나자 팍상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팍상한 입구에 들어서자 많은 필리피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차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보트를 빌리는 보트 대여점 직원들이었다. 저마다 자기 집으로 오면 싸게 해준다고 한다. 들어가다 보면 한국 간판도 제법 보인다. '팍상한 보트 타는 곳'이라고 써있는 간판, 이유를 막론하고 한글을 만나면 반가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기사가 잘 알고 있는 보트 대여점으로 이동했다. 경비는 한 사람에 1000페소 꼴, 800페소 정도로 가격을 알고 온 우리가 흥정을 위해 이곳저곳 묻자 인근 관청의 정책 아래 모든 보트 대여점이 가격을 동결했다며 팍상한 어느 곳을 가도 가격이 같다고 말했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예의를 갖춰 설명하는 그 모습에 바로 구명 조끼를 입고 보트에 올랐다.

건장한 청년 셋, 먼저 다녀온 사람들은 한 사람당 하나의 보트에 타도 보트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보트맨들이 힘들 거라 말했는데, 그들은 200㎏이 훌쩍 넘는 우리를 한 보트에 태웠다. 보트맨들도 보트맨들이지만 배가 과연 안전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우뚱 기우뚱 거리는 보트, 겁많은 이는 살짝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보트는 입구까지 모터 달린 보트의 힘을 의지해서 달렸다. 입구가 지나자 보트맨들이 노를 젓기 시작했다. 헉헉거리는 보트맨들의 숨소리와 함께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풀 내음 그리고 각종 절벽아래 우거진 수풀까지. 말 그대로 계곡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각종 빛깔의 잠자리며 새들은 햇빛을 받으며 화려한 빛깔을 뿜어냈고, 소소하면서도 수수한 물줄기들은 절벽을 타고 수풀속을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무거워서 힘들다고, 그리고 팁을 많이 줘야한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보트맨들이 딱하면서도 은근히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급류가 시작되는 곳, 보트맨들은 노를 뒤로 하고 내려서 보트를 밀고 끌기 시작했다. 돌 틈 사이 사이에 발목 힘을 이용해서 보트를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그들의 몸놀림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기도 잠시, 끊임없이 팁 얘기를 해대는 탓에 그만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힘든 모습을 보고 그러지도 못했다.

노를 저을 수 없는 구간이 나오면 보트맨들이 내려서 보트를 끌기 시작한다. 숙련된 솜씨로 이리저리 올라가는 그들의 손놀림은 탄성을 자아낸다.
 노를 저을 수 없는 구간이 나오면 보트맨들이 내려서 보트를 끌기 시작한다. 숙련된 솜씨로 이리저리 올라가는 그들의 손놀림은 탄성을 자아낸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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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기전 한 필리피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가끔 한국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팁을 줘서 그들은 한국 사람들이 마구 돈을 쓴다고 생각하기도 해. 그들은 그 곳에 직원이야. 팁은 50페소 정도 주면 적당하고 100페소 주면 과할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야. 돈을 많이주면 그들이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관광객에게 피해를 주고 그들의 사고관이 잘못되게 할 수 있는 길일 수도 있다고."

많이 힘들겠지만, 터무니 없는 팁 탓일까. 그들은 경관 구경하는 내내 팁 소리를 입에 달고 있었다. 올라가면 갈수록 수풀이 좀더 우거지고 영화에서 보던 계곡의 모습이 펼쳐졌다. 시작 부근에서 곳곳에 보이던 쓰레기나 약간의 악취는 없었고 평안한 길이 펼쳐졌다. 거대한 자연관련 프로그램의 스튜디오가 내 눈앞에 펼쳐지는,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중간 지점 폭포. 화려하거나 크진 않아도 곳곳에 숨어있는 폭포가 제법 볼 만하다.
 중간 지점 폭포. 화려하거나 크진 않아도 곳곳에 숨어있는 폭포가 제법 볼 만하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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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점, 조그마한 공간이 있고 제법 수려한 폭포가 있는 곳에서 보트맨들은 쉬어가자고 했다. 그러자 그 공간에 마련돼 있는 휴게소 사람은 옷을 잡아채며 음료수를 사먹으라고 성화였다. 보통 가게보다 두 배 비싼 가격, 한국의 휴양지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평소 때 같으면 그냥 하나 살 수도 있었을 걸, 올라오는 내내 들은 팁소리에 이골이 나서 그들을 뿌리치고 폭포를 잠시 구경하다 그 곳을 떠났다.

점점 급류가 많아지고, 중간에 막무가내로 보트를 끌지 못하는 곳에는 대나무 혹은 쇠막대기 등의 구조물이 있었고, 양철 비슷한 재질로 된 보트를 물에 마찰과 함께 미끄러지듯 올리면서 보트맨들은 급류를 헤쳐나갔다. 우리 보트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듯 그들은 힘들어하기도 했고, 지나가는 보트맨들이 그들을 응원하는 메시지인 양 크게 소리치며 지나가곤 했다. 얼마쯤 갔을까, '쾅쾅쾅쾅' 소리가 귀 가까이 들려왔다. 보트의 종착지, 폭포에 도착한 탓이었다.

팍상한 계곡의 최종 목적지 폭포. 좁은 폭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내는 그 광경을 한동안 말을 잃고 계속 쳐다보게 된다.
 팍상한 계곡의 최종 목적지 폭포. 좁은 폭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내는 그 광경을 한동안 말을 잃고 계속 쳐다보게 된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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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이들이 폭포를 구경하고 있었다. 중국 사람, 미국 사람, 일본 사람, 필리피노, 그리고 한국 사람까지. 미친 듯이 날뛰며 뿜어나오는 그 폭포를 맞기 위해 90페소를 내고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갔을 땐 뗏목 뱃사공이 반쯤 정신나간 듯한 사람들(폭포를 방금 전에 맞았기에)을 이끌고 유유히 폭포 앞을 빠져나올 때였다.

보트맨들은 이내 삼삼오오 모여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성모마리아 상에 촛불이 밝혀져 있었고, 쓰레기통에는 이 곳이 'eco park(생태 공원)'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하긴 순전히 사람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여행이었고, 필리핀 정부에서 'eco tourism(생태 관광)'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더불어 이런 관광지 근처에 있는 필리피노들은 직업이 있고, 지역 경제가 살 수 있는 훌륭한 기반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생태 관광 역시 이들 경제 활동의 원동력인 자연을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칠 때쯤 우린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협곡을 굽이굽이 지나면서 보이는 각종 절벽과 식물들
 협곡을 굽이굽이 지나면서 보이는 각종 절벽과 식물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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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를 제법 빠른 속도로 타고, 도마뱀이나 거북이, 그리고 다양한 잠자리들이 내 곁으로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올라오는 이들은 남은 광경에 기대를 품은 듯 반갑게 인사하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햇빛을 받아 무지개 빛깔을 보여줬다.

때때로 사람들이 동남아의 물 빛깔을 보고 오해하는 것이 있다. 이 물이 더럽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다. 더러 더러운 곳도 있겠지만 그 더러운 강이 젖줄이 되면 자연이 어떻게 숨쉬고 사람이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겠는가. 우리보다 비의 양이 많고, 지형상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물의 빛깔이 그럴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몇몇 사람들이 강조하던게 다시 한 번 팍상한에서 기억났다. 동남아는 무조건 더럽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봐.

두 시간여쯤 지났을까. 우리는 처음 보트를 탔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자연경관을 보며 유유자적하던 내게 보트맨들은 다시 팁 얘기를 시작했다. 도착하기 5분 정도 전부터였다. 난 필리피노 친구가 말한 대로 딱 50페소만 그들에게 팁으로 건넸다. 정말 야박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잘못된 팁 문화로 인해 내 여행이 진심으로 유쾌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들의 몇 마디로 가끔 큰 돈을 건네는 한국 관광객들 덕분에 하나같이 팁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다는 것은 필리피노들 사이에서도 익히 소문이 나 있었다. 50페소를 받은 그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구명조끼를 벗고 보트 대여점 앞마당에 있는 자그마한 풀에서 10여 분 수영을 하고 열을 식히다가 샤워를 하고 팍상한을 벗어났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지만, '따가이 따이'를 보기 위해선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이동해야 한다고 기사는 말했다. 지도상으로 봐도 거리가 꽤 되는 길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 고두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필리핀 팩키지 투어, #팍상한, #따가이 따이, #메트로 마닐라,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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