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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무렵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대학 MT를 간 어느 여름 밤, 남해 상주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잠시 그 영화가 과 동기들 사이에서 대화 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교사가 되고 싶은 스무 살 남녀 사범대생들의 공통적인 결론은 이러했다.

"키팅과 같은 선생님은 실제론 존재하지 않아. 영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선생님이야. 학교 다닐 때 그런 선생님 만나 봤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뜻밖이었다. 내 고교 시절의 기억 속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못지 않은, 유능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휴머니스트, 로맨티스트 선생님들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남들도 다들 그런 훌륭한 은사 몇 분 정도는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날 밤 바닷가 모닥불 앞에서 맥주 잔을 기울이며 나눈 무수한 이야기들 속에서야 비로소 내 학창 시절이 축복받은 것임을, 또한 감사할 만한 것임을 깨달았다.

독대한 노무현, 그가 말한 정치인의 보람과 행복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50분간 특별수업을 끝마친 뒤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노무현 후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50분간 특별수업을 끝마친 뒤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노무현 후보.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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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사정으로 대학을 늦게 졸업했다. 법적인 제약 때문에 사범대를 나왔지만, 교직이 아닌 다른 종류의 일들에 몸담아,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몇 년을 보냈다. 한 월간지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간혹 국회의원이나 장관 인터뷰를 한 뒤 식사 자리에 동석할 때가 있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 그룹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우쭐한 마음도 들었다.

책과 신문 기사 속에서나 접하던 유명 칼럼니스트나 문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할 때면 사회에 대한 비판적 통찰력을 지닌 그들과 지적 수준이 비슷해진양 교만한 마음도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치기어린 착각 속의 젊은 시절이다.

그 무렵,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던 한 정치인과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예비 후보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실에서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긴 대화의 말미에 그가 한 말 중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대목이 있다.

"정치를 시작하고서 보람 있었던 때는 간혹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번 부산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했을 때, '이제 낙선 덕분에 정치를 그만두게 되겠구나' 싶어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안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이 정치를 스스로 그만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진심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원칙과 상식이 회복되는 세상을 추구하는 그의 열망이 있는 그대로 느껴졌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캠프의 말석이나마 지원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쳤다. 그러나 "정치가 보람은 있지만 행복하진 않다"는 그의 말이 귓가를 맴돌아 나는 곰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의 삶은 보람과 행복 중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에 대해.

행복은커녕 보람마저 잃은 듯한 '대통령' 노무현

지난 2004년,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연 신년 이벤트 행사 참여 후 받은 시계.
 지난 2004년,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연 신년 이벤트 행사 참여 후 받은 시계.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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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2년 대통령이 되었고 난 고향으로 돌아와 교사가 되었다. 청와대 비서관이 된 한 선배는 '노무현'이란 이름이 새겨진 대통령 시계를 선물하며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일의 보람과 사명감을 이야기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분은 지지자들조차 동의하기 어려운 정책을 선택해야만 하는 대통령의 고독과 상황 논리에 대해 설득력 있게 얘기하며,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와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나는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그분들이 부럽지 않았다. 정치,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려 애쓰거나 매체를 통해 사회 부조리를 꼬집는 글을 쓰는 일보다도, 단 한명의 학생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건전한 생활 습관을 심어주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변화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통령직 못 해 먹겠다'는 그의 말을 조중동이 표적 삼아 '고졸 출신 대통령의 경박함'을 공격하던 시절부터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역주의 해소라는 선의에서 추진한 정치적, 정책적 선택들이 가져오는 역작용과 혼란, 일부 조폭적 언론들과 벌인 대결, 계층 문제화되어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 교육과 주택 문제, 여기에 클린턴 정부 시절의 김대중 정부와는 달리 부시 정부의 강경 정책 속에서 대북 문제와 자주 국방 문제를 풀어가는 어려움, 지지자들이 떠나가는 계기가 된 한미FTA 문제와 이라크 파병 문제 등등.

산적한 현안들을 처리해 가며, 대통령이 된 그는 '행복'은커녕 '보람'마저 잃어 버린 기색이 역력했다. 대통령 노무현의 정책에 대해 비판 의식이 생기면서도 인간 노무현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 또한 함께 커져갔다. 

우리가 '바보' 노무현에게 기대했던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일 새벽 강도높은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빠져나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일 새벽 강도높은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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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이후 국세청, 검찰, 보수 언론이 총동원되어 그의 측근, 후원자들에 대한 저인망식 표적 수사가 계속되었다. 동료교사 몇 사람은 이명박식 정치를 비난하고 민주화된 정권에서 자유를 누리던 검찰이 다시 권력의 충견이 된 것을 욕했지만, 난 그저 그러려니 했다.

저들은 언제나 그래왔고, 이명박과 검찰, 보수 언론의 수준이 딱 한국 유권자들의 평균 수준이라고 여겨왔기에, 누가 누굴 탓하랴 싶었다. 그러나, 권양숙 여사와 자녀들이 받았다는 박연차씨의 돈이 드러날 때만큼은 가슴이 쓰라렸다. 어떠한 표적 수사와 집요한 괴롭힘 속에서도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놀라운 결과를 바보 노무현에게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올렸을 때,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전직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 노무현의 몰락이 아니라, 누구보다 믿고 신뢰했던 연인의 배신처럼 느껴졌고, 청년기의 내가 꿈꾸었던 이상과 열정 그리고 추억의 상실처럼 느껴졌다.

마치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반당한 연인이 다시는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을 듯한 아픔을 느끼듯, 이제 노회찬이나 심상정 같은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에게 기대를 품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MBC 100분 토론>을 보며 재미를 느낀다든지, 아니면 아침 출근길에 운전하며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을 여유도 사라져 버렸다. 촛불집회에서 제자들과 우연히 마주쳐 멋쩍게 웃던 그 일상의 소소한 정치 행위들도 모두 아스라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자살은 팩트지만, 진실은 정치적 타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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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지난 토요일 아침,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이 먹먹하고 어떤 것에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 속에 이리도 분주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데, 그분은 왜 이리 허망하게….

내 감각 속의 그는 TV 뉴스 속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장관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있던 순수하고 무모했던 '바보 정치인' 노무현에서 멈추어 있다. 아들과 동년배인 나에게도 깍듯이 존칭을 쓰며, 자신을 '저'라고 지칭하며 겸손하고 순수하던 그 모습에 멈추어 있다. 퇴임 뒤 봉화마을에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그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 그의 죽음에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생각한다. 미국과 소련,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던 냉전시대에 평화주의자 김구가 죽음을 맞이한 것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어쩌면 불행한 시대적 필연이었다고. 마찬가지로 수구기득권 세력의 공고한 철옹성에 무모하게 도전했던 비주류 원칙주의자 노무현의 죽음도 충동적 자살이 아니라 어쩌면 이 시대와 불화한 결과로 빚어진 '포괄적 타살'이라고.

시대와 불화한 탓에 그는 언론에 의해, 고상하고 품위 있는 기득권층과 배운 사람들에 의해 참 많이도 무시당하고 불공정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꽤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는 한 국민이 갖기에는 과분하리만큼 훌륭한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또한, 그가 자살을 한 것은 팩트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타살을 당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태그:#노무현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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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였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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