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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Christ His Wounded> 작자미상
 <Showing Christ His Wounded> 작자미상
ⓒ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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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분을 잃은 그날, 존경하는 작가의 책에서 보았던 조각상 하나가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제목은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조각상은 예수가 자신의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에게 창에 찔린 상처를 벌려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종교도 없는 내가 왜 이 예수상를 떠올렸을까? 험난한 여정을 신념과 의지로 돌파한 그의 삶이,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과정이 본질적으로 예수의 생애와 흡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멍청한 눈길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이 사나이는, 아무리 보아도 신의 아들은 아니다. 틀림없는 인간인 것이다. 인간이 상처의 아픔을 참으려고 몸을 뒤트는 모습인 것이다."

그날 아침, 딱딱하게 경직되어 버린 내 심장은 오늘까지도 이 조각상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한 결정이 될 것만 같다. 내가 억지라도 이 찰흙 덩어리에 오늘을 주입하려는 이유는 행여 나 자신조차 망각이라는 죄악을 저지를까 싶은 약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약한 인간이기에 못 믿을 혼자만의 다짐 말고 엄연히 눈앞에 존재하는, 신성모독적일 정도로 사실적인 이 딱딱한 조각품에 마음을 기대고 싶어서일 것이다.

사라지지 않을 사람, 서경식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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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가들의 조각품이 즐비한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에서 작자미상의 이 작품에 주목한 작가는 서경식이다. 그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필두로 에세이집 <소년의 눈물>과 <시대의 증언자 쁘레모 레비를 찾아서>로 재일 한국인이라는 약점에도 불구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받은 바 있고, 근래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등의 저작을 통해 감동적인 산문을 전해주고 있는 작가이다. 적군과 아군을 망라해서 이 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들에 대해 쓴 그의 인물 평전을 읽고 있노라면, 역사적 인물의 가장 인간적인 국면들을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글은 역사다큐이자 인간극장이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그의 초기작으로, 역사와 예술에 대한 그의 감수성 충만한 사변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서경식 문학의 원형과도 같은 책이다. 작가는 미술관을 여행하며 화폭에 담긴 소재, 화가의 의도, 화가의 일생과 시대, 당시 작가 자신의 가족들과 본인의 심경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각각의 그림 속에 자신의 전 인격을 투사시키고 있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는 재일한국인이다. 처음 유럽여행을 할 당시, 그의 두 형이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사건(71)'으로 10년 넘게 감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레온 보나'의 <화가 누이의 초상>(1850년경)을 보며, 같이 여행길에 올랐다가 먼저 귀국해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을 자신의 누이를 떠올리는 대목으로 그에 대한 소개를 대신한다.

"피지배자의 후예가 절대적 소수자로서, 지난날의 지배자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 만으로도, 그 '생활'의 밑바닥이 불안을 품기에 충분하다. 하물며 고국은 두 쪽으로 찢어져 있는 채요, 형들 중의 두 사람은 이미 10년 이상 그 고국의 감옥에 있다. 양친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내 상념 속의 누이는 물론 이미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어두컴컴한 속에서 혼자 서성거리고 있다. - 프랑스 바이욘느 '보나 미술관'에서"
 
('레온 보나'는 19세기 미술계에서 가장 수구적이고 권위적이었던 화가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는 스페인 바스크 출신으로(바스크는 지금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민족이다) 프랑스 아카데미즘 화가가 되어 인상파 화가를 쓸어내는 선두에 섰던 화가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일본사회의 한국인 차별과 형들의 옥바라지라는 기나긴 고통에 지쳐 누이와 함께 오른 유럽여행. 그 여행은 너무도 예민한 예술적 촉수를 타고 난 그를 미술순례의 길로 이끌었다. 그의 여행길과 그가 선택한 작품들이 예사로울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여행은 그저 유럽의 미술관들을 돌아보는 것으로는 부족한 여행이었던 것이다.

글로 쓴 12개의 거대한 벽화

여행은 몸의 영역이고, 그림은 정신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여행과 그림은 전 영역에 걸쳐 상상을 자극하는 방사형의 촉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작가는 이 책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미술순례를 통해 보여준다.

작가는 벨기에 브뤼즈(영화 '킬러들의 도시' 배경지)의 흐로닝헤 미술관에서 만난 '헤랄드 다비드'의 <캄뷰세스왕의 재판>(1498년)이 자신의 여행을 미술순례로 이끌기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이 그림은 가죽 벗김을 당하는 형벌의 현장을 그린 잔혹한 그림이다(이 그림은 영화 '텔미 썸씽' 오프닝에 인용된 바 있다).

작가는 흐르는 피 한 방울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려낸 가열한 사실정신에 감탄한다. 나이프를 입에 물고 사뭇 익숙한 손놀림으로 죄인의 왼쪽 발목 뒤꿈치 언저리의 날가죽을 벗기고 있는 사나이의 모습에서 화가 헤랄드 다비드의 장인적 열성을 느낀다. 나아가 이 그림이 시청사 회의실에 걸 목적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이 작품이 부정, 부패에 대한 살벌한 시민적 경고이며 북방 르네상스의 정신적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나의 머릿속에도 브뤼즈와 <캄뷰세스왕의 재판>과 미술순례와 준엄한 시민의식이 강력하게 결합된다.

"여행길에 무심코 들른 미술관이나 성당에서, 갑자기 무엇에 얻어맞은 것처럼 발길이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한 장의 그림, 한 덩어리의 조각상이, 시공을 초월해서 사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마력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돌이켜보건대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시작이었다."

그의 미술 순례는 고즈넉하고, 어두운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루브르에서는 형이 좋아했던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1515년)를 보며 '이것은 12년 째 수감되어 있는 형의 모습이라고, 나는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통해하고, 프랑스 오베르에서는 고흐의 마지막 그림들을 보며 고흐라는 '짐짝'을 견뎌야 했던 그의 동생 테오를 생각한다.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는 자기자신에게 채찍질을 해대지만, 그런 행위는 그 채찍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까지도 함께 쓰러뜨리고 마는 것이다. 그는 자기자신뿐 아니라 타자에 대해서도,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이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 그 채찍의 아픔을 참고 견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짐짝'인 것이다."

가슴 먹먹해지는 통찰이다. 작가는 절대로 두루뭉수리 아는 척하는 법 없이, 마치 날카로운 메스로 스스로 상처를 도려내는 듯 예리하게 환부를 후벼판다. 그림들을 처음 만나러 가는 여행길에 대한 묘사는 마치 연애담을 연상시킬 정도로 감성적이고, 그림을 대면했을 때의 강렬한 인상에 대한 묘사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생생하며, 그 강렬함의 정체를 수년에 걸쳐 추적한 내용은, 글로 쓴 12개의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를 보는 듯하다. <수태고지>, <데세앙스>, <게르니카>, <모래에 묻힌 개>, <젊은 부르델의 자화상>, <부인상>, <죽은 연인들>…. 이 책은 내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그림처럼 걸려있다.

'노스탤지어는 하나의 무기다'

여행기중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무식의 소치로 말미암아 여행길에서 지나쳐 버린 무수한 그림들을 안타까워했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감상이나 늘어놓는 짓은 오늘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오늘은 그저, 훗날 여행기중독자가 런던의 어느 미술관에서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그 앞에 돌처럼 굳어버릴 것이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치스럽다.

"팔레스타인 난민인 영화감독 미셀 클레이피는 '노스탤지어는 하나의 무기다'라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권력자나 강자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라는 틀에 박힌 말로 자신의 정당하지 않은 행위를 감추고, 부당한 권익을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노스탤지어'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정신을 가리킨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쓴 동기이기도 하다." -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서문 중에서

금요일에 그 분의 장례를 치른다고 한다. 나는 벌써부터 다음 주 월요일이 두렵다. 그들은 애써 지어보이던 어두운 얼굴을 벗어 던지고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올 것이다. 대범한 척하며 할 일은 하자고 달려들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과 영화를 위해 자신의 길을 잔인하게 걸어갈 것이다. 한 달도 채 못 되서 아픈 기억을 지겨운 시비로 퇴색시키려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잊고 내일을 생각하자는 말은 아전인수이다. 좋았던 모습만 기억하자고 하는 말도 허망하다. 우리는 그가 생사를 걸고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웠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망각은 폭력과 고통의 반복을 부를 뿐이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폭력과 고통이 순식간에 우리 눈앞에 돌아와 있지 않지 않은가 말이다.

폭력을 되풀이하지 않는 첫발은 이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아픔은 아픔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살아있는 우리에게 남겨진 '짐짝'이고, 어두운 그림이 더욱 어두워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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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의 서양미술순례, #서경식, #창작과 비평, #순례, #노무현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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