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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듣고 옥중에서 적어 내린 편지다. 이 의원측이 공개했다. [편집자말]
"눈물이 장마비처럼 흐릅니다... 이젠 따뜻한 나라 가세요"
[전문] 이광재 의원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부치지 않은 편지'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해 6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자신을 찾아온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손을 잡으며 맞이하고 있다.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해 6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자신을 찾아온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손을 잡으며 맞이하고 있다.
ⓒ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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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나라 가세요.
뒤돌아 보지 말고
그냥 가세요.

못다한 뜻
가족
丹心으로 모시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21년전 오월 이맘때쯤 만났습니다.
42살과 23살
좋은 시절에 만났습니다.

부족한게 많지만
같이 살자고 하셨지요.

'사람사는 세상' 만들자는
꿈만가지고
없는 살림은 몸으로 때우고
용기있게 질풍노도처럼 달렸습니다.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술 한잔 하시면 부르시던 노래를 불러봅니다.
"오늘의 이 고통 이 괴로움 한숨섞인 미소로 지워버리고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맑은 들을 찾아갈테야
오 자유여! 오 평화여!

뛰는 가슴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 버릴 것 같아…"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천형처럼 달라 붙는 고난도
값진 영광도 있었습니다.

운명의 순간마다
곁에 있던 저는 압니다. 보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남자
일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나이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의 모습
항상 경제적 어려움과 운명같은 외로움을 지고 있고
자존심은 한없이 강하지만 너무 솔직하고
여리고 눈물많은 고독한 남자도 보았습니다.

존경과 안쓰러움이 늘 함께 했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불쌍하다"고 몇 번이나
운적이 있습니다.

최근 연일 벼랑끝으로 처참하게 내 몰리던 모습
원통합니다.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잘 새기겠습니다.

힘드시거나
모진 일이 있으면
계시는 곳을 향해 절함으로써

맛있는 시골 음식을 만나면
보내 드리는 것으로

어쩌다 편지로 밖에 못했습니다.

산나물을 보내 드려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애통합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모시고 다닐 때는
행복했습니다.
풀 썰매 타시는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올 여름도 오신다고 했는데….

이 고비가 끝나면 제가 잘 모실 것이라고
마음속에 탑을 쌓고 또 쌓았습니다. 계획도 세웠습니다.

절통합니다.
애통합니다.

꼭 좋은 나라 가셔야 합니다.
바르게, 열심히 사셨습니다.
이젠 '따뜻한 나라'에 가세요
이젠 '경계인'을 감싸주는 나라에 가세요.
이젠 '주변인'이 서럽지 않은 나라에 가세요.

'남기신 씨앗'들은, '사람사는 세상 종자'들은
나무 열매처럼, 주신 것을 밑천으로
껍질을 뚫고
뿌리를 내려 '더불어 숲'을 이룰 것입니다.

다람쥐가 먹고 남을 만큼 열매도 낳고,
기름진 땅이 되도록 잎도 많이 생산할 것입니다.

좋은나라 가세요.
저는 이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닿는 곳마다 촛불 밝혀 기도하고,
맑은 기운이 있는 땅에 돌탑을 지을 것입니다.
좋은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시도록…
돌탑을 쌓고, 또 쌓을 것입니다.
부디, 뒤돌아 보지 마시고
좋은나라 가세요.

제 나이 44살

살아온 날의 절반의 시간
갈피갈피 쌓여진 사연
다 잊고 행복한 나라에 가시는 것만 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다포(茶布)에 새겨진 글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가 떠오릅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주체 할 수 없는 눈물 밖에 없는 게 더 죄송합니다.

좋은 나라 가세요.

재산이 있던 없던
버림 받고 살지 않는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유산은, 내 유산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노 대통령님으로부터 받은 유산,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를 아시는 분들에게,
봉하 마을에 힘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 거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아시는 분들
제가 말하는 맑은 기운이 있는 땅, 탑을 쌓을 곳이
어디인지 아실 겁니다. 본격적으로 탑을 쌓고 지읍시다.

노 대통령님 행복한 나라에 가시게
기도해 주세요. 가족분들 힘내시게

찻집에서 본 茶布에 씌여진 글귀가 생각납니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끝없이 눈물이 내립니다.
장마비처럼

이광재 드림

"정말 돌아가신 게 맞느냐, 정말이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작스레 서거한 지난 23일, 옥중의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보도를 믿기 어렵다는 듯 몇 번이나 이같이 되물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서거 당일 오전 11시께 영등포 구치소로 면회 온 부인과 보좌관 등을 만나 "대통령께서 정말 돌아가신 게 맞느냐. (보도가) 사실이냐"고 거듭 확인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그의 한 측근이 전했다.

"봄나물 보내드리려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측근은 "옥중에서 이미 서거 소식을 전해 듣고는 거듭 사실인지를 묻더라"며 "무척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역구인) 강원도에서 나는 봄나물을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셨느냐"며 면회 내내 비통스러워 했다고 한다.

25일 오전 면회 온 부인을 만나서도 이 의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도 기도를 할테니 당신도 대통령님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첫 비서관'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하면서부터 그림자 보좌를 해왔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인 분신이라면, 그는 '핵심 브레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인 두 사람에게 세상은 '좌(左)희정·우(右)광재'란 별칭을 붙였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의 칼끝은 참여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이 의원을 겨눴고 지난 3월 끝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 의원 측, 법원에 구속정지집행 신청

이 의원은 구속되기 전 사석에서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자택으로 가족들과 찾아가 식사를 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 의원에게 "광재 니 머리면 정치보다는 사업을 하면 크게 성공할낀데"라며 우스갯말을 했다고 한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자신이 글을 통해 "정치하지 마라, 쏟아야 하는 노력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다"고 밝혔듯, 정치에 대한 회의를 담은 진심어린 충고였는지 모른다.

이날 이 의원의 변호인단은 법원에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이 의원은 이날 부인에게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허가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다 해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조문을 갈지 모르겠다"며 침통해했다고 측근은 말했다.


태그:#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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