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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고인에게 용서를 빌 뿐입니다."

 

18년 전 군복무 중 구타와 가혹행위에 못 이겨 자살한 군인의 유가족들이 당시 가해 관련 부대원들과 화해했다.

 

18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이하 진실화해위)는 지난 12일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고 남현진 이병의 유가족들과 당시 가해 관련 부대원들이 '남현진 의문사 사건 화해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남현진이 자살하기 직전 남현진을 구타한 것으로 알려진 선임병 A씨는 유가족들에게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며 "유가족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고, 죄송할 따름"이라며 고개 숙여 용서를 청했다는 것.

 

또 그는 "부대 군기가 엄했고, 제가 속된 말로 군기당번을 했다"며 "그 당시도… 참 힘드네요…"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 되풀이했다고 진실화해위는 전했다.

 

당시 중대장과 소대장 역시 "남의 귀한 자식 잘 보살피지 못해 죄송하다"며 "늦게나마 위원회에서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줘서 감사하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한순간에 용서하기는 힘들지만... 이해한다"

 

유가족들은 이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고인의 형 남준진씨는 "용기있는 고백이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며 "한순간에 용서하기는 힘들지만 이해한다"라며 어렵게 사과를 받아들였다.

 

진실화해위는 "착잡한 듯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아버지 남효천씨는 행사가 끝난 뒤 A씨, 중대장 등 부대 관계자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심정을 대변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한국외국어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군에 입대했으며, 1991년 2월 3일 오후 3시경 소속부대 울타리 밖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목이 매여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당시 헌병대는 '남현진이 군복무 부적응(추정)으로 자살했다'라고 수사를 종결했다. 이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벌였으나 사망 경위를 입증할 구체적인 진술 또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사건을 조사한 결과, 남현진은 소속부대에 배치된 다음날부터 사망하기까지 약 10일 동안 소속부대 선임병들로부터 수시로 구타와 얼차려 등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사망 직전에도 선임병 A로부터 모욕적인 언어폭력과 구타를 당한 뒤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냈다.

 

"양심고백 있어 진실 밝혔다... 가해자 사과는 처음"

 

진실화해위는 "헌병대는 사건 초기 남현진의 사망과정에 제3자가 관련되었을 개연성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자살로 예단하였고, 사건의 증거물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사건의 진실은 남현진을 구타한 A씨의 양심고백이 있어 가능했다"며 "A씨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사건 당일 소대 고참들이 군기조들을 집합시켜 놓고 구타를 하면서 남현진이 입대 전 학생운동을 한 것과 GOP 친숙훈련 중 행군에서 낙오한 사실을 지적하며 교육시키라는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화해의 자리에 앞서 선임병 A씨 등 부대 관계자들은 고 남현진 이병이 묻혀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을 찾아 참배하고 고인에게 용서를 빌었다.

 

안병욱 위원장은 이날 자리에서 "80여 건의 의문사 사건 중 유족에게 사과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2000년 의문사위에서 조사가 시작된 이래 10년 만에 처음이다"라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가해 책임이 있는 분들의 용기 있는 고백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태그:#의문사, #진실화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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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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