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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 그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  《하진희-샨티니케탄》(여름언덕,2004) 61쪽

 

 '당시(當時)'는 '그때'나 '그무렵'으로 다듬습니다.

 

 ┌ 파격적(破格的) : 일정한 격식을 깨뜨리는

 │  - 파격적 방법 / 파격적 조건 /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다 / 파격적인 대우

 ├ 파격(破格) : 일정한 격식을 깨뜨림

 │  - 파격을 보이다 / 파격을 구사하다

 │

 ├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 그때로서는 대단히 파격이었다

 │→ 그때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 그무렵에는 대단한 일이었다

 │→ 그무렵에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 그무렵에는 대단한 대접이었다

 └ …

 

 꽤 어릴 때부터 들었던 '파격'입니다. 어릴 때에는 '-적'을 붙인 말보다 '-적' 없이 쓰던 '파격'을 좀더 자주 듣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듣든 저런 말을 듣든, 뜻은 몰랐습니다.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니 그런가 보다 했고, '파!' 할 때 거센 느낌이 있어, 그 거센 느낌에 따라서 뭔가 남다르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 파격적 방법 → 틀을 깨는 일 / 틀깨기

 ├ 파격적 조건 → 틀을 깨고 내건 조건 / 엄청난 조건 / 아주 좋은 조건

 ├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다 → 틀을 깨고 사람을 갈았다

 └ 파격적인 대우 → 틀을 깬 대우 / 어마어마한 대우

 

 낱말뜻을 헤아려 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틀을 깨는" 일이 '파격'이라고 한답니다. 옳거니, 그렇군요. '틀깨기'라. 그렇다면, 이런 말뜻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말뜻 그대로 이야기할 때가 한결 낫지 않을는지요? 어른들로서도 더욱 좋고, 아이들한테도 두루 좋은 말씀씀이가 되지 않으려나요?

 

 ┌ 파격을 보이다 → 틀을 깨 보이다

 └ 파격을 구사하다 → 틀을 깨뜨리다

 

 그러나, '파격' 아니면 말뜻과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낱말을 쓸 노릇입니다. 다만, '파격'이라고만 쓸 노릇입니다. 자기 한 사람은 이 낱말을 쓰고 싶다고 할지라도, 먼 뒷날 이 땅 이 나라에서 살아갈 아이들을 걱정한다면 '파격적'이나 '파격' 모두 털어낼 노릇입니다. 얄딱구리한 정치와 경제와 교육과 사회를 바로잡도록 애쓰는 마음만큼, 비틀어지거나 비뚤어진 우리 말과 글을 바로잡도록 힘쓰는 마음이 되어 줄 노릇입니다.

 

 틀은 깨야 하니까요. 아니, 잘못된 틀은 깨야 하니까요. 비틀린 틀은 깨고, 비뚤어진 틀은 깨부수어야 하니까요. 옳지 않은 틀은 깨야 하니까요. 그릇된 틀과 어긋난 틀 또한 깨부수어야 하니까요.

 

 바른 틀을 세우고, 아름다운 틀을 높이며, 슬기로운 틀을 가다듬는 가운데, 즐거운 틀을 늘 새롭게 마련해야 하니까요. 우리 스스로 즐겁고 우리 이웃이 즐거우며 우리 아이들이 즐거울 수 있도록 우리 삶을 가꾸어야 하니까요.

 

 

ㄴ. 지면 할애는 파격적이었다

 

.. 당시 신문의 총 면수가 보통 4∼8면 정도였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지면 할애는 파격적이었다 ..  《최경봉-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2005) 61쪽

 

 '당시(當時)'는 '그때'나 '그무렵'으로 다듬고, '총(總)'은 '모두'로 다듬습니다. "4∼8면(面) 정도(程度)였음을 고려할 때"는 "4∼8쪽쯤이었음을 생각할 때"나 "넷에서 여덟 쪽쯤이었음을 헤아릴 때"로 손봅니다. "이러한 지면 할애(割愛)"는 "이렇게 자리를 내주는 일은"이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일은"으로 손질합니다.

 

 ┌ 이러한 지면 할애는 파격적이었다

 │

 │→ 이러한 자리를 내준 일은 파격이었다

 │→ 이러한 자리를 내준 일은 놀라웠다(대단했다 / 엄청났다)

 │→ 이만한 자리 차지는 아주 큰일이었다

 └ …

 

 아주 예전, 일제강점기 때 신문이 네 쪽이나 여덟 쪽짜리였다고 했는데, 이렇게 쪽수가 적은 신문에서 여러 쪽을 나누어 주고 어느 한 가지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아주 '놀랄' 만한 일입니다. 무언가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거리라 여겼기에 이처럼 다루었을 테지요. '엄청난' 일이 있었기에, 아주 '큰일'이 터졌기에 이와 같이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크게 마음을 쏟을' 일이었거나 '많은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어떤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신문 쪽수가 스물∼마흔 쪽이 넘으니, 이와 비슷한 일이 있다면 적어도 예닐곱 쪽에 걸쳐서 이야기를 실으리라 봅니다. 사진도 큼직큼직하게 넣으면서.

 

 

ㄷ. 파격적으로 대우해 준

 

.. 학교 입장에서는 나에게 파격적으로 대우해 준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파격적 대우라는 것도 몰랐지만 말이다 ..  《이두호-무식하면 용감하다》(행복한만화가게,2006) 264쪽

 

 "학교 입장(立場)에서는"은 "학교에서 보자면"이나 "학교로서는"으로 다듬고, '대우(待遇)해'는 '받들어'나 '모셔'나 '맞이해'로 다듬습니다. '그 당시(當時)'는 '그때'로 손봅니다.

 

 ┌ 파격적으로 대우해 준 것이었다

 │

 │→ 엄청나게 생각해 준 셈이었다

 │→ 아주 높게 받들어 준 셈이었다

 │→ 여느 틀을 깨고 맞아들여 준 셈이었다

 │→ 이제까지 해 온 틀을 깨고 높이 모셔 준 셈이었다

 └ …

 

 틀을 깨고 모시는 매무새라 한다면, 아주 높이는 매무새입니다. 떠받들어 주는 매무새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헤아려 주는 매무새이며, 엄청난 자리를 마련해 주는 매무새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한두 사람한테만 틀을 깨고 높이 우러를 노릇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한테 모든 틀을 깨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노릇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한테나 '넌 이만큼이면 돼!' 하는 틀을 세우지 말고, '그래, 이번엔 이렇게 하자' 하면서 맞아들이며, '그렇구나, 그래도 이번에는 또 이만큼 더 해 보자' 하면서 맞아들이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남을 높이는 일은 곧 나를 높이는 일입니다. 남을 낮추는 일은 바로 나를 낮추는 일입니다. 남을 즐겁게 맞아들이는 일은 나를 즐겁게 돌보는 일입니다. 남을 서운하게 푸대접하는 일은 나를 못난이로 깎아내리는 일입니다.

 

 가는 말이 오는 말이 되고, 가는 손이 오는 손이 됩니다. 가는 기쁨이 오는 기쁨이 되며, 가는 웃음이 오는 웃음이 됩니다. 서로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노릇입니다. 다 함께 믿음을 나눌 노릇입니다. 내 밥그릇이 좀더 푸짐하기에 네 밥그릇에 몇 숟갈 덜어 줍니다. 내 밥그릇이 너무 홀쭉하기에 네 밥그릇에서 몇 숟갈 얻어 옵니다. 스스럼없는 오감이요 거리낌없는 나눔입니다. 말이든 돈이든 삶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사랑도 믿음도 기쁨도 다르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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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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