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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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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28일 200여 명의 교사들이 경찰의 통제를 뚫고 연세대 도서관 앞에 모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범식을 치렀다. 그해 7월 1일 당시 문교부(교과부 전신)는 전교조 조합원 전원을 파면·해임하기로 했고, 1527명의 교사가 교단을 떠났다. 1994년 교사 1294명이 복직됐고, 그 뒤 1999년에야 전교조는 합법적 노동조합으로 인정을 받았다. 10년 투쟁의 성과였다.

그러나 창립 20년을 맞는 2009년 현재, 한때 10만 조합원을 내다보던 전교조의 조합원 수는 7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경남·강원·제주 등 시도교육청이 전교조와 맺은 단협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올해 초 전교조 교사 7명이 일제고사 문제로 파면·해임됐고, 서울지부 조합원들은 주경복 후보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도덕성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올해 초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에 연루된 데 이어 최근에는 교생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 중 3명이 전교조 조합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책 면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 정책에 맞설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수진영이 교육감 선거에서 '반전교조'를 전략으로 내세울 정도로 전교조의 신뢰는 추락했다.

파면·해임, 검찰 수사... 성폭력 사건으로 도덕성 위기까지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은 지난해 선거에서 '고립을 넘어 변화의 중심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새로운 교원평가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정 위원장은 15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도 "학교운영 여건과 승진제도를 개선하고 교육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면 교원평가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고 다시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가 진전된 입장과 자세를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제도 수용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잇따른 성폭력 사건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는 외부 용역을 통한 조직 점검을 내놓았다. 바깥의 시선에서 회의운영, 조직활동 등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찾겠다는 것이다. 내부 조직 변화와 관련해서는 "학교 분회 단위 사업을 강화하고, 중요 사안에 대해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의 공약 중 하나는 '반이명박 교육 지역연대'를 만든다는 2010년 전국 교육감 선거전략이다. 물론 선거법상 전교조는 선거운동에 직접 뛰어들 수 없다. 정 위원장은 "지역조직을 만들고 교육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전교조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미 '진보후보'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정 위원장은 "김 교육감에게 전교조 경기지부의 의견은 여러 의견 중 하나"라면서 "김 교육감은 전교조와 맺은 관계를 돌아보지 않아야 하고, 전교조도 자기 주장을 관철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야 김 교육감이 '교육의 희망'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터뷰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2시간가량 전교조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 조합원들이 줄어들고 있다. 젊은 교사들이 가입을 안 한다. 돌파구는 무엇인가.

"조합원이 7만 명 아래라는 보도가 나오는데, 8만 명은 넘는다고 파악하고 있다. 조합원 감소는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는데, 그중에 아픈 진단은 '조합이 커지다보니 내부 소통이 없다'는 것이다. 시대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 위에서 결정된 사업에 따르는 게 아니라 학교 분회에서 스스로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비합법 시대부터 이어진 낡은 구조로 소통을 해왔다. 올해부터 조합원 데이터베이스를 1차 완성하고 상호 의견교환이 가능한 온라인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서 국민적 신뢰를 높이는 것이 대책이다."

"전교조가 성폭력 사건에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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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위원장 말대로 지금 전교조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국민적 신뢰 회복이다. 전교조를 두고 "자기 철밥통 챙기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교원평가제 반대가 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게다가 올해는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와 교생 성추행 사건이라는 두 가지 사건으로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교생 성추행 사건 등에서 전교조의 책임은 무엇인가.

"전교조가 성폭력 사건에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성폭력) 신고센터를 만들고 관련 교육도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번 기회에 조직문화 전반을 점검할 생각이다. 우리 시각으로 안 되기 때문에 외부 여성단체에 회의운영, 조직활동 등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찾아달라고 조사용역을 의뢰했다. 개선 방향을 공유하고 외부에도 공표하고 하나하나 개선해나갈 생각이다."

- 최근 민주노총에 사건보고서에서 '전교조의 조직적 은폐' 부분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징계 과정에서도 계파 갈등이 불거졌는데, 이 같은 과정이 적절했다고 보나.
"우리는 피해자가 속한 '피해조직'이다. 그런데 가해자나 가해조직은 온데간데없고, 피해자 치유활동에서 나온 문제점만 부각돼 우리가 가해조직인 것처럼 인식된다. 구체적인 내용 없이 조직적으로 은폐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서에) 기술하면 전교조 8만 조합원들은 뭐가 되나. 그런 취지에서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징계수위에 대해 개인적 생각은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성폭력징계위원회가 징계 수위과 공표방법 등에서 사실상 모든 결정권한을 갖는다. 저는 징계한 내용을 당사자들에게 통보할 의무밖에 없다. 회의 내용도 말할 수 없다."

- 전교조는 몇 년째 교원평가제를 반대하고 있다. 반대만 하지 말고 적극적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교사들이 평가를 안 받는 것이 아니다. (다른 노동자보다) 훨씬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근무평정제도는 가르치는 것과는 상관없이 순위가 매겨지고, 거의 (교장) 1인에 의해서 평가되는 방식이다. 여기에 현재의 임금 차등지급과 교원평가제까지 합하면 3중의 평가가 된다.

이명박 정권은 교원평가제를 실시하면 공교육이 살아나고 사교육비도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면 교원평가제 하면 강남과 강북의 성적격차를 해소할 수 있나. 잘못된 교육정책의 책임을 교사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왜 역대 정권이 모두 교육개혁에 실패했나? 개혁의 주체인 교사를 개혁 대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학교운영 여건과 승진제도를 개선하고 교육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면 교원평가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

- 전략적으로라도 교원평가제를 내주고 다른 명분과 실리를 챙겨야 하지 않나. 원론적 반대만 되풀이하는 것은 전교조 내부 선거에서 표심을 의식한 결과 아니냐.
"전교조를 아끼는 많은 분들에게 그런 제안을 많이 받는다. 교원평가제를 털고 가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들의 정책에 발목 잡히고 싶은 조직이 어디 있나.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그 부분은 답이 없다. 정부가 어떤 진전된 입장이나 자세도 내놓지 않는다. 이래서는 조합원 뿐 아니라 대중교사들도 설득할 수 없다. 

전교조는 몇 사람(계파 활동가)에 의한 결사체가 아니라 대중조직이다. 교원평가제에 대한 입장은 다년간 조합원들의 논의로 확정된 방침이다. 그나마 근무평정제·승진제까지 포함해서 평가제를 논의하자는 것은 제가 내놓고 있는 주장이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MB식 교육 심판하겠다"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분위기는 더할 수 없이 좋았다. 거리에 나온 촛불소년소녀들은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면서 '미친 소'와 함께 '미친 교육'에 저항했다. 전교조와 교육시민단체들이 내세운 주경복 후보는 현직인 공정택 교육감과도 대등한 지지율을 얻었다.

그러나 선거 막판, '전교조 대 반 전교조'의 선거 구도가 굳어지면서 결국 주 후보는 고배를 마셨고, 전교조는 아직까지 검찰 수사 등의 후유증을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전교조는 오는 2010년 교육감선거에서 이명박식 교육을 심판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 2010년 선거에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풀뿌리연대를 통해 지역주민이 교육을 자신의 문제로 판단하도록 만들겠다. 이명박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정당과 단체와 개인이 결합하고 그 안에서 후보를 내면, 그나마 바른 선택이 되지 않겠나. '전교조 출신' 후보도 그 지역연대에서 동의받아야 한다. 전교조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선거운동에서는 없고, 교육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오는 6월까지 지역별로 교육선언 사업을 하는데, 이를 중심으로 올해 조직화를 마치고 이후 지역연대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볼 때, 전교조의 지지가 진보진영 후보 표를 깎아내는 것 아닌가.
"투표율 15% 아래 선거에서는 자기 표 결집이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 공정택씨가 표 결집을 위해 전교조를 나쁘게 활용했고 결국 (강남 지역의 몰표를 받아) '강남교육감'이 됐다. 이 같은 선거전략은 도덕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있을 수 없는 파렴치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치러지는 전국 선거에서는 전교조를 파는 색깔론으로는 선거할 수 없다. 전교조가 아무리 비판받는다고 해도, 국민들의 신뢰나 지지는 일정하게 남아 있다. 오히려 선거를 통해서 전교조를 검증받을 수도 있다."

지난해 7월 30일 밤 주경복 서울시교육감 후보와 지지자들이 서울 종로구 교남동 선거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선관위의 개표 현황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해 7월 30일 밤 주경복 서울시교육감 후보와 지지자들이 서울 종로구 교남동 선거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선관위의 개표 현황을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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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 전교조'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는 어떤 관계인가.
"아무 관계 아니다(웃음). 개인적으로 그분하고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됐다. 예전에 우리 조합원이었고. 좋은 자질을 갖춘 분인데, 잘할 수 있는 (임기의) 시간적 여건이 안 될 것 같아서 안타깝다. 김 교육감은 성공해야 한다. 희망의 메신저로 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 털어버리고 도민 입장에서 교육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김 교육감은 1년 동안 많은 일을 해서도 안 되고, 그걸 요구해서도 안 된다.

전교조 경기지부의 의견은 여러 의견 중 하나일 뿐인데, 이것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자신과 다른 목소리에 눈감는다'고 비판하지 않나. 전교조도 자기 주장을 관철시켜서는 안 되고 오히려 김 교육감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선 이후) 우연히 스쳐지나듯 만났는데 그때도 '성공하려면 지금까지의 인연이나 전교조와 맺은 관계도 돌아보지 말라'고 말했다."

- 주경복 후보 불법 선거자금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후유증이 커서 다음 선거에서 다시 나서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교육의 상징성으로 볼 때 정부가 지난 선거 투표결과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내년 교육감 선거를 의식해서 사법적 처리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재판) 결과가 나와도, 시민사회세력들이 이번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내년에 시민후보를 내고 교육감 선거를 서울시민들의 심판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시기의 분노와 아픔은 (내년 선거를 준비할) 저력이 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2년 동안 50~100개의 모델을 제시할 계획"

'온건파' 정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선거에서 참교육실천연대(참실련) 후보로 나서 3만189표(51.7%)를 얻었다. '교육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교찾사)와 1986표(3.4%P)밖에 차이나지 않는 박빙의 승부였다.

-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선됐는데, 계파를 조율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수많은 조합원이 있는 조직에서는 당연히 수많은 의견이 존재한다. '계파'라는 것은, 사업의 중심을 무엇으로 할지에 대한 다른 주장으로 나타난다. (계파들의 의견이) 합리적 분석과 근거가 있는 정책적 주장이 되도록 하고, 그에 따른 조합원들의 선택을 추려야 한다. 그동안은 '총투표는 종이투표로만 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온라인 등을 통해 중요한 사안마다 조합원 총투표를 하겠다. 또한 조합원들이 직접 의견을 제시하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어렵고 더디지만, 대중조직이 의견을 통합하는 유일한 과정이다."

- 정부에서 적극적 학교자율화 정책을 펴는데 전교조의 대안은 뭔가. 공교육 경쟁력 강화나 학력 신장 자체를 껄끄러워하는 것은 아닌가. 이 때문에 "전교조가 있는 학교는 성적이 나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학력신장'과 '자율화'를 내세워서 정책들이 현란하고 수사적이다. 이런 정부의 정책을 분석하지 않고 대안을 내놓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또한 잘못된 정책마다 대안을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영리학교나 자립형사립고 정책을 놓고, '다르게 해보자'고 대안을 내는 것보다 그냥 안 하게 막는 것이 좋다.

학력신장에 대해 부인할 필요는 없지만, 전교조의 역할은 별도로 찾아야 한다. 사교육으로 선행학습이 이뤄지고 공교육은 부실해지면서 학력격차가 커지는데, (학교수업에)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전교조가 1차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한 사교육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지역사회 차원에서 공부방 같은 지원체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그 이상은 우리가 할 일은 아니다."


- 초기 '촌지거부운동'과 달리, 청소년 인권이나 대안교육과 관련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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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교를 만든다는 것이 정부 (학교자율화) 정책의 핵심인데, 우리의 대안은 '다양한 학교'가 아니라 '학교교육의 다양화'다. 특목고·자사고 같은 특별한 학교에 재원을 쏟는 게 아니라 (일반)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개발해야 한다. 대안교육이 수년간의 사회적 실험을 거쳤는데, 그 성과를 공교육에 접목시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교조는 앞으로 2년 동안 50~100개 모델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프랑스·일본에서 연구하고 온 교사들도 있다.

사실 20년 전에는 전교조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토대에서 학교 민주화, 학생 동아리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지금은 다른 데서도 이런 활동을 하니까 더 참신한 걸 내놓지 않으면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핑계 같지만 아이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 교사들은 잡무와 공문 처리에 매달리면서 스무 개 넘는 반에 들어가 1:1로 수행평가를 해야 한다. 애들도 요즘에는 청소도 못할 정도로 학원 가느라 바쁘다. 어떤 교사들은 수업하고 상담까지 마치면 (힘들어서) 신문지 깔고 눕는다. 이런 교사들의 헌신성은 (전교조) 초기의 몇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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