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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5월을 맞이해 아이들에게 과제 하나를 내주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것은 '내가 부모님(엄마나 아빠)이 사랑스런 이유 20가지'이다. 아이들은 늘 부모의 품 안에서 자라고 마시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나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길 하다보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미리 준비해서 어버이날(8일)에 꼭 큰소리로 읽어드리고 느낌을 써보자고 했다. 처음 아이들은 웬 쌩뚱맞는 걸 내주냐며 퉁퉁거린다. 그러면서 남사스럽게 어떻게 읽어주냐며 또 툴툴거린다. 한 번도 해보지 안하던 걸 하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렇게 설득했다.

 

"너희들 엄마 아빠 사랑하지?"

"네~."

"그러니까 한 번쯤은 부모님의 어떤 면이 사랑스럽고 좋은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잖아. 그리고 작년에 해봤는데 이게 부모와 자식 간에 소통의 도구도 되더라."

 

아이들에게 이런 과제를 내주면서 한 가지 고민을 한 게 있다. 학교 아이 중에 부모가 안 계신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 아이들에게 해오라고 한 건 어머니나 아버지가 사랑스런 이유를 쓰고 읽어드리라고 한 건데 그 아이에겐 이것이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 고민하다가 그 아이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로 했다.

 

"선생님, 왜요?"

"실은 너에게 양해를 구할 일이 있어서."

"뭔데요?"

"이번에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부모님이 사랑스런 이유라는 글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려고 그래. 근데 자꾸 니가 마음에 걸려서 말야. 해서 너만 괜찮다면 한 번 하고 싶은데."

"그럼 저는요?"

"넌 대신 '내가 사랑스런 20가지 이유'를 써 봐. 그에 대한 느낌은 내가 써줄 게. 그래도 괜찮을까?"

"… 네 괜찮아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미리 그런 얘기 해줘서요."

 

괜찮다 말하고 활짝 웃으며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려니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사실 그 아이는 무척 밝다. 부모 없이 시설에서 생활하지만 부모 밑에서 생활하는 어떤 아이보다 명랑하고 공부도 잘한다. 입학해서 아직까지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또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하겠다는 분명한 생각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의 품을 받지 못한 그 아픔이야 말을 안 해도 느낄 수 있다.

 

백팔십 여명의 아이들 중 유일하게 엄마나 아빠가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이유를 정성스럽게 써온 아이는 자신이 사랑스러운 이유를 이렇게 써왔다.

 

내가 사랑스런 이유 20가지

 

1.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람이다.

2.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

3. 멋진 꿈을 가지고 있다.

4. 항상 웃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5.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한다.

6. 감수성이 풍부해 눈물을 잘 흘린다.

7. 책임감이 있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8.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9. 열정이 많다. (모든 일에~)

10.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11. 모든 일에 신중하다.

12.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

13. 약속한 것은 꼭 지킨다.

14.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한다.

15, 공부, 운동, 취미생활 등 모든 일을 열심히 한다.

16.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17.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믿음이 있다.

18. 명랑하고 쾌활하다.

19.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이 있다.

20.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책상에 붙여놓은 이 아이의 삶의 좌우명은 '앞만 보고 달려가자' 이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길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안심이 되고 기특하기도 하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 아이.

 

다른 아이들의 글에 어머니나 아버지의 느낌이나 소감이 댓글로 달려있지만 난 그 아이에게 엄마나 아빠를 대신에서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었다.

 

'○○가 너무 예쁘구나. 네가 가지고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각과 꿈들 꼭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사람의 운명, 아니 자신의 미래의 모습은 생각 따라 이루어지거든. 그리고 너의 따스한 마음, 사려 깊고 분별 있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믿음… 그 모든 것들, 너의 밝은 웃음 속에서 싱싱하게 자라리라 믿는다.'

 

그 아이는 아플 때를 빼곤 늘 웃는다. 복도에서나 교실에서나 여러 선생님들과 이야길 나눌 때도 항상 웃는 얼굴이다. 그 아이가 웃는 것은 자신의 말대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을 사랑하고 멋진 꿈을 위해 뛸 수 있는 열정이 있기 때문일 거다. 난 그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힘들 때 이따금 어깨를 토닥여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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