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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이가 다니는 과학고 학부모들이 학교 청소를 하기로 한 날, 아내에게 다른 일이 있기도 했지만 아빠인 내가 가볼 생각이었다. 무슨 극성이기에 초등학교도 아닌 고등학교에 부모가 청소하러 가느냐는 생각이었다. 노는 토요일이라 학생들과 선생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부모들이 구역을 나눠 청소했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어 시작한 청소는 오후 4시가 넘어 끝났다.

 

오전에 식당 바깥쪽 유리를 닦으며 나는 불만이 많았다. 학교에서 선생들이 학생들과 함께 이런 걸 해야지 왜 부모를 시키느냐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에서 시킨 게 아니라 엄마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다. 온달이네 반 학부모 대표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는 청소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이게 교육적으로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청소는 하기 시작한 거고 토론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오후에는 식당 입구 바닥을 밀대식 수세미로 힘들여 박박 문질러 닦았다. 바닥이 뽀애지기 시작했다. 힘을 쓰니 오히려 기운이 나고 기분도 좋아졌다. 옆 사람에게 농담도 했다.

 

"이렇게 재밌는 일을 왜 부모들만 하지요? 애들한테 이런 걸 가르쳐야 한다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보니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왜 부모가 청소하러 가느냐는 것만 불만스러워했다. 전통이란 것도 불만이었다. 옳지 않으면 바꿔야지 왜 계속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부모와 학생 그리고 선생이 함께 청소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그게 정말 올바른 교육이지.'

 

청소가 끝나고 식사를 한 다음 나는 손을 들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청소하니 기분도 좋네요. 가을에 한 번 더 합시다. 그리고 그때는 아빠들도 더 오라고 합시다. 아빠들이 참석한 집은 점수 1점씩 올려줍시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했다. 점수 올려준다면 어떤 아빠가 빠지겠느냐는 말도 들렸다. 나는 잠시 틈을 두었다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런데 가을에 할 때는 학생들도 같이 합시다. 그래야 더 재밌고 그게 또 교육 아니겠습니까. 청소 끝난 다음에는 간단한 운동회나 문화행사도 함께 해보면 더 좋겠습니다."

 

집에 와서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말을 나리한테 했더니 나리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역시 아빠는 대안학교를 경험해봐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듣고 보니 그랬다. 나한테는 그게 자연스러운 거고 다른 부모들은 애들을 공부만 하게 하고 청소는 부모가 해준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던가 보다. 해줄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게 놀이이고 생활인데 말이다.

 

그날 밤에는 펜션에서 찬이네를 만났다. 지난해 재무상담을 받은 고객인데, 찬이 아빠가 소령 때 거쳐야 하는 집체교육을 넉 달 동안 대전에서 받아 모처럼 가족끼리 놀러온 것이다. 잔디밭에서 삼겹살과 왕새우를 구워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멀리 고려산 정상에 있는 미군 기지 불빛만이 유난히 빛나는 밤이었다. 바로 앞 작은 산에서 달이 넘어오는 게 보이는 운치 넘치는 술자리였다. 찬이는 아빠랑 한바탕 공놀이를 하고 와서 술자리 한쪽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게임기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인 찬이는 형제가 없어 늘 엄마나 아빠가 놀아줘야 한다. 찬이 엄마는 아빠가 찬이와 잘 사귀지 못하는 게 불만이었다. 그런 찬이네한테 나는 같이 놀아주는 게 가장 큰 교육이라며 설교 아닌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러던 중에 찬이 엄마가 내 말에 놀란 듯이 되물었다.

 

"아니, 애들한테 져주세요?"

 

나도 놀랐다.

 

'내가 져준다고 했나?'

 

찬이 엄마가 그렇게 말한 건 내가 이렇게 말한 걸 두고 한 말이었다.

 

"온달이한테 빨래 좀 널라고 하니까 시험기간에 왜 그런 걸 시키느냐고 대들더라고요. 그래서 '깨갱' 하고 물러섰죠." 

 

그러고 보니 내가 애들한테 져주는 적도 많은 것 같았다. 보리한테도 뭘 시켰다가 반발하면 양보하기도 했다. 계단 청소를 하자고 해도 아이들은 함께 해주지 않아 나 혼자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져주기도 한다고 하자 찬이 엄마가 찬이 아빠를 빗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이는 맞선다니까요."

 

찬이 아빠가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있던 찬이가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군인정신"

 

촌철살인이라더니 찬이가 참 그렇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상담할 때 찬이 아빠가 한 말이 떠올랐다.

 

"놀아주기는 많이 놀아주는데 가르치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찬이 아빠도 알고는 있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찬이 엄마에게 지난해에도 그랬고 그날도 전혀 다른 주제를 꺼냈다.

 

"둘째를 낳아주세요. 애들끼리 놀아야죠."

 

찬이도 동조했다. 동생 낳아달라고.

 

찬이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셋이라 좋은 면도 있다. 또 농촌이지만 이웃에 같이 놀 또래들이 많았던 것도 좋았다. 요즘은 도시라 하더라도 애들이 놀지 않는 게 문제다. 그냥 애들끼리 놀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태권도장이나 검도장 같은 데 가서 돈을 들여 놀아야 한다. 참 우스운 일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꿰어졌을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시험이 두려워 함께 자살하겠다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남 얘기라고만 생각할 게 아니다. 내 아이들, 이웃집 아이들이 바로 그 곁에 있다.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글을 마친다.


#학부모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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