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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제는 나름 일을 만들어 보냈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 새벽까지 한글 공부를 한 셈이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내가 잘 배워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가르쳐 본 날들이 많지는 않으니 더구나 낯선 외국인을 상대로 우리말을 가르친다는 것은 나름 사명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오늘은 지난 달 2주 동안 홈스테이를 했던 타샤네 부모님을 초대했다. 그러나 타샤는 그의 친구 비까와 다른 도시에 가있어서 올지 안 올지 모르겠고 더구나 그의 부모님도 나의 집에는 와 본 적이 없어서 올지 안 올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비까와 통화하기로는 11시까지 집에 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난 전날 시장은 보았고 그러면서도 꾸물꾸물 준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가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확신은 없지만 온다고 가정하고 준비를 하자 마음먹은 것이다. 시간이 11시 15분 전이다.

 

막 음식 준비에 들어간 상태인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이사 온 후 몇 차례 초인종이 울렸지만 들은 척도 않고 반응 없이 그냥 무시하기 일쑤였으나 약속된 시간이라 나가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데 타샤와 그의 부모님이 함께 바리바리 손에 무엇을 들고 집 앞에 서있다. 아니 이런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문을 열고 곧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당황스럽게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실수다. 지금쯤 음식 장만이 끝나고 식탁이 차려져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예법이다. 그러나 어쩌는가? 어설픈 나그네가 초대한 손님이지만 성의껏 맞이할 수밖에... 나는 곧 거실 겸 침실로 쓰고 있는 큰 방 의자로 안내하고 음식 장만하던 손길을 바삐 움직였다.

 

천만다행이다. 이미 집에서도 몇 차례 함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어색함은 금방 자연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한 사람씩 내가 음식을 만드는 부엌으로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들고 들어와 앉았다. 나는 멋진 칼질 솜씨를 보여주면 얼었던 생선을 녹여 놓은 것 그리고 아직 덜 녹은 생선을 그릇에 넣고 가스 불을 켜 녹이기 시작했다. 다른 그릇에는 뼈 갈비를 넣고 감자를 굵게 썰어 넣었다. 뼈다귀 감자탕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뼈다귀 감자탕이라면 오래 삶아야 맛인데 이들이 그 깊은 맛까지는 아직 이른 체험이라 나름 규정하고 그냥 익혀서 먹는 갈비찜에 감자를 얹어 맛을 내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짧은 순간이지만 급하니 착착 순서대로 머리가 돌아간다. 먼저 준비했던 생선이 어느 정도 녹은 후 곧 준비한 버섯과 브루콜리 그리고 고춧가루, 소금을 적당히 넣었다. 그런데 그러고 있는 내게 타샤가 와서 앞치마를 걸어준다. 하하! 파안대소로 답을 대신했다. 그들과 함께 한참을 웃었다. 생각하지 못한 선물이다. 거기다 접시를 크기별로 3세트를 준비해왔다. 사실 도자그릇이 값이 비싼 편이라서 난 2세트만 준비했다. 덕분에 살림장만 제대로 해서 이제 누가 찾아와도 멋진 식탁을 꾸밀 도자그릇은 충분해졌다. 아무튼 생선요리는 맨 먼저 내놓을 음식이다. 나는 곧 익어가는 생선 조림에 거기 적당량의 와인을 감칠맛 나게 뿌려주었다. 마지막으로는 대여섯 조각의 작은 치즈를 잘라 장식을 했다. 물론 한국음식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음식이니 이도 한국 음식이나 다름없으리라.

 

그들이 도착하고 불과 30분 1차 요리는 완성되었고 접시를 내어 조금씩 내어놓았다. 1차 요리 대성공이다. 한쪽에서는 계속 다음 코스 요리가 익어가고 있다. 아무튼 1차 요리로 분위기를 잡은 나는 곧 조리 중인 2차 요리를 두고 3차 요리에 들어갔다. 3차 요리는 그냥 생강과 마늘 그리고 소금 넣고 닭을 삶는 것이다. 그저 가스 불을 조금 거칠고 세게 켰다. 1차 요리 접시에 쌀밥을 얹어 주었다. 내 입맛은 아주 좋다. 그들도 아주 맛있다고 했다. 사실 그들에게 쌀밥은 아주 가끔 먹는 간식이나 다름없다. 맛있게 먹는 그들을 보면서 난 겨우 안심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먹고 마시는 것을 공유하는 것만큼 인간적인 것이 또 있으랴. 또 그만한 친숙감을 가져올 일이 또 있으랴. 난 이미 그들과 2주 동안을 함께 먹고 마셨다. 난 그 틈에 미리 준비한 가까운 몰도바 산 와인을 한잔씩 따라 권했다. 우리는 함께 건배를 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끽했다. 건배를 하며 나는 속으로 다시 한 번 안도감을 갖는다. 1차 요리를 먹어가는 도중 이미 2차 요리는 다 되어간다. 우리네 감자탕처럼 푹 삶아낸 시간은 아니지만 고기를 익히기에 4~50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1차 생선요리를 두 접시씩 비웠다. 2차 요리를 권했더니 배가 부르단다. 그러나 우리의 미덕은 서운하지 않게 권하는 것 아닌가? 그래 곧 다른 접시에 2차 요리를 담아 권했더니 거절하던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알 길 없이 맛있다면서 곧잘 먹는다. 아! 나는 내심 쾌재를 부른다. 오호, 얼마나 다행인가. 초대한 손님들이 낯선 나라 음식에 거부감을 갖고 어렵게 먹는다거나 맛이 없는 표정이라도 보이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불편인가. 스스로 자족하며 2차 음식을 다시 함께 먹는다. 그러는 도중에도 3차 요리는 또 잘 익어가고 있다. 뼈다귀 두 덩어리, 뼈다귀와 어우러져 잘 익은 감자! 뼈다귀와 잘 어우러져 익은 감자 맛은 일품이잖은가? 그 맛은 그들에게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인 모양이다. 난 함께 즐거운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이제 마무리 요리다. 삶은 닭 뜯기가 시작되었다. 부드러운 닭을 먹으면서 너무 부드럽고 맛있다고 만족스런 인사다.  

 

그렇게 황급했던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거기다 곁들인 와인 맛도 좋았다. 나는 며칠 전 근처 대형마트에서 DVD판매점 점원이 끼따이(중국)것이라던 천년학을 구입했다, 그래서 그것을 보겠느냐고 권했다. 이미 가문의 영광을 보고 반응이 좋았던 그들이다. 그러자고 해서 난 천년학을 함께 보며 차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녹차인데 이들 식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녹차에 설탕을 타는 데 내가 굳이 교육을 시킬 필요는 없고 차를 내놓고 나서 설명을 대신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난 후, 다음을 기약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니꼴라예프에 와서 처음 만났던 가족이다. 그리고 그들을 나는 맨 먼저 나의 집에 손님으로 초대해 식사를 함께했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음악을 듣다가 전날 사다놓은 프린터를 설치하려는데 프린터 연결선이 없다. 한국 같으면 응당 함께 구비되어야할 연결선을 따로 판매해서 돈을 지불했는데 박스에 없다. 난 곧 전날 구입한 가게에 가보려고 문단속을 하고 나갔다. 아니 그런데 없던 바깥 출입문이 생겼다. 이런 낭패가 있나. 난 곧 집주인 딸 이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름 서툰 러시아어로 이야기는 해서 의사 전달은 한 것 같은데 자꾸 나의 협력자인 나탈리아에게 전화를 거라고 한다. 그래 나탈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곧 연결이 안 된다. 서너 차례 연결을 시도해서 통화를 했고 겨우 설명을 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나탈리아의 말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다. 20분쯤 후 초인종 소리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리나와 나탈리아가 함께 와서 문밖에 기다리고 있다. 난 어찌된 일인가? 너무 당황스러웠노라 말하고 이리나에게 열쇠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어제의 일을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나탈리아가 함께 가줄까 하고 물었다. 난 그러면 좋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휴식을 즐길 시간에 나 때문에 온 사람에게 일부러 가달라고는 못하던 차에 고맙다. 사실 나 혼자 가서는 그냥 새로 하나의 연결선을 또 사야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함께 가까운 대형마트에 갔다. 나탈리아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서 나탈리아가 점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나는 어제 받은 영수증을 보여주었다. 관리인은 전날의 시시티브이 화면을 일일이 점검하고 3장의 영수증을 받았는데 2개의 물건을 손에 쥐고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새로운 연결선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아무튼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내가 다 가져갔다고 했으나 화면상에는 2개만 가지고 나간 것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만약 다시 찾아보고 있다면 가져다주겠다고 말하고 나탈리아에게 다시 고마운 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피수원뉴스에도 동시 게재 됩니다.


태그:#우크라이나?니꼴라예프, #한국어 교육 우크라이나 해외봉사단, #니꼴라예프 시인 김형효, #수호믈린스키 국립대학교 시인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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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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