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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망운산 송신소로 가는 길에 연분홍 산철쭉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 KBS 망운산 송신소로 가는 길에 연분홍 산철쭉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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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가까운 친구들과 경남 남해군 망운산(望雲山, 786m) 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4년 전 이맘때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그곳 연분홍 산철쭉꽃들의 고운 자태를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전 8시 50분에 김해를 출발한 우리 일행이 화방사(花芳寺, 경남 남해군 고현면 대곡리)에 도착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11시 50분께. 산행 초입에는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하지만 풋풋한 풀 냄새를 맡으며 오월의 숲 속을 걸어가는 즐거움으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한 줄기 싱그러운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얼굴에 송송 맺힌 땀이 씻겨 나가고, 간간이 들려오는 새 지저귀는 소리에도 내 마음은 기쁨으로 떨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한 걸음으로 쉬엄쉬엄 올라갔는데도 산행한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임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해 서면 노구마을에서 망운암 쪽으로 나 있는 그 임도에는 가끔 차가 다니기도 한다. 사실 첫 망운산 산행 때만 해도 땀을 뻘뻘 흘리며 그곳으로 올라서자마자 미처 생각지 못한 임도에, 차 소리마저 들려 매우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도에서 망운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있는 드넓은 산철쭉밭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세워 둔 승용차를 봐도 그저 무덤덤했다.

그런데 산철쭉 꽃길을 아무리 걸어 올라가도 파란 바다와 어우러져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예전의 그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꽃들은 이미 볼품없이 시들시들 지고 있었다. 사실 꽃들이 내 마음에 맞출 수 없는 법, 나는 아쉬운 생각마저 떨쳐 버렸다.

남해 망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 남해 망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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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망운산 정상에서.  
▲ 경남 남해군 망운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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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10분께 전망이 탁 트인 망운산 정상에 이르렀다. 남해에 비가 오지 않으면 이곳 정상에서 기우제를 지냈을 정도로 남해 사람들이 몹시 아끼는 산이다. 내리쬐는 햇살은 따가워도 그날 정상에 불어 대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쓰고 있던 등산 모자가 날려 갈 판이었다.

정상 표지석 제막식.   
▲ 정상 표지석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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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상 표지석 부근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 잡고 앉아 냉동실에 넣어 얼려서 들고 온 캔 맥주와 맛있는 김밥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참 뒤에 등산객들은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정상 표지석 주변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왜 저러나 했더니 정상 표지석 제막식을 곧 올린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표지석이 예전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육중하게 보였다. 정현태 남해 군수를 비롯하여 남해산악회 회원, 남해군산림조합 직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표지석을 하얀 천으로 씌워 둔 채 제막식이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가까이에서 정상 표지석 제막식을 지켜보는 것이 처음이라 인상 깊었다.

KBS 송신소 가는 길서 연분홍 산철쭉꽃에 취하다

정상에서 내려와 계속 KBS 망운산 송신소까지 가기로 했다. 운 좋게도 그 길에 예쁜 산철쭉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꽃길이었다!

파란 남해 바다와 어우러져 피어 있는 연분홍 산철쭉꽃들이 참 예쁘다.  
▲ 파란 남해 바다와 어우러져 피어 있는 연분홍 산철쭉꽃들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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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망운산 송신소로 가는 길에.  
▲ KBS 망운산 송신소로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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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산철쭉 꽃길에서.  
▲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산철쭉 꽃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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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할 것도 없고 일행 가운데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가르치는 조수미씨도 개를 몹시 좋아하는데, 망운산 송신소에서 살고 있는 개 덕분에 우연히 그곳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뽕잎차와 맛있는 커피 대접을 받게 되어 즐거웠다.

우리는 관대봉(594m)을 거쳐 하산하기로 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관대봉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운치가 있었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더위도 잊어 버렸다. 사실 그 길은 꽤 가팔랐지만 우리는 하산길이라 수월했다.

남해 화방사의 아름다운 법고 소리

오후 4시 20분께 관대봉 정상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아산마을 쪽으로 계속 내려가 택시를 잡아타고 화방사로 다시 갔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화방사 절집 안으로 들어서자 법고(法鼓) 울리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범종각으로 달려갔다. 스님이 법고를 두드리는 모습은 내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이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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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봉 정상을 향해서.  
▲ 관대봉 정상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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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사 스님의 아름다운 법고 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돈다.  
▲ 화방사 스님의 아름다운 법고 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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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사 범종각에는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의 법전사물(法殿四物)이 다 모여 있었다.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예불 시간에 가장 먼저 법고를 울린다고 들었다. 스님은 법고에 이어 범종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동안 숨죽이고 듣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소리에 왠지 내 귀가 열리고 마음의 눈이 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분홍 산철쭉밭에 아름다운 법고 소리까지 한동안 남해 망운산 산행의 행복한 시간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진교 I.C→ 남해대교→ 고현면 대곡리 화방사→ 망운산



태그:#망운산산철쭉꽃, #남해화방사, #법고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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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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