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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 넘었다. 국민들은 그들의 싸움에 넌덜머리가 나 있다. 한나라당의 이른바 '친이'와 '친박'의 싸움은 대선후보 경선이 있었던 2007년 여름 이전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멈춘 날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게다가 갈수록 사태는 악화되어 가고 있다. 서로 상대를 눙치거나 해코지하는 말들이 전쟁터의 포탄처럼 오가고 있다. 가히 진흙밭에 개싸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수준이다. 아니, '이'와 '박'의 싸움이니 이전투구 대신 차라리 '이박투구(李朴鬪狗)'로 부르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그들이 이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 여당이라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것은 작년에 있었던 민주노동당의 집안싸움이나 최근에 벌어진 민주당의 당내 갈등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집권 여당의 파행은 국민에게 폐해가 직접 미치기 때문이다.

 

경선 국면에서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후 대선을 겪으며 친이· 친박 두 세력은 살얼음판을 디디는 것처럼 위태롭게 동거했다. 급기야 총선 공천 과정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더니 이후 두 세력은 사사건건 암투 또는 격투를 벌여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4·29 재·보선에서 0:5 참패를 당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명색이 집권 여당인 데다 그것도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은 거대여당이 소수 계파 보스의 위력에 주눅 들어 허구 한 날 패싸움을 했으니 국민의 지지를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 한나라당은 난파선을 방불케 한다. 친이와 친박과 당 대표와 최고위원과 소장파들이 중구난방으로 수습책들을 제시하지만 모든 것이 자기들의 이익을 꾀하기 위한 임기응변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4·29 재보선 후 박희태 대표를 만난 자리(5월 6일)에서 친박계의 좌장이라는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자는 박 대표의 제안을 추인하면서, "이제 당에는 계파 소리는 안 나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화의 선후가 분명치는 않지만,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것은 4·29 재보선의 참패가 당내 계파 갈등 때문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를 계파 갈등 봉합으로 치유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김무성 의원이 누구인가? 불과 1년 전 총선에서는 공천조차 주지 않아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어렵사리 복당한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을 이제 형세가 불리해지자 원내대표 자리를 주려고 했던 박 대표와 이 대통령의 속셈이 일단 너무 얄팍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와 친이계의 졸렬하고도 변칙적인 당정 운영은 국민 다수가 이미 알 만큼 알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집권 여당 갈등의 또 다른 한 축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른바 친박계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따져 보려고 한다.

 

박근혜 의원 '원칙'이라는 것의 실체 

 

최근 김무성 원내대표안을 거부한 박근혜 의원의 처사는 정당한 것인지 따져 보자. 그는 미국에서 "소위 친박이라고 하는 분들이 당에서 하는 일에 발목 잡은 게 뭐가 있느냐?"고 거친 언어로 반박했다.

 

이것은 계파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 대통령의 말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친박'이라는 용어를 직접 구사함으로써 계파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럼으로써 자기는 친박의 수장임을 은근히 과시했다.

 

또한 이 발언은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며 당내 갈등의 한 축인 '친박'에게는 전혀 없다는 인식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재보선에서 참패한 원인은 이 대통령의 국정 실패에도 있지만 한나라당의 계파 갈등에도 일정 부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의원은, 김무성 의원의 원내대표 추대는 당헌 당규 등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나는 반대"라고 오금을 박았다. 이것은 김무성 의원 당사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행한 발언으로서 독선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무성 의원은 원내대표 출마를 고려하고 있던 차였는데 박 의원의 발언 한 방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박근혜 의원이 과거 당의 대표였고 지금은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라고 해도 그는 평의원의 신분, 즉 '박근혜 의원'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런 발언을 함부로 하는 것은 그가 곧잘 써먹는 '원칙'에 부합하는 바인지를 먼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혹시 그는 '원칙'으로 포장하여 자기 사람이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을 미리 차단한 것은 아닐까? 그에게는 한때 자기 편이었던 강재섭 전 대표를 잃은 경험이 있다.

 

박근혜 의원은 이번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을 제의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듯이 이 개헌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제안한 바 있다. 그때 박 의원이 뭐라고 했던가? 그는 "(노무현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었다. 박근혜 의원에게 묻고 싶다. 임기 연장을 위해 삼선개헌을 하고 영구 집권을 위해 유신개헌을 한 박정희는 좋은 대통령인지 나쁜 대통령인지?

 

박근혜 의원은 지난 재보선에서 이상득 의원이 정수성 후보의 후보 사퇴를 종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이 정수성 후보를 주저앉히려 한 것이나 이번에 박 전 대표가 김무성 의원을 주저앉힌 것이나 본질적으로 반칙이라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의원의 본능적인 자기 방어 능력

 

박근혜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자신의 리더십에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는 데 대하여, "당 대표가 얼굴 마담인 줄 아느냐?"고 일갈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작 그는 지금 박희태 당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언행으로 보아 그는 박희태 대표를 '얼굴마담'만큼으로도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언론매체들은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박근혜 의원에게 대체로 우호적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박근혜 의원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식의 논평들을 하고 있다. 일찍이 언론들은 '선거의 여왕'이라느니, '미다스의 손'이라느니 등의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그를 평가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중매체의 속성이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원칙주의자라는 평가까지는 동의해 줄 수 없다.

 

언론들은 그가 한나라당 경선 패배를 승복한 점을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물론 경선 승복은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느 면에서 그의 경선 승복은 그가 이인제보다는 낫거나 영악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그는 2001년 이회창 대선 후보에 반발해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가 복귀한 전력이 있다. 강성 보수주의자인 그는 뜬금없이 방북해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이후 한나라당의 대표를 맡자 국가보안법 철폐에 극렬 반대하면서 수시로 북한을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그의 대북특사론이 제기되었을 때 북한이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지난 1월 이 대통령과 극비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국회에 나가 미디어법등의 반대 투쟁을 하고 있는 민주당을 비난하면서 농성 대열에 합류했었다. 그랬던 그가 무슨 이유인지 이명박 대통령과 다시 대립의 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여기서 잠깐 원칙주의자를 자부하는 그의 어록을 살펴보자.

 

"지금 저하고 싸우자는 거예요?"(2004년 MBC 손석희와의 전화 대담)

"오만의 극치다"(이재오 의원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라"(낙천에 반발 탈당한 친박 인사들에게)

"저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습니다."(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에서 자기 사람들이 탈락하자)

"청와대가 이제 와서 말장난을 하고 있다."(작년 청와대 회동 후 이 대통령이 당 대표를 제안했다고 하자)

 

그래도 친이계 인사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박근혜 의원에게 겉으로라도 예의를 표시한다. 일전에 같은 기차에 탄 것을 안 이상득 의원이 박근혜 의원을 찾아가 인사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대선후보였던 정동영에게 공천도 주지 않은 민주당에 비하면 한나라당은 나름대로 박근혜를 우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근혜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옆이나 앞에서 무릎을 조아리고 그와 대화하는 의원들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여러 차례나 본 적이 있다. 

 

박근혜 의원의 원칙이라는 것은 매우 자기 본위로 행사된다. 자기의 영역이 침범된다고 느낄 때 그는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정책이나 식견으로 상대를 비판한 적이 거의 없다. 그의 상대 비판은 대부분 콘텐츠가 없는 인신공격 수준에 불과하다.

 

그는 2006년 증권업협회 방문 간담회에서 "각종 규제를 풀면 5년 내 주가 3000 시대도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그는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라는 약간 엉뚱한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2008년 11월 부경대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란 나를 버려야 하는 것이며 나를 위해서 사심을 갖거나 내 이익을 도모한다면 그런 정치는 이미 존재 가치가 없다."


#박근혜#친박#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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