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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전주국제영화제 덕분에 꿈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영화제를 하는 동안 전주 영화의 거리는 딴 세계처럼 변한다. 그 '딴 세계'에서 다양한 영화들과 사람들과 문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꿈같은 경험이다.

그러나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유난히 힘들기도 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렸던 4월의 넷째주 목요일(4월 30일)과 그 후 일주일은 근로자의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연달아 있었다. 영화제측에서는 '황금연휴'라며 반색을 표했지만 달력을 보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취재하기에 가장 '최악' 스케줄이었다. 난감했다.

둘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사찰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라 부처님 오신날에는 나름대로 아이들 행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빠질 수 없다. 따라서 부처님 오신날 열렸던 <디지털 삼인삼색> 기자시사회와 기자회견을 마치고 부리나케 유치원으로 향해야 했다. 어린이날도 아이들과 함께 해야했고 , 어버이날을 맞이해 그 전날 열린 가족모임에도 빠질 수 없었다.

JIFF 공식 행사마다 '가족'모임이 걸려

그리고 마지막, 결산기자회견이 있던 어버이날, 큰 아이의 초등학교 첫 운동회가 있었다. 우천시 다음주로 연기한다고 씌여있었다. 그걸 보면서 내심 비가 오길 얼마나 바랐던가. 그러나 비는 좀처럼 내려줄 것 같았다.

딸아이 첫 운동회, 전주국제영화제 결산 기자회견, 어버이날이 한 시간에 몰렸다.
 딸아이 첫 운동회, 전주국제영화제 결산 기자회견, 어버이날이 한 시간에 몰렸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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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회'다 '운영회모임'이다 지금껏 학교일에 모두 나 몰라라 했고 딸아이도 엄마의 불참을 묵인하고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학교에 꼭 왔으면 좋겠다고 딸아이가 간곡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나도 어린시절, 엄마가 안오시는 운동회 점심시간이 너무 싫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운동장에 풀풀 날리는 모랫가루가 입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미없었다. 양손에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엄마아빠 할머니까지 오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더구나 딸아이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처음 맞는 운동회가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고 영화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결산기자회견을 빠뜨릴 수 없다. 아이를 설득해서 기자회견장에 가야될 것인가, 말아야될 것인가. 며칠동안  머리아프게 고민을 했다. 아~ 전주국제영화제는 왜 이렇게 나에게 잔인한 것일까. 왜 하필 가장 바쁜 '가정주간'에 열려서 나를 고민에 빠뜨리는 것일까.

결국, 운동회를 택했다

결국 나는 운동회로 향했다.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가니 '안왔으면 어쩔뻔했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들이 많이 왔다. 어버이날과 겹쳐서 그런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엄마들은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해왔고 당장이라도 뛸 수 있는 트레이닝복과 운동화차림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했던 역할들을 엄마들이 다 맡아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리기 결승선에 막 들어온 아이들의 팔뚝에 순위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라든지 순번대로 앉히는 일 등을 엄마들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 선생님 수가 현저히 줄어서 엄마들이 그 임무를 분담한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다.

엄마가 왔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리기할 때 아이들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엄마가 왔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리기할 때 아이들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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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엄마들이 많이 참여해서 조금 의외다 싶었다. 달리기 결승선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들.
 생각보다 엄마들이 많이 참여해서 조금 의외다 싶었다. 달리기 결승선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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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하나. 예전 운동회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자리나 공간이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것에 반해 요즘은 엄마가 아이곁에 자리잡고 앉아서 수시로 음료수도 먹여주고 옷도 털어주는 등 예전에 비해 무척 자유롭게 뒤섞이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들도 선생님 말씀을 안듣고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 보였다. 물론 저학년의 이야기이다.

내 머릿속은 '이 엄마들이 모두 전업주부?'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어봤더니 대략 50%는 전업주부이고 나머지 50%는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이거나 혹은 반차를 내고 온 직장주부라고 했다. 참가한 이유를 물어봤더니 대부분 '우리 아이 기살리기' 차원이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오지않으면 아이가 기죽을까봐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긴 나도 그렇잖은가.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운동회는 점심을 먹고 오후 3시까지 이어졌다. 여느 해는 점심이전에 모두 끝냈는데 올해는 특별히 점심이후의 스케줄을 감행했다. '어버이날'과 맞물려서, 특별히 가족과 함께하자는 취지에서란다.

물론 취지는 좋다. 그러나 엄마가 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떨까. 당장 점심문제가 걸린다. 학교측에 물어보니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측에서 따로 점심을 준비해준다고 했다.

부모 불참하는 학생들의 소외감, 생각해주세요

그러나 도시락으로 한끼의 식사는 때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마음의 빈자리까지 때울 수 없다. 부모님이 올 수 있는 아이들보다 올 수 없는 아이들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이 와서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도 좋지만 그 시간에 겪을 다른 아이들의 소외감, 상실감도 존중되어야 한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주부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한다면 평일 학부모 참여행사는 가급적 줄였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형편봐서 되는 사람만 오면 되는 거고, 못오면 못오는 거지 뭐 그렇다고 학부모 참여행사까지 줄일 필요까지 있느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에 다닐 때만 해도 엄마가 못오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엄마가 못 오면 할머니라도 참여했다.

그러나 요즘은 핵가족인데다, 대부분 엄마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 시간을 낸다는 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의 부탁을 모른척할 수도 없고 엄마입장으로서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평일 학부모 행사를 줄였으면 하는 두 번째 이유에는 워킹맘들이 겪어야하는 부담감도 한 몫한다.

결국 기자회견장에는 가지 못했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만국기가 펄럭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전주국제영화제의 대미를 장식해야했다. 결국 나도 '기살려주기' 위해 참여한 엄마였던 것일까.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사람중 <디지털 삼인삼색>의 여성감독 가와세 나오미씨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엄마이자 감독으로서 일하는 어려움에 대해 언급했다. 실제 기자회견장에는 감독의 딸도 함께 왔는데 딱 내 둘째딸 또래였다. 한창 손도 많이가고 엄마가 필요한 나이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이 공감했다. 그녀의 영화보다 그녀의 그 말이 내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직업주부들 대부분이 그러한 딜레마에 빠져있지 않을까.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그녀 말대로 '싫지는 않지만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내 계산이 맞다면 내년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일은 4월 22일(4월 넷째주 목요일)이다. 치열한 '가정주간'은 피해갈 수 있을듯 싶다.


태그:#전주국제영화제, #운동회, #워킹맘, #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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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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