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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군산 나포 문화마을 노인회에서 어버이날 점심을 준비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고 음식도 맛있게 먹고 왔는데요. 처음 뵙는 할머니들이 시동생처럼 흉허물없이 대해주고, 할아버지들도 자리를 내주며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소반에 차려놓은 삶은 돼지고기와 홍어회, 상추무침. 삶은 돼지고기와 홍어회는 돌아가신 어머니 손맛을 떠올리게 했는데요. 집에 와서도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소반에 차려놓은 삶은 돼지고기와 홍어회, 상추무침. 삶은 돼지고기와 홍어회는 돌아가신 어머니 손맛을 떠올리게 했는데요. 집에 와서도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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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내실에 들어서니까, 소반에 차려놓은 삶은 돼지고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먹음직스럽더군요. 아주머니 한 분이 양판 그릇에서 홍어회를 한 첨 집더니 먹어보라고 하기에 "하이고, 됐습니다."라고 했더니, "아이 잡숴 바유, 그거 하나 못 잡숴!"라며 억지로 입에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여럿이 점심상을 차리면서 주고받는 느릿한 사투리는 조금 시끄럽고 어수선했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겼고, 명절이나 아버지 생일 등 집에 일이 있을 때마다 오셔서 부엌일을 도와주던 '난순네엄니'와 외숙모,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성찬은 아니었지만,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겨 있어 더욱 맛있게 먹었는데요. 행사를 준비하기까지 비용과 일하시는 분들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궁금해서 홍어회를 입에 넣어준 아주머니에게 여쭤봤습니다.   

"여기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은 어디에서 자원봉사 나온 분들인가요?"
"아~뉴, 마을 노인회 회원들유."

"그럼 일하시는 아주머니 모두 65세가 넘으셨겠네요."
"아~뉴(놀라며), 거지반 다 70이 넘었는디유. 젊은 사람들은 일찍 와서 밥도 혀놓고 수박도 사다주고 펄써 갔어유."

"그래요, 놀랐는데요. 점심을 노인회에서 준비했다고 하던데, 돼지고기랑 생선이랑 회비를 걷어서 사셨나요?"
"맞어유, 노인회에서 준비혔쥬. 근디 돈은 개인이 낸 게 아니라 노인회 돈으로 헌 거에유. 회장이 20만원 내고, 수박 같은 것은 선사 들어오고, 메느리들이 사오기도 허고 그렸쥬."

대답을 마치며 저에게 "아자씨는 어디 사시는디유?"라고 묻기에, 작년에 이사 왔다고 했더니 "하이고, 한 동네 사는디도 이르케 몰라가꼬 어치게 헌댜."라며 알아보지 못한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아주머니가 무척 해맑고 순수해보였습니다.

어버이날이라서 마을 아주머니들이 자원봉사를 나온 것으로 알았는데 노인회, 그것도 거의 70이 넘은 회원들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농촌에서 흙과 더불어 살아온 할머니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인사도 드리고 점심도 먹고

마을회관으로 이용하는 경로당에는 큰 방이 두 개 있었는데, 각각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사한 지 9개월이 되도록 인사를 못 드렸는데 기회인 것 같아 할아버지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인사를 드렸더니 "어서 오요, 이짝으로 앉으슈!"라며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식사하는 문화마을 할아버지들. 찬은 몇 가지밖에 없었지만, 개운하고 깔끔했는데요. 식사 도중에도 노인회 활성화에 대한 토론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식사하는 문화마을 할아버지들. 찬은 몇 가지밖에 없었지만, 개운하고 깔끔했는데요. 식사 도중에도 노인회 활성화에 대한 토론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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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가장 연세가 높은 어른은 올해 84세인 송신호(84세) 할아버지였습니다. 이상해서 90세 넘은 노인은 안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토박이 노인들은 진즉에 고향을 떠났거나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송 할아버지도 10년 전 시내에서 이사 왔다고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조금 있으니까, 점심상이 나왔는데요. 아주머니가 가장 어른인 송 할아버지에게 큰 상으로 자리를 옮기시라고 하니까 오해를 했는지 버럭 화를 내면서 나가버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상에는 하얀 쌀밥에 잘 삶아진 돼지고기와 김장김치, 새우젓, 생선찌개, 홍어회, 상추 겉절이 등이 올라왔는데요. 송 할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걸렸지만,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삶은 돼지고기를 김장김치에 싸서 밥 한 공기를 금방 비웠습니다.

어른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못자리와 모내기 등 농사에 대해 얘기하며 소주와 맥주잔을 돌렸는데요. 잔이 저에게 돌아올 때는 처음 참석한 자리인데다 점심때라서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원래 낮에는 술을 마시지 않거든요.

'젊은 노인'으로 인정받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문화마을 할머니들. 일흔이 넘었는데도 하루에 4만원 정도를 받고 일하러 다니는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부럽더군요.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문화마을 할머니들. 일흔이 넘었는데도 하루에 4만원 정도를 받고 일하러 다니는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부럽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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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 끝나자 후식으로 과일이 차려져 나왔고, 마을회관 건립 문제와 노인회의 활발한 활동 등에 대해 의견이 오갔습니다. 농촌이면서도 외지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단합이 잘 안 된다며 대책을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더군요.  

농사철이 시작되어서 그런지 점심 먹으러 온 할아버지가 열 명도 채 안 되었는데요. 옆 마을 강정마을은 경로당이 항상 왁자지껄할 정도로 결집력이 좋고 단합이 잘 되는데, 세대수가 그곳보다 세 배나 많으면서도 참석 숫자는 오히려 적다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나포 문화마을은 강원도 횡성, 충남 공주 다음으로 조성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시내에 직장을 두고 출퇴근을 하거나 여가를 시내에서 즐기는 분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마을회관에 가면서도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들과 함께 시내로 나가는 할아버지를 봤거든요.

고희를 넘긴 할아버지들은 이제 막 60대 문턱을 밟은 저에게 이산가족 찾기에서 동생을 만난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앞으로 자주 놀러 오라고 했는데요. 따뜻하게 대해주어 고맙다기보다는 '젊은 노인'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쑥스럽고 어색했습니다. 한편, 허탈하기도 했고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문화마을, #노인회,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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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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