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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현대 세계 질서를 이끄는 워성턴, 뉴욕과 서구 문명을 이끈 파리와 런던, 로마보다는 생소한 도시이다. 하지만 이스탄불은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문화 따위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격동의 도시이다.

 

이스탄불을 한 눈에 반하여 상사병을 앓는 것처럼 이스탄불에 다녀오면 열병을 앓는다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다시 가지 않을 수 없는, 색다른 분위기와 사람을 녹여버리는 끌림, 감동과 아름다움이 배여있고, 흘러 넘치는 도시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중동에 정치 상황이 발생하거나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이슬람 학자인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이다. 정말 이스탄불이 격동의 도시, 열병을 앓게 하는 도시, 사람을 녹여버리는 끌림이 있는 도시인지 '살림지식총서 103'로 나온 <이스탄불-동서양 문명 교류>는 보여주고 있다.

 

사람 냄새, 시장터 만난 인민들 삶에는 삶에 대한 저항보다는 달관과 부드러움을 가졌고, 함께 나누며, 사랑하는 공동체 의식, 열정과 감성, 의리를 귀히 여기는 국민성을 가져 신자유주의로 빼앗겨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 기억나게 하는 도시 '이스탄불!' 성(聖)과 속(俗)이 하나되고 자연과 사람이 넉넉한 공간이 함께 하는 이스탄불이라고 말하는 지은이 글을 읽어면 이스탄불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한다.

 

이토록 찬사가 끊이지 않는 이스탄불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이스탄불 탄생 역사은 굴곡의 역사라고 한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 통치자 비자스는 오랜 기도 끝에 "눈 먼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아 탄생한 도시다.

 

"비자스는 보스포러스 해안 맞은편 언덕과 마주친 순간 무릎을 쳤다. 그곳에는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새에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절경이 숨어 있었다. 이 언덕은 바로 지상의 천국이었다. 그 누구도 눈이 멀어 미처 보지 못했던 언덕에 비자스는 그의 도시를 건설했다. 비자스의 도시 비잔티움은 이렇게 생겨났다."(7쪽)

 

질곡과 굴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풍부한 자원, 빼어난 자연,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소 비잔티움은 새로운 지배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 지역이었다.  기원전 512년 다리우스 대제, 아테네와 스파르트가 전쟁 중일 때는 스파르타, 기원전 150년에는 로마와 조공 협약을 맺고 독립, 그리고 323년 그 유명한 콘스탄틴 황제가 수도로 정한 콘스탄틴 노플이 되었다. 어떤 권력과 제국도 비잔티움(이스탄불)을 놓칠 수 없었다. 비잔티움이라는 찬란한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은 1203~1204년에 걸친 제4차 십자군 원정군의 침입으로 파괴된다. 1203년 7월 17일 도심에 진입한 십자군 원정대는 부와 풍요를 자랑하던 콘스탄티노플의 재산과 문화적 기반을 유린하였다. 기독교가 기독교 역사와 지적 기반을 기독교 스스로 철저히 파괴,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기독교 스스로 기독교 문화와 정신을 파괴하고 유린한 비극을 이 시대 기독교는 알고 있을까?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졌다. 흑해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물은 원한과 아쉬움, 사람이 가진 모든 찌꺼기와 상처를 쉼 없이 흘러 보낸다. 보스포러스에는 낭만과 절경, 환희와 한탄이 배여 있다. 오스만 제국 멸망을 재촉했던 돌마바흐체, 츠라안, 이을드즈 궁전을 보면서 아무리 강력한 제국일지라도 인민과 민중의 피를 통하여 기득권들의 배를 채우는 순간 500년을 이어온 제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보스퍼러스 해변을 따라 경쟁적으로 세워진 세개의 유럽식 궁정을 보면 500년 제국이 망해가는 과정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설명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17쪽)

 

이스탄불하면 떠오르는 건물,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건물은 누가 뭐래도 성소피아 성당이다. 하지만 성소피아 성당은 이슬람 건축물이 아니다.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인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완성된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었다. 그렇다, 성 소피아는 이렇게 종교가 공존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슬람을 기독교 정복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기독인들이 성 소피아을 통하여 배워야 한다. 저주는 저주를 낳고, 파괴는 파괴를 낳지만 공존은 살림이라는 또 다른 문명을 만들 수 있음을.

 

이스탄불은 종교를 상징하는 건물만 아니라 실크로드 종착지 그랜드 바즈르가 있고, 모스크 슐레이마니예로 가는 길목에는 철물점과 가구점, 그릇가게와 옷가게 있어 대장장이의 망치소리와 철물을 만드는 소리가 아우서오가 어루러지는 삶의 역동성이 살아 있는 도시이다.

 

이스탄불은 5천 년 역사와 문화가 땅 속 깊이 배여 있다. 인류문명의 살아 있는 현장 박물관,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모습들이 조화를 이룬다. 다른 종교가 서로 공존할 수 있으며, 문명과 문명, 문화와 문화가 서로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냄새 나는 곳이다. 이스탄불은 이런 뜻에서 상사병과 열병을 앓게 하는 도시이다.

 

덧붙이는 글 | <이스탄불 - 동서양 문명의 교류 > 이희수 지음 ㅣ 살림 펴냄 ㅣ 3,300원


이스탄불 동서양 문명의 교류

이희수 지음, 살림(2004)


태그:#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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