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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여공 첫 시집 <잘 되었다> 석여공 스님이 첫 시집 <잘 되었다>(문학의 전당)를 펴냈다
석여공 첫 시집 <잘 되었다>석여공 스님이 첫 시집 <잘 되었다>(문학의 전당)를 펴냈다 ⓒ 이종찬

 

너 찾으러 갔더니

너는 없고

돌부처만 혼자 나앉아

해바라기 하고 있었다네

그 돌에 기대

바람과 놀았다네

 

- 56쪽, '혼자놀기' 모두

 

여공 스님 성은 이씨다. 이는 글쓴이가 지난 해 이맘 때 인사동에서 여공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명함에 '이여공'이라 씌어져 있었기 때문에 알았다. 근데, 지난 4월 중순께 인사동 한 주막에서 현남희 시인과 함께 만났을 때 불쑥 내민 첫 시집 <잘 되었다>에는 '이여공 시집'이 아니라 '석여공 시집'이라 적혀 있었다.

 

왜 그럴까. 왜 이 시집에는 '이'란 성을 쓰지 않고 '석'이란 부처님 성을 썼을까. 하지만 그날 글쓴이는 스님에게 그 까닭을 묻지 않았다. 아마도 짐작컨대 스님이 와편전각처럼 가슴 깊숙히 새기고 있었던 시들을 처음으로 묶어내면서 그 어떤 새로운 각오, 거듭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공 스님은 요즈음 그리움을 탄다. 이번 시집을 읽어보면 여공 스님은 전남 강진에서 허리가 부서져라 농사일에 매달리며 겨우 살림을 꾸려온 어머니와 등에 업힌 동생, 노름판을 떠돌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린 시절을 몹시 힘겹게 보낸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

 

"잠겨서 둥둥 내가 살던 마을이며 뒤안길 / 창호 뚫린 문지방 댓돌 아래 몸 붙였다가 / 고샅길 돌아 산 너머 뜬 달 거울 삼아 돌아오곤 했"던 그때. "혹시라도 늙은 어미 안에 묻어둔 이불밥으로 남을까 / 돌아올 땐 길 잃지 않기 위해 서둘러야 했"던 그때가 못 견디게 그립다. 하지만 "이제는 전생길 더듬어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둥둥).  

 

꽃, 새, 달, 눈 등이 되어 합장하고 있는 시

 

"봄바람을 다관에 우려먹다 / 창문 열어 세상을 바라보았네 / 하늘 구름 봄빛을 희롱하는데 / 철당간에 꽃 피면 알리 / 새들 날며 마른 혀 적시는 마음"  - '자서' 모두

 

오래 묵어 이리저리 깨진 기와 조각이나 이끼 낀 기왓장에 부처님과 법어를 예리한 칼날로 새겨 넣고 있는 석여공 스님이 첫 시집 <잘 되었다>(문학의 전당)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부처님 법을 지키고 따르며 이 세상 속내까지 속속들이 들여다 본 시편들이 때로는 꽃으로, 때로는 새와 달, 눈 등이 되어 합장하고 있다.

 

모두 4부에 실린 조팝꽃에 들다, 와불에게 들었다, 안국사에서 뽕차를 먹다, 꽃의 자살, 불각사의 밤, 꽃대궁, 비오는 날의 가로등을 말함, 내 안에서 열반하는, 혼자 놀기, 그대를 잃는다, 물고기 거기서 울다, 별들 그리웁다, 언 강의 새, 달팽이를 말함, 어쩌자는 것인가, 조심하라 그녀 등 모두 51편이 그것.

 

이번 시집이 지닌 특징은 여느 시집들처럼 '주례사'(?) 해설이 아예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시인의 말'도 '자서'라는 이름 아래 시처럼 짤막하게 적혀 있다. 왜 이 시집을 내게 되었으며, 이 시집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여러 생각들을 아예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집을 읽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부처는 부처하고 놀고, 중생은 중생하고 놀고"

 

부처는 부처하고 놀고

중생은 중생하고 놀고

혼자 있어도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붉은 홍시 하나

겨울 창문틀에 박힌

피멍 하나

 

- 31쪽, '홍시' 모두 

 

이 시를 읽다 보면 전사시인 김남주(1946~1994)가 쓴 "찬 서리 /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 조선의 마음이여"(홍시)란 시가 떠오른다. 김남주 시인은 '홍시'를 바라보며 대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홍시 하나 베풀 줄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 살가운 정과 아름다운 마음씨를 표현한다.

 

여공 스님은 이에 비해 양극화를 꼬집는다. 허공 끝에 매달린 붉은 홍시 하나가 이 험한 세상살이에서 덧없이 밀려나 소외된 사람들 가슴에 새겨진 피멍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는 돈과 명예, 권력, 사랑 등을 모두 거머쥔 사람이며, 중생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를 말한다.

 

"혼자 있어도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 붉은 홍시 하나"는 부처도, 중생도 아닌 시인 자신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푸른 땡감 시절을 지나 지금은 누구나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잘 익은 '붉은 홍시', 즉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는데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 같은 홍시 하나를 바라보면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깊이와 넓이에 따라 스스로 처한 환경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여공 스님은 글쓴이가 한국문학예술대학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을 때 김남주 선생 반에서 시 공부를 했다. 까닭에 글쓴이는 행여 김남주 시 내음이 묻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석여공  이 시집에는 부처님 법을 지키고 따르며 이 세상 속내까지 속속들이 들여다 본 시편들이 때로는 꽃으로, 때로는 새와 달, 눈 등이 되어 합장하고 있다
석여공 이 시집에는 부처님 법을 지키고 따르며 이 세상 속내까지 속속들이 들여다 본 시편들이 때로는 꽃으로, 때로는 새와 달, 눈 등이 되어 합장하고 있다 ⓒ 이종찬

 

"멸치 가슴에 똥이 있는 것은 / 가슴이 타버려서 그런다"

 

멸치 가슴에 똥이 있는 것은

제 물에서 놀던 멸치 건져서

비린내 나는 세상에 말려 놓았으니

헛구역질하다

가슴이 타버려서 그런다

 

세상에나!

똥 가슴 발라먹고도

제 가슴은 안 탈까

가슴을 빼앗기고도

가슴 태우지 않는 저 간간함!

 

- 62쪽, '멸치노래' 모두

 

여공 스님 첫 시집을 들추다 보면 긴 시보다 짤막한 시들이 많다. 이 시집 제일 첫 장에 실린 '오호'라거나 '봄에게서', '동백', '구절초' '눈 온다' '새' '꽃대궁' '빈 집' '혼자 놀기' '동쪽으로 기운 나무' 등은 모두 10줄 안팎의 짧은 시들이다. 이는 스님이 시를 쓰면서도 와편전각을 하는 것처럼 수없이 갈고 닦으며 군더더기를 모두 뺐기 때문이다.

 

이 시는 사람 스스로 잣대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자연 환경과 그에 따라 점점 멸종되어가고 있는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시다. 이 시를 읽으면 어느새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 문디 콧구녕에 마늘 빼 먹는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제 이익을 위해서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시인은 마른 멸치 한 마리 속에 들어 있는 까아만 똥(내장)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가를 다시 한번 꼬집는다. 누군가 해꼬지만 하지 않는다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아등바등거리면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생명을 억지로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짓밟게 되면 "헛구역질하다 가슴이 타" 깡그리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용산 참사가 일어난 것도 오랫동안 터를 닦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뉴타운'이라는 물질자본주의가 하루아침에 철거민으로 내몰다가 급기야 강제로 철거시키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가진 자들은 "똥 가슴 발라먹고도 / 제 가슴은 안 탈"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 삶'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꽃살은 팔만대장경이자 곧 여래 그 자체

 

내가 아는 목수 신 씨가 꽃살문 새길 때는

끌 자루 거꾸로 쥐고 햇살 당겨

지 가슴팍에 꽃살 새긴다

꽃살문은 여래의 눈이 닿는 곳이라고

보살이란 나를 해치고 너를 살리는 것이라고

허공중에 휘두르는 빈 칼질이라도

세상 아프게 하면 안 된다고

햇살 당겨 지 가슴팍에 꽃살 새긴다

 

- 85쪽, '금산사 꽃살문' 몇 토막

 

시인은 금산사에서 목수 신씨가 꽃살문을 새기는 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목수 신씨가 끌 자루를 거꾸로 쥐고 꽃살문을 새기는 모습이 문득 "세상 아프게 하면 안 된다고 / 햇살 당겨 지 가슴팍에 꽃살"을 새기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시인 눈에 비치는 목수 신씨가 새기는 꽃살은 팔만대장경이자 여래 그 자체이다.

 

꽃살을 백일기도하듯 열심히 새기고 있는 목수 신씨는 부처님 법을 지키고 따르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스님이기도 한 시인 스스로 목수 신씨와 꽃살과 하나가 되어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금산사 꽃살문'과 같은 이러한 꽃을 다룬 시는 이 시집 곳곳에 예쁘게 피어나 있다.

 

이 시집에는 꽃을 다룬 시가 유난히 많다. "그대 안에 / 꽃등으로 밝고 싶은데"(오호)라거나 "차꽃 필 때 동백꽃 필 때 매화꽃 필 때"(꽃 핀다 꽃 진다), "조팝꽃 하얀 봄조차 눈부셔서"(조팝꽃이 들다), "구절초 꽃몸 허기지게 쓰러지는 날이면"(구절초), "꽃 속에 선 솟대라니"(꽃의 자살), "내 안에, 꽃대궁으로 남을 바람들"(꽃대궁) 등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있어서 꽃이란 무엇일까. 시인이 산문에 들기에 앞서 가슴 깊이 새긴 그 어떤 아리따운 여인이었을까. 아니다. 스님이기도 한 시인에게 있어서 꽃은 도를 향해 가는 길이자 법어를 한 올 한 올 궨 사리이다. 시인에게 꽃은 만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연꽃이자 만인이 절대 자유를 누리는 미륵 세상이다.

 

석여공 스님 시인 석여공 스님은 1962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2006년 계간 <불교문예>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석여공 스님시인 석여공 스님은 1962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2006년 계간 <불교문예>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이종찬

 

승과 속이 어찌 다를 수 있으랴

 

석여공 스님이 펴낸 첫 시집 <잘 되었다>에는 절간에서 살아가는 스님과 속세에서 살아가는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진리'를 백팔 염주알처럼 꼼꼼하게 굴리고 있다. 하긴, 승과 속이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승이 없는 속이 어찌 있을 수 있으며, 속이 없는 승 또한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시인 나태주는 "여러 편 읽을 것도 없다. 한두 편만 읽으면 그가 얼마나 순한 가슴을 지닌 산사람인 줄 알 것이다"라며 "서너 편만 더 읽으면 그가 얼마나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 마음인 줄 알 것이다. 이왕이면 끝까지 읽어라. 그러면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시를 쓰는 이 땅의 한 사람 좋은 시인임을 눈에 불을 켠 듯 알 것"이라고 평했다.

 

시인 석여공 스님은 1962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2006년 계간 <불교문예>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깨진 기왓장 한 장에 부처님 모습과 법어를 새기는 와편전각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스님은 2005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경인미술관과 불각사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다섯 번 열었다. 녹두문학상 받음.

 

한편, 오는 14일(목) 저녁 6시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남도식 음식주점 <시인>에서 석여공 첫 시집 <잘 되었다>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이와 함께 오는 29일(금) 오후 7시 동소문동 4가 160번지 <춤새무용단> 스튜디오에서 무용가 송민숙이 이 시집을 한 판 춤으로도 풀어낸다. 한 권의 시집이 춤으로 승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잘 되었다

석여공 지음, 문학의전당(2009)


#석여공#잘되었다#불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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