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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생활자>라는 여행기를 소개하기 전에 잠시 여행에 대한 분류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아까운 지면을 통해 재미도 없고 설익는 분류를 시도하는 이유는, 넓게는 앞으로 독자들이 여행을 계획하거나 여행기를 쓸 때 분명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이고, 우선은 이제 소개하고자 하는 책 <여행생활자>가 다소 난이도 높은 여행기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 서평란에 몇몇 독자들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는 감상평들을 올려놓았기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여행을 부르는 말들

여행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들을 떠올려 보자. 일단 가까운 곳을 다녀온다는 의미로 '나들이(outing), 소풍(excursion)'이 있다. '관광(tour, sightseeing)'은 구경과 휴식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에 비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여행(trip, travel)'이라는 말은 놀고먹는 행위는 물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체험을 강조한 말이다. '여정(journey)'은 여행과 혼용하여 쓰되 여행의 과정을 강조하는 말이다. 'voyage'는 일차적으로는 배를 타고 떠나는 항해를 의미하고, 비유적으로는 꽤 멀고 험난한 여정을 뜻한다. 오지를 찾아가거나 모험적인 힘든 여행을 뜻하는 말로 '탐험(exploration, expedition)'도 있다.

또 이와는 약간 다른 차원의 단어들도 있다.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삶을 뜻하는 '유랑(자의에 의한 nomad, 타의에 의한 exile)'과 종교, 예술, 민족 등의 정신적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순례(pilgrim)', 그리고 특정한 장소나 유적에 얽매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며 그저 이런저런 생각으로 일을 삼는 '방랑(vegavonding)'이 그것이다.

모든 여행은 나들이·관광·여행·여정이 뒤섞여 있고, 경우에 따라 한 번의 여정 속에 탐험적 요소나 순례적 요소, 유랑이나 방랑의 요소를 경험하기도 한다. 여행은 꼭 어느 분류에 충실할 필요 없이 여행자가 즐거우면 그만일 것이다. 어차피 생활을 잠시 떠나는 것이 여행이므로 정답은 없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여행 중에서 여행자 각자에게 가장 즐겁고 기억에 남는 체험이 있을 것이니,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음 여행을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여행 스타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여행생활자>는 일종의 '방랑자(vegavond)'이다. 하릴없이 여행을 하되 여정과 체험에서 받은 감명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구도자'이기도 하다. 풍족하게 놀고먹지는 않으니 '한량'까지는 아니다. 쉽게 말해 저 옛날에 방랑시인 김병연(김삿갓)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여행생활자 유성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김삿갓만큼 유유자적하고, 또 김삿갓 못지않은 사색과 문장이 있다.

'히말라야'에 대하여

<여행생활자>의 무대는 세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히말라야(Himalaya·눈이 사는 곳)'이다. 히말라야는 거대한 산맥들이 그러하듯 여러 나라의 경계가 된다. 중국·인도·티베트가 머리를 맞대고 있고, 그 가파른 비탈에는 네팔과 파키스탄이 둥지를 틀고 있다. 북쪽 끝에는 아프카니스탄이, 남쪽 끝에는 부탄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은 티베트 불교의 본산인 동시에 힌두교의 성산이고 서사면으로는 이슬람교도들도 살고 있다. 그 지명들 또한 티베트어와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우루두어, 네팔어, 투르크어 등이 혼재되어 있어 들을 때마다 어느 나라 말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생경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히말라야는 어느 한 나라나 종교에 소유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소유가 되기에는 너무나 험준한 곳이기도 하고, 한 나라가 끌어안기에는 그 신성한 기운이 너무도 컸던 때문일 것이다.

히말라야는 자연환경이 척박한 나라 안에서도 가장 모진 자연이 있는 곳이고, 소위 경제적 약소국, 혹은 정치적 후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나라 안에서도 재차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결국 히말라야 언저리의 사람들은 국적과 무관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히말라야의 신성함을 나누어 가지며 살게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가 그곳을 그저 히말라야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 세상의 끝으로 여행생활자가 떠났다. 여행의 여정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중국 윈난성에서 티베트를 거쳐 카일라스산(수미산, 강디세 혹은 강린포체)을 돌아 네팔을 지나고, 인도의 라다크 지역을 거쳐 스리랑카로 이어진다. 파키스탄으로 가기 위해 다시 인도로 왔다가, 고 김선일씨 피랍으로 파키스탄 국경이 닫히자 국경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인도와 스리랑카, 네팔을 떠돌기를 3개월, 결국 비자를 받아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려 '훈자'로 간다. 그리고 다시 카라코람 산맥의 쿤제라브 패스(일명 '피의 고개')를 넘어 파미르 고원에 다다른다.

남들은 대여섯 번에 끊어서 갈 길을 한 번에 다닌데다, 도시의 명칭들도 생경한 관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여정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또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라는 부제를 달았을 만큼 여행생활자의 처절한 방랑과 진지한 사색들로 빼곡하다. 아마도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보았던 저자의 모습을 보고 달작지근한 여행기를 기대한 일부 독자들이 당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수를 처음 만났을 때 느끼는 약간의 서먹함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여행 고수, 방랑 고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낯선 여행지에 대한 사전 지식은 그 작은 노력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니, 이 책은 히말라야 12좌로 치자면 '히든피크(Hidden Peak)'라고도 불렸던 '가셔브롬(빛나는 산)'에 해당하는 여행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행과 생활 사이

"지금 생각하면 여행자란 따로 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우여곡절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여행이란 것이 우리의 삶을 닮은 그런 것이라면, 우리 삶의 우여곡절이란 것도 나서서 체험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는 그런 헐거운 비유식을 풀며 나는 다시 인도-파키스탄 국경에 접어들었다. -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여행 고수의 기운이 풍긴다. 그가 '여행생활자라는 이름에 부림을 당해 온' 이유에서 일까, 여행에 대한 그의 단상들을 만날 때면 꼼짝없이 발목 잡힌 사람마냥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된다. 여행에 대한 단상을 하나만 더 인용해 본다.

"여행은 모순이다. 자유 속에서 생활을 꿈꾸는 아둔한 우여곡절이다. 여행의 길은 그저 멀어서 먼 길이 아니고 길을 알면서도 스스로 나아가서 길을 잃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먼 길이다. 그 길은 절대의 빛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동서남북이 없는 눈부신 환한 빛 속에서 어둠을 조적해서 쌓아가는 제 속의 길이다... 나는 목적도 없이 저 기차에 올라 탈것이다. - 스리랑카의 기차 안에서"

그의 길도 이와 같다. 스스로 나아가서 길을 잃고, 멀리 돌아가며 사람들을 만난다.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면 가난에 대해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들 한다. 사람들이 가난해서 아름답다는 말인가, 가난해야 아름답다는 말인가. 아님 그 말은 단지, 가난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마음이 먼저 가난 앞에 숙연해진다 해도 여전히 가난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사실 가난하면 염치를 잃고 굴욕과 복종 속에 살기 쉽다. 그래도 그들의 단출한 가난 곁에 있으면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꿈은 소박하고, 늘 현실 곁에 있으며, 결코 막연하지 않다는 것. 생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꿈은 군더더기가 덜하다. - 스리랑카 하칼라에서"

그는 한낱 여행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논평하기를 두려워한다. 네팔 어느 구석의 롯지에서는 반군 게릴라 소년을 보며 "한낱 여행자일 뿐인 내가 그의 곁에서 이 어둠을 함께 바라보기가 부끄럽더라"고 고백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이 빚어내는 가슴 먹먹한 순간들을 떨치지 못해 여행을 생활로 삼는다. 생활은 아무리 쉬워도 견디기 어렵지만, 여행은 아무리 힘들어도 왜 견뎌야 하는지 몰라서 그렇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한 방랑자의 삶이야 어차피 방랑일 뿐이겠지만, 그 소중한 순간들을 이렇게 나눌 수 있어서 여행기중독자는 즐거울 따름이다.

방랑 시인의 귀환

본 서평은 작가의 사전 동의 없이 순전히 상호간의 호의만을 전제로 게재하는 글이기에 인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행기중독자의 이러한 노력은 여행생활자 앞에서 무력해진다. 한 걸음 한 걸음 고되게 걸어간 여정도, 그 여정에서 건져 올린 여행자의 깨달음도 읽는 내내 너무 자주 발목을 잡는다.

다만 이왕 추천하려 맘먹고 쓰는 글이니, 조금 난이도 높은 여행기인 <여행생활자>가 그 감동 또한 고난이도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하여 이 짧은 인용들이 방랑 시인의 귀환을 알리기에 충분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새들은 가끔씩 허공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람들도 가끔씩 허공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을 것이다. 이생에서 저버릴 수 없는 짐이 나와 그대의 어깨 위에 있다. 그 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일생을 다하여도 벗을 수 없다는 막막함, 그게 나의 유일한 위로가 되는 거다. - 티베트 카일라시에서"

방랑은 어쩌면 생활의 질서가 부당하다고 여겨 이를 받아들지 못하는 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야말로 이 시간, 치열하게 투쟁하지도 못하고, 철저하게 복종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예 방랑길에도 오르지 못하는 얼치기 유목민이 아니던가?

"페샤와르에 머무는 동안 현지 가이드가 내 숙소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어렵게 팀이 꾸려졌으니 지금 투어 신청을 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가장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위험을 돈으로 사서 레저로 즐기는 일은 생각할수록 경박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준 안내책자에 박힌, 여행자들의 거만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웃음이 싫었다. 입구에 있는 밀수시장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넘어온 카메라들이 많다. 소문에 의하면 그곳에서 죽은 사진기자들 것이란다. -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방랑자라고해서 쉽고 한가하게 타협하며 여행을 할 것이라고 속단하지는 말자. <여행생활자>는 여행길 내내 생활을 등진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치열한 생활에서 비껴난 방랑자에게도 삶은 무겁다. 하지만 방랑자는 투쟁을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무비판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투쟁하지 않으니 타협할 일이 없는 것이라고 야박하게 생각지도 말자. 언젠가 우리의 두 눈이 거듭된 타협으로 흐릿해질 즈음, 방랑자는 언제라도 우리가 인간과 세상을 다시금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창이 되어줄 것이다. 낮은 음성으로 '카라코람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지...' 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나는 되도록 이를 악물어보았지만 이 부딪치는 소리를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는 내 옆 자리에 앉더니, 그의 모포를 반쯤 내어 나를 덮어 주었다. 그도 얇은 옷을 한 겹 입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렇게 내 곁에서 자기의 체온을 나눠주었다. 당신은 왜 나에게 잘해줍니까. 우리는 인사 한 번 나눈 적이 없는데... - 파키스탄 카라코람 하이웨이 버스 안에서"

서평이 사뭇 무겁게 흘러버렸지만 이 책은 그렇게 무겁기만 한 책은 아니다. 인도의 어느 시골, 사과밭 근처를 친구와 산책하다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사과차를 마시며 담배 두개피를 나눠피우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던 날도 있고, 히말라야 한 가운데에 있는 온천마을인, 그 이름도 '뜨거운 물'인 '타토파니'도 있다. 또 떠날 생각을 하면 쓸쓸한 마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살구꽃이 만발했던 파키스탄의 '훈자'도 있다.

만일 독자들이 이 글을 통해 방랑 시인의 귀환을 실감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순전히 여행기중독자의 부족한 자질 때문일 것이다. 아무쪼록 방랑자는 더 깊고 험한 길을 떠나 잘 돌아와 주기를, 독자들은 잠시 짬을 내어 <여행생활자>를 일독해 주기를 조르고 싶은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여행기중독자입니다.



여행생활자 -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유성용 지음, 사흘(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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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행생활자, #유성용, #갤리온,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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