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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포서비스 최윤정(왼쪽)씨와 한일형씨
한국인포서비스최윤정(왼쪽)씨와 한일형씨 ⓒ 김준희

흔히 '텔레마케터'라 부르는 전화상담원들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을 상대한다. 직업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전화상담원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서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고 판매하는 상담원과 고객으로부터 걸려온 문의전화에 응대하는 상담원들이다.

어느 쪽이건 하루에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접할 것이다. 그중엔 친절하고 사려 깊은 고객도 있을 테고, 시쳇말로 '진상'인 고객도 있을 것이다. 전화상담원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호기심도 그 부분에 있다. 진상 고객은 어떻게 상대할까. 그런 고객들한테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할까.

그런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찾아간 곳은 한국인포서비스 서울본부. '한국인포'는 낯설지만, '114 서비스'는 익숙한 이름이다. 그 114 서비스를 하는 곳이 바로 한국인포다. 올해로 서비스를 시작한 지 70년이 되었다고 한다.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서울본부에서, 10년이 넘게 근무해온 3명의 직원을 만났다. 한일형(36), 이지록(33), 최윤정(34)씨가 그들이다. 오랫동안 상담원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정확하고 시원한 음성으로 말을 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한바탕의 수다를 나눈 듯한 자리였다.

"2001년 7월 2일에 KT에서 분사했어요. 서울, 경기, 강원은 저희 한국인포서비스(KOIS)에서 담당하고요. 충청 이남은 대전에 본사가 있는 한국인포데이타(KOID)에서 담당합니다. 두 개의 독립된 법인에서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거예요."

1분에 3통, 하루 1200통의 전화를 받는 사람들

상담원들이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390분 가량.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을 제외한 순수 근무시간이 그렇다. 그동안 최대한 많은 전화 상담을 처리해야 한다. 보통 한 명의 상담원이 1080통에서 1200통 가량의 전화를 받는다. 시간으로 나눠서 계산해 보면 1분에 3통 가량의 전화를 처리하는 것이다. 칭찬하는 고객도 있고, 꾸지람하는 고객도 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다양한 고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한다.

"밖에서 보는 114의 이미지는 참 편할 것 같죠. 전화 받고 필요한 번호 안내해주면 되니까. 그런데 실제로는 더 복잡해요. 전화 받고 검색 시작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검색어를 복창하고 안내하기까지가 10초에서 길게는 15초 정도예요. 그 시간 안에 완벽하게 정리가 돼서 안내가 나가야 해요. 그런데 신입사원들은 검색하고 복창하고 안내하고 그런 것들을 동시에 하기가 좀 어렵죠.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고요."

신입사원 교육은 보통 4주 동안 이뤄진다. 아무래도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을 할 때도 신입사원에게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사람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일 자체의 능숙함은 훈련으로 이루어지지만, 인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성교육과 서비스 마인드에 대한 교육이 끝나면, 그 이후에는 발성과 발음을 훈련하고 상황에 따른 표준멘트 19가지를 암기한다. 외래어 검색을 포함한 검색 테스트를 거친 뒤 마지막으로 현장실습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검색에 능통해진다 하더라도, 다양한 고객을 상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114는 기본적으로 전화번호를 안내해주는 서비스지만, 전화번호가 아닌 엉뚱한 것을 질문하는 고객들도 있기 때문이다.

"날씨 질문하는 분들도 많죠. '지금 밖에 비 와요?' 이런 질문도 많고요. 예전에 한 번은 '지금 낮이에요? 밤이에요?' 이런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3일 동안 밖에 안 나가고 고스톱을 치셨대요.(웃음) 축구경기를 할 때는 스코어를 묻는 전화도 오고요. 그렇기 때문에 폭 넓은 지식이 필요해요. 그날 그날의 이슈가 뭔지 알아둬야 해요. 아침에 출근해서도 서로 그날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공지사항으로도 알아두어야 할 사항을 알려주고요. 그래서 '우리는 무식하면 안 된다'라고 말해요.(웃음)"

"입사한 첫날 '말하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생각했죠. 선배들 보면 수시로 음식을 드세요. '저렇게 먹다가 살찌겠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제가 그렇게 되더라고요. 말을 하다보면 계속 배가 고프니까. 집에서 음식을 많이 가져와요. 부침개, 떡…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죠.(웃음) 그리고 계속 앉아서 일하니까 운동량이 많지 않아서 몸무게도 늘어나고요."

"'야 이 XX야'해도 '예, 고객님'하고 응대해야죠"

한국인포서비스 종로구 숭인동의 서울 본부
한국인포서비스종로구 숭인동의 서울 본부 ⓒ 김준희

말을 많이 하는 것 자체로도 힘들지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고객을 상대하는 것은 더욱 힘이 든다고. 그런 스트레스도 많이 먹는 것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래서 이들은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자존심 다 버려라"라고 교육을 한다. "고객이 욕을 하더라도 너한테 욕하는 게 아니라 114에 욕하는 거다"라고 가르친다.

"고객이 전화해서 '야 이 XX야!'라고 욕을 하면 일단은 "예, 고객님"하고 응대해야죠. 어떤 점에 대해서 불만이신지를 우선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 있으면 사과하고요. 보통 비가 오는 날이면 그런 전화가 많아지기도 해요. 전화 받자마자 무조건 욕부터 하는 분들도 있고요.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서 더욱 그런가 봐요. 아무 용건 없이 그렇게 욕만 하는 고객들한테는 '죄송합니다. 용무가 없으시면 이만 전화 마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을 수도 있어요."

매뉴얼에는 그렇게 전화를 마칠 수 있도록 돼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단다. 자기는 전화를 끊으면 그만이지만, 그런 고객은 다시 전화를 걸어서 다른 상담원에게 욕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꾹 참고 그런 고객과의 대화(?)를 마치는 것이 좋다.

"신입사원 한 명은 막 울고 있어서 '너 왜 그래?'라고 물어보면, 울먹이면서 '나보고 미친*이래' 그러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런 말 들으면 충격 받죠. 내가 부모님한테도 안 들어본 욕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듣고 있으니까요. 아무 이유 없이. 그런데 경력이 쌓이다 보면 그런 욕을 들어도 기분 나쁜 감정을 빨리 없애게 되죠. 그래서 자기 자리에 그런 감정을 없앨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을 두라고 말해요. 기분 나쁜 감정을 빨리 없애야 다음 전화도 밝게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기는 스트레스는 동료들끼리 대화로 해소한다. 일반적으로 45분 근무하고 15분 휴식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은 그런 스트레스를 없애기 좋은 시간이다.

"휴식시간에 모이면 '나 오늘 이런 욕 들었다' 이런 말을 많이 해요. 그러면 동료는 '그것도 욕이냐?'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내공이 쌓이죠. 예전에는 '고객님 욕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멘트가 정형화되다보니까 그런 말을 못해요. 신입사원이 욕먹고 울고 있으면 '너도 시간 지나봐라'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런데 정말 심한 고객들도 있어요. 그런 고객이랑 전화하다보면 '고객님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심한 고객들도 있죠."

'종로3가파출소'가 '종삼파'? 자신만의 언어 문의는 그만!

예전에는 114 상담원이 강도를 잡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집주인의 두 손을 묶었는데, 그 집주인은 그 상태에서 114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상담원이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심각한 대화를 재빨리 파악하고 112에 신고를 한 것이다. 그 외에도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이 전화를 하는 경우,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114에 전화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국민의 비서'라고 할 만큼 다양한 전화를 받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전화를 한 적이 있었어요. '언니 언니,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이 노래 어떻게 불러요?'라고 묻는 거예요.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았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요. 제가 직접 전화로 노래를 불러서 가르쳐줬어요. 그러니까 '고맙습니다'하고는 끊는 거예요. 그럴 때는 114 서비스가 아무거나 물어봐도 될 만큼 국민들에게 편한 곳이구나, 생각하죠. 주변 동료는 제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그렇게 고객의 의문점을 없애주면 그게 고객만족이잖아요."

고객의 정확하지 못한 발음 또는 전화선을 타고 오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본의 아니게 잘못된 안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너 그것밖에 못하니?"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발전이 안 되는 거야"라는 식의 항의가 들어온다.

하지만 고객들이 상호명을 잘못 알고 있거나, 자신만 알고 있는 약자로 물어볼 때도 있다고 한다. 한 예로 '아가미 호텔'을 문의하는 고객이 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아가미'는 나오지 않고 '아미가 호텔'은 나오더라는 것. 한 번은 '종삼파' 번호를 물어보기에 검색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자, 바로 욕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대부분 "초등학교는 졸업하고 거기 앉아 있니?"라는 식의 욕이다. 알고 보니, 그 고객은 '종로 3가 파출소'를 '종삼파'라고 자신만의 언어로 줄여 114에 문의를 한 것.

"그래서 저희는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라고 말해요. 경력이 쌓이면 그런 약자나 부정확한 발음도 파악하게 되요. 저희끼리는 '귀가 열린다'라고 표현하죠. 화를 내는 고객은 차라리 나은데, 은근히 속을 긁어놓는 고객도 있어요. 한 번은 없어진 건물을 문의하기에, 등록되어 지 않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그 고객이 전화를 끊으면서 '그러니까 네가 114 밖에 못하는 거야' 그러더라고요. 그때 기분이 많이 상했어요. 저는 제 나름대로 이 직업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114 밖에'라고 말하니까요."

술과 담배 NO! 목 관리 위해 노래방도 자제

한국인포서비스 서울본부 앞의 홍보간판
한국인포서비스서울본부 앞의 홍보간판 ⓒ 김준희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전화상담원도 장단점이 있다. 좋은 점도 여러 가지다. 직업의 특성상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다. '칼퇴근'을 하는 경우가 많고, 몸이 불편한 사람도 충분히 택할 수 있는 직업이다. 또 외모가 드러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외모 때문에 채용 시에 차별을 겪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하지만 가장 좋을 때는 역시 고객을 만족시켰을 때 아닐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니까 고객과의 대화가 기분 좋게 끝나면 상담원도 그만큼 기쁠 것이다.

"신입사원 교육할 때 들려주는 콜이 있거든요. 몸이 불편하신 분이 전화를 했는데, 그런 고객은 발음도 부정확하고 잘 받아쓰지를 못해요. 그래서 안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몇 배 더 필요해요. 저희는 시간을 다투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안내시간이 길어지면 초조하죠. 그런데 그 콜의 상담원은 2~3분을 소요해가면서, 그 고객이 정확하게 받아쓰기까지 몇 차례 반복해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어요. 그 고객이 마지막에 '언니 오늘 행복하세요. 114에 근무하시는 분들 모두 행복하시라고 전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는데, 그걸 처음 들었을 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말을 하니, 성대보호를 위해서 근무환경에도 신경을 쓰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항상 주의한다. 커피나 녹차보다는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신다. 목에 좋다는 게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고 술과 담배도 삼간다.

목 관리를 위해서 노래방도 자제한다고 한다. 노래방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다. 하루에도 1000통이 넘는 전화를 받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한 듯하다. 114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하루에도 많은 고객들을 전화로 만날 수 있는 점이 장단점인 것 같아요. 저희가 잘하면 칭찬해주시고, 못한 부분이 있으면 꾸지람 해주시고요. 무엇보다도 114 서비스 많이 이용해주시면 좋겠어요. 고객만족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인포서비스#114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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