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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려는 인파로 넘쳐나는 동학사의 표정.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려는 인파로 넘쳐나는 동학사의 표정. ⓒ 안병기

어제(2일)는 불기 2553년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오랜만에 전남 순천 선암사에나 한 번 다녀올까 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요즘의 나는 정혜쌍수 중이다. 정혜쌍수(定慧雙修)란 고려시대에 국사였던 보조지눌이 주장했던 불교신앙의 개념이다. 선정(禪定)의 상태인 '정(定)'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혜인 '혜(慧)'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 말을 내 편리한 대로 해석한다. 머무름(定)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다고. 왜 우리가 잘 아는 영어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내 경험에 의하면 떠돌기만 하면 생각은 절대 무르익거나 퇴적되지 않는다. 떠돎은 생각 혹은 지혜를 얻으려는 방편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생각이나 지혜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면 그냥 정서적 자양분이라고 해도 좋다.  

 

나 혼자 경축하지 않는다고 해서 빛바랠 석탄일이 아니지마는 그렇다고 방구석에 들어 앉아 보낼 수야 없는 일. 가까운 계룡산이라도 다녀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동학사를 찾았다.

 

 한 보살이 아기부처님께 관욕시키고 있다.
한 보살이 아기부처님께 관욕시키고 있다. ⓒ 안병기
 
 범종루의 타종 광경.
범종루의 타종 광경. ⓒ 안병기

 인파의 번거로움을 피해 개를 데리고 숲속 산책에 나선 스님.
인파의 번거로움을 피해 개를 데리고 숲속 산책에 나선 스님. ⓒ 안병기

일찌감치 동학사에 도착해서 '출입금지' 조치가 풀린 비구니 스님들의 공간 이곳저곳을 한 마리 수탉처럼 헤집고 돌아다녔다. 조사전 옆 보리수나무는 작년보다 살기가 괜찮은지, 화경헌 앞 붉은 인동은 벌써 꽃이 피었는지 등등.

 

보리수나무는 작년이나 올해나 자신의 살림살이가 하등 나아진 게 없노라고 푸념을 늘어놓는 듯했다. 작년 초파일에 활짝 꽃을 피웠던 붉은 인동은 덩굴조차 아직 몇 cm밖에 자라지 않았다. 얼핏 "살기 어려운데 무슨 꽃씩이나 피우면서 사느냐?"라는 지청구를 들은 것도 같다. 그러니 더 말을 붙일 생각을 못하고 하릴없이 돌아설 수밖에. 

 

사시(巳時)가 얼추 되어가자, 범종루에서 타종하는 종소리가 동학사계곡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서 나도 얼른 자리를 옮겼다. 범종루 가까이에 서서  28번 계속되는 타종의 순간을 지켜보았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감정일 테지만, 타종하는 스님의 표정이 몹시 힘들어 보였다.

 

아무리 사바세계의 중생을 제도하려는 의도로 친다지만 비구니 스님 혼자서 28번이나 친다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아쉬운 대로 2교대로라도 쳤어야 하지 않을까. 속담에 이르기를 "백지장도 낫다"라고 했고 그 속담이란 게 바로 중생들의 깨달음이 담긴 경전이 아니던가. 

 

곧 법요식이 시작되었다. 난 중학교 1학년 때 석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싫어서 돌을 던지고 그 길로 학교를 그만둔 전력이 있는 몸이다. 그만큼 '式(식)'을 싫어한다. 법요식을 뒤로 한 채 또다시 동학사 경내를 어슬렁어슬렁 소요하기 시작했다.

 

 실상선원 입구에서 바라본 계룡산 쌀개봉.
실상선원 입구에서 바라본 계룡산 쌀개봉. ⓒ 안병기

 실상선원 툇마루에 널린 도라지.
실상선원 툇마루에 널린 도라지. ⓒ 안병기

사람이 말을 하되 콧구멍이 없다 하네

 

저 위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실상선원(實相禪院)을 향해 올라간다. 실상선원 자리는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라 일컫는 경허 스님(1849년~1912)이 깨침을 얻었다는 토굴이 있었던 장소이다.

 

1879년 11월15일. 당시 동학사 강주로 있던 경허 스님은 절 아래 마을 학봉리에 사는 이처사라는 분이 했다는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라는 한마디를 우연히 전해 듣고선 홀연히 깨침을 얻었다. 그리고 오도송을 읊었다. 그 오도송의 마지막 부분을 옮기자면 이렇다. 

 

忽聞人語無鼻孔 홀연히 들으니 사람이 말을 하되 콧구멍이 없다 하네

頓覺三千是吾家 문득 깨치고 보니 삼천대천 세계가 다 내 집일세.

六月燕巖山下路 한여름 연암산 아래 길에서

野人無事太平歌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네 

 

나는 실상선원이 있는 자리가 좋다. 앞마당에 서면 쌀개봉과 통천문이 빤히 바라다 보인다. 그곳으로 오르는 길도 좋다.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편백나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광주 제4수원지 위에 심어진 편백나무를 처음 보았다. 나무라곤 소나무·버드나무 밖엔 모르던 숭악한 촌놈에게 편백나무는 얼마나 신기했던가.  

 

스님들이 비워버린 실상선원은 조용하다. '절 속 같다'라는 표현이 아주 절묘하게 어울리는 곳이다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가서 벽에 그려진 벽화를 들여다본다. 나반존자상이다. 나반존자는 홀로 수행하여 깨달은 성인이다. 고적한 산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나반존자의 모습이 내 마음에까지 평화를 전염시킨다.

 

툇마루에는 어디서 캐왔는지 도라지가 널려 있다. 설마 저 벽화 속의 나반존자께서 캐오신 것은 아니겠지?

 

 점심 공양을 준비하느라 바쁜 보살들. (조사전)
점심 공양을 준비하느라 바쁜 보살들. (조사전) ⓒ 안병기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편안 자세로 공양하고 있는 풍경.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편안 자세로 공양하고 있는 풍경. ⓒ 안병기

 선원에서 내려와 밥줄에 선다. 길고 긴 밥줄이다. 밥을 타들고 보니 작년과 달리 플라스틱 그릇에 일회용 수저다. 생태주의적인 생각보다는 실용성에만 우선을 둔 것이다. 설거지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우리가 불교에 기대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불교야말로 자연환경과 생태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도 얼마쯤 있다는 걸 빼놓을 수 없다. 아까 저 아래 암자를 지나쳐 오다가 "설거지는 스스로 합니다"라고 현수막을 써 붙인 것을 봤다. 정 일손이 달리면 그 편이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여기저기 편한 곳에 주저앉아 공양을 든다. 문득 이곳의 풍경을 그대로 저잣거리로 옮겨놨으면 싶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높낮이가 없고, 노동의 등가성이 실현되고, 밥의 숭고함이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서방정토가 피안이 아니라 바로 그런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피안이 아닐는지. 

 

오후 2시. 일찌감치 동학사를 나선다. 이렇게 산도 오르지 않는 채 산문을 나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비가 온다는 소식도 있긴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엔 체력이 고갈돼 버려 안배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곡 건너편에 있는 부도밭.
계곡 건너편에 있는 부도밭. ⓒ 안병기

 한 아이가 돌탑에 돌을 얹고 있다.
한 아이가 돌탑에 돌을 얹고 있다. ⓒ 안병기

우리 나름의 부처를 기다리며

 

걸어나가다가 계곡 건너편 부도밭으로 간다. 이곳엔 옛날의 부도도 있지만, 경허 스님·경봉 스님(1892~1982) 같은 비교적 최근에 입적하신 스님들의 부도도 있다. 두 분 다 동학사 강주를 역임하신 분들이다. 언제 닦아냈는지 글씨가 써진 부도의 제액 부분이 아주 선명하다. 덕분에 부도의 주인공을 확실히 알 수 있어서 좋다.

 

동학사에 오는 분들 중에 이곳에 들렀다가 가는 사람은 썩 드문 것 같다. 올 때마다 이곳에 들르지만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부딪친 기억이 없다. 누구나 깨치기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 게 불교라는 종교가 지닌 구원의 메시지다. 석가모니만이 유일한 부처가 아니다. 깨치기만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의지해 지금 이 시각에도 생사를 걸고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얼마나 많은가.

 

뜬금없이 '이젠 인도 사람 석가모니의 생일만을 기릴 게 아니라 우리나라 위대한 스님 가운데 한 분을 선정해서 그분이 오신 날을 기리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거 내가 너무 국수주의적인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2,500년 전에 입적하신 석가모니께서  다시 살아 돌아오셔서 이런 내 생각을 듣게 된다면 어떻게 여기실지. 

 

계곡을 건너와 허위허위 길을 걷다가 느티나무 아래 사람들이 쌓아놓은 작은 돌탑들을 본다. 생각건대, 욕심이 큰 사람은 절대 이런 곳에다 탑을 쌓지 않을 것이다. 소박한 원(願)을 가진 민중의 마음이 낳은 탑이다. 그래서 내겐 이 돌탑들이 동학사 경내 삼층석탑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 아이가 다가와서 돌탑 위에 돌을 얹고 있다. 나는 저 아이의 소원이 뭔지 모른다. 그러나 저 아이의 소망이 개인적인 것보다는 여러사람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야, 부디 함께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위해 기도하렴.


#계룡산 #동학사 #초파일 #경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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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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