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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옥천인재숙 전경.
 순창 옥천인재숙 전경.
ⓒ 순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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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한나라 말의 유학자 유향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에서 비롯된 말로, 맹자 어머니가 아들인 맹자를 잘 가르치고 기르기 위해 세 번이나 사는 곳을 옮겼다는 고사(故事)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더 좋은 곳, 더 나은 곳으로 이사를 다니는 부모의 마음은 2300년 전 맹자의 어머니나 현재의 부모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자녀를 좋은 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다른 학군으로 이사를 하고 전학시켜, 강남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학급수가 1학년 학급수의 2배가 된다는 이야기 같은 건 이제 기삿거리도 안 된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철저하게 사교육 논리에 따라 좌우된다. "학교 수업에 충실했고 교과서로 공부했습니다"라는 수능 전국수석 학생들의 기계적인 대답은 이미 그리 큰 감흥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받으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된 입장에서 자녀에게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한 사교육을 시키고픈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교육을 시키고 싶어도 시키기 어려운 곳이 있다. 지방의 농어촌 지역과 같은 사교육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들이 바로 그런 곳이다. 변변한 학원 하나 없는 지방 농어촌 지역에서 사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매년 심화되고 있는 지방 농어촌 지역 인구유출 문제의 원인 중 한 가지는 이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지자체 공립학원

그래서 만들어진 게 '공립학원'이다. '공립학원(公立學院)'이란 말 그대로 학원은 학원인데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을 말한다. 앞뒤가 안 맞는 이 이상한 이름의 학원은 최근 몇 년 사이 지방 지자체 사이에서 획기적인 '지역 살리기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초의 공립학원인 전북 순창군의 '옥천인재숙(이하 인재숙)'은 이제 공립학원을 세우려는 각 지자체의 롤모델이 됐다. 순창군은 지난 2006년 무려 17년 만에 처음으로 2명의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그들 모두 인재숙 출신이었다. 그 이듬해에도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이런 가시적인 성과는 순창군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인구유출 문제를 해결했다. 자녀 교육 때문에 외지로 떠나던 사람들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역으로 타지에서 역전입하는 사례도 생겼다.

상황이 이쯤 되니 지방의 지자체에서는 이제 공립학원을 마지막 대안이자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북 고령군은 '대가야교육원'을, 경남 합천군은 '종합교육회관'을, 전북 김제시는 '지평선학당'을 설립했다. 이 밖에도 여러 지자체에서 공립학원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 주민들도 다수가 공립학원을 지지한다. 순창군의 경우 지역 주민 1천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83.2%가 '인재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립학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서울대 몇 명 보냈다는 그 '성과'에 마냥 기뻐하기에는, 그리고 그로 인해 인구유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에 안도하기에는 공립학원이 낳고 있는 새로운 문제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공립학원의 형태다. 현행법상 시·도를 제외한 지자체에서는 교육기관을 직접 운영할 수 없다. 그래서 공립학원을 운영하는 지자체에서는 별도로 위원회나 장학회 등을 만들어 이곳에 공립학원을 위탁해 운영한다. 따라서 상급 교육기관 등으로부터 아무런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공립학원은 그 태생부터 탈법적 요소를 안고 있다. 때문에 지역 교육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또다른 사교육 조장하는 공립학원의 모순

강남 대치동의 한 어학원에 붙어 있는 종이.
 강남 대치동의 한 어학원에 붙어 있는 종이.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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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학원이 학습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립학원의 목표는 명문대 합격생을 배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별도의 시험을 통해 뽑힌 소수의 상위권 학생들로만 꾸려질 수밖에 없다. 나머지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 공립학원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지자체의 공적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립학원의 혜택을 다수의 지역 학생들이 받지 못하고 소수의 몇몇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은 평등권 침해이자 일종의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해 전북 순창군의 인재숙에 대하여 해당군수에게 공교육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도록 공립학원의 운영 전반에 대해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자체에 의해 설치·운영되는 공교육은 헌법에 의거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그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제공되어야 하며, 교육기관은 그 운영에 대한 재량권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이 재량은 교육기본법상의 목적에 구속되는 한도 내에서만 유효하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차별이 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명문고 재학 여부가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제는 공립학원에 다니느냐 못 다니느냐가 또 하나의 새로운 계층 분리를 유도하는 셈이다. 학생들을 '공립학원에 다니는 아이'와 '못 다니는 아이'로 분리해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립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런 박탈감은 또 다른 사교육으로 이어진다. 공립학원 못 다니는 아이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학생들은 학원에 다니면서 공립학원 입학을 위한 공부를 한다. 공립학원에서는 자체적인 시험을 통해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학생들은 그것을 좀 더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사교육 시장도 발 빠르게 보조를 맞추고 있다. 지방에는 공립학원 입학을 대비해주는 학원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특목고 입학 전문', '특목고 몇 명 합격'과 같은 플래카드가 나붙은 보통의 학원 모습처럼 이제 '공립학원 입학 전문', '공립학원 몇 명 합격'과 같은 플래카드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공립학원이 지방 사교육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학교 전체가 매달리는 공립학원 선발시험

공립학원에 목을 매는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다. 이제 공립학원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공립학원에 몇 명 보냈느냐'하는 학교 차원의 문제가 됐다. 공립학원이 학교를 명문과 비(非)명문으로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자연스레 공립학원 선발시험은 각 학교의 당면 과제가 됐다. 7~8교시로 수업을 늘리고, 외부강사를 초빙해 방과 후 보충수업을 하고, 야간자율학습을 시키는 등 학교 전체가 매달려 총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이에 대해 권성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경남지부 대변인은 "공립학원 입학을 위한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고, 학교까지 나서서 공립학원에 목을 매고 있다"며 "이는 학교가 공립학원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공교육이 붕괴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올바른 교육 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립학원은 분명 지방 농어촌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지역에서 서울대 합격생이 배출되고, 인구유출 문제가 해결됐다. 사람들이 타지로 나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외지에서 역전입하는 사례도 생겼다. 공립학원 덕분이다. 다수의 지역주민들이 공립학원을 반기는 데에는 이런 점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 평등권과 형평성을 해치고 공교육을 위태롭게 만들며 사교육에 활기를 불어넣는 현재의 공립학원은 그 장점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재고되어야 한다. 여러 지자체에서 공립학원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공립학원을 지은 지 불과 2~3년 만에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 문제는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좀 더 긴 안목으로 멀리 내다봐야 한다.

공립학원은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김지성 전교조 전북지부 정책실장은 도시와 지방 농어촌 지역의 교육 격차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연계를 제안했다. 그는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하는 현 정권의 교육이념 아래에선 평등성으로 대변되는 지역균형발전전형, 농어촌 특별전형과 같은 대입제도는 그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연계한 제도적인 뒷받침을 통해서만 현재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 문제는 지자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자체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와 교육당국 모두가 지방 농어촌 지역의 교육 격차 문제를 놓고 심도 있게 논의하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입시 현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최대한 많은 학생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공립학원이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태그:#공립학원, #옥천인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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