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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꽃
 자운영 꽃
ⓒ 하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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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앞두고 보리나 밀 등 겨울 작물을 심지 않은 빈 논에는 요즘 자운영 꽃이 한창이다. 자운영은 콩과식물이다. 콩과식물은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라는 것이 있어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키는 일을 해 퇴비식물로 불린다.

옛 농부들은 이런 걸 어떻게 알았는지, 땅심(힘)을 키우기 위해 논을 놀릴 때는 자운영 씨앗을 받아 뒀다가 일부러 뿌렸다고 한다.

보리 논이 일을 하고 있다면 자운영 논은 힘을 키우고 있다.
 보리 논이 일을 하고 있다면 자운영 논은 힘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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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하면, 나는 노래 한 곡이 늘 떠오른다. 80년대 가수 이태원이 불렀던 '그대'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그대 아름다운 얼굴에 슬픈 미소 짓지 마세요'로 시작되는 차분한 노래다.

이 노래는 노래라기보다 '시낭송'에 가깝다. 노래 전반에 걸쳐 한 여성이 시를 읊기 때문이다. 이 시 첫 마디에 자운영이 나오는데,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자운영을 몰랐다.

꽃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자운영 잎. 잎이 있어야 꽃이 핀다.
 꽃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자운영 잎. 잎이 있어야 꽃이 핀다.
ⓒ 하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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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즐겨 듣던 나는 무척 궁금해 했으면서도 확인하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왠지 외국에서 들어온 꽃 같았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그 자운영이 내가 어릴 적부터 논에서 보던 그 꽃임을 알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 꽃' 하고 시작하는 시와 이태원의 노랫가락이 귀에 맴도는 듯하다.

아이들이 맘껏 굴러도 좋을 자운영 꽃밭이다.
 아이들이 맘껏 굴러도 좋을 자운영 꽃밭이다.
ⓒ 하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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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노래 / 정두리 글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 꽃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할 구석진 마을의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하실 힘
덜어내고도 몇 배로 다시 고이는 힘
아! 한목에 그대를 다 품을 수 있는 씨앗으로 남고 싶습니다
허물없이 맨발이 넉넉한 저녁입니다
뜨거운 목젖까지 알아내고도 코끝으로까지
발이 저린 우리는 나무입니다

우리는 어떤 노래입니까
이노리나무 정수리에 낭낭 걸린 노래 한 소절
아름다운 세상을 눈물 나게 하는
눈물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대와 나는 두고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네게로 이르는 길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오는 길
그대와 나는 내리 내리 사랑하는 일만
남겨두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사천, #자운영,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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