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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군 장성읍 구산동에서 덜커덩 거리는 길이 썩 좋지 않은 산책로를 따라 제봉산 자락에 있는 물레방아 약수터에 이르기까지 수 십 여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많은 돌탑들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등산객이나 산책하는 사람 모두가 신기해하면서도 궁금해 하는 돌탑들. 돌탑을 쌓은 사람은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이 길래 많은 돌탑을 쌓았으며 이 많은 돌탑들은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제봉산자락 돌탑을 찾았다. 시간 나는 틈틈이 아침 일찍 산에 올라 돌탑을 쌓는다는 주인공 김승규(71)씨에게서 이처럼 지극정성으로 돌탑을 쌓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40년간 심장병으로 앓고 있는 부인을 향한 애절하고 애틋한 정 때문이란다. 오로지 아내를 위해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 온지 10여년이 흘렀건만 병세는 호전 되지를 않자 아픈 고통에 시달리는 부인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쌓기 시작했던 것이다.

 

"집사람이 지금보다는 덜 아프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는 그는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쌓아 놓은 돌탑을 보며 위안을 삼고 좋은 일도 생기며 소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한다.

 

김씨는 아내를 위해 쌓기 시작했던 돌탑이 이제는 등산객들을 위한 돌탑이 되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돌탑을 보고 좋아 하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겠어요?" 하는 순수한 마음이 들어 이제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돌탑 쌓는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 섭섭한 마음도 있단다. 간혹 가다 쌓아놓은 돌탑을 학생들이 올라와서 손을 대고 무너뜨린 것을 보았을 때라는 것.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끄떡없는 돌탑이지만 누군가가 무너뜨렸을 때는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말없이 다시 쌓아올리곤 한단다. 이렇게 해서 크고 작은 탑 하나하나가 완성되어 간 것이다.

 

돌탑을 쌓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나이도 들어서인지 무거운 돌을 옮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수술한 허리가 아픈 것도 원인이지만 인근에 있는 돌들을 모아서 사용을 하고 있단다. 산 아래에 있는 돌들은 보기에 모양이 좋아도 옮기기 힘이 들어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아픈 아내를 생각하고 등산객들을 위해서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릴 때마다 정성을 다하며 하나의 돌탑을 완성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약수터 광장에도 김승규씨의 마음을 아는지 돌탑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일정한 틀을 갖춘 듯 튼튼하게 쌓아진 돌탑들. 김씨는 30년 넘는 오랜 세월동안 미장일을 해온 터라 돌 쌓는 기술을 터득해 자연스럽게 탑을 쌓는다고 한다.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느냐고 하자 건강이 좋지가 않아 두어마지 정도의 조그마한 농사를 짓고 간간이 들어오는 미장일 등 노동일을 하면서 생계를 잊는다고 한다.

 

김씨는 마을 주민들도 전부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내는 힘든 일을 그만두라고 재촉하지만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 좋고 모든 일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계속 쌓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애써 쌓아놓은 돌탑을 무너뜨리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줄 때가 있을 것"이라며 원망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김승규씨는 약수터에 있는 물레방아도 자신이 손수 만들어 놓았는데 물이 많이 흐를 때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것이 운치가 있다고 한다.

 

김씨는 돌탑을 쌓으면서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한다. 5년 전 척추협착증으로 허리수술을 받았다던 김승규씨는 하나의 탑을 쌓을 때마다 수 백 번씩 허리를 숙였다 폈다 반복하다보니 허리통증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픈 아내를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돌탑을 쌓은 지가 어언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허리가 많이 아프면 며칠 쉬기도 한단다. 이처럼 많은 세월동안에 만들어진 돌탑만 해도 수 십 여개에 이른다.

 

언제까지 돌탑을 쌓을 거냐는 물음에 "앞으로 힘이 떨어져 더 이상 쌓을 수 없을 때까지 쌓을 것이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내를 생각하는 따뜻한 정감이 느껴진다. 바로 감출 수 없는 아련하고 진한 아내를 향한 '부정(夫情)' 때문임을 알 수가 있었다.

 

취재를 마치면서 바라는바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제봉산은 많은 등산객이 찾고 마을 주민들도 운동 삼아 자주 올라가는 곳인데 약수터가 있는 광장까지 가는 길이 자갈밭에 여기저기 패이고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고 특히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질척거려 불편한 점이 많아 주민들을 위해서 군에서 광장까지 등산로를 콘크리트 포장을 하여 깨끗이 정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구산제 저수지까지는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는데 그 위로는 되어 있지 않아 이용하는데 엄청 불편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이어서 "광장에 운동기구도 설치 해주고 작은 정자라도 하나 만들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운동도 하고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희망사항을 밝힌다. 이는 등산객 및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본 기자도 광장까지 올라가면서 느낀 것들이다. 등산로 정비 및 광장에 시설 구비가 시급해 보였다. 산을 찾는 사람들은 김승규씨의 병든 아내를 향한 지극 정성스러운 '남편의 정' 과 등산객들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그의 '순수한 마음'을 헤아려 돌탑을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제봉산 아래 구산동으로 이어지는 길목 그의 집 앞에도 돌탑이 쌓아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등산객 이모씨(38, 광주 광산구 거주)는 "평소에 제봉산을 자주 찾는데 돌탑에 대해 무척 궁금했는데 이제야 깊은 뜻을 알고나니 가슴이 찡해져옴을 느낀다"면서 "부인이 하루빨리 병이 쾌차하기를 바라고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극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돌탑을 쌓는 김승규씨의 모습에서 요즘 세태에 보기 드문 참된 아내 사랑하는 마음을 볼 수가 있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면서 돌탑을 쌓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주머니의 빠른 쾌유를 빌면서.


태그:#돌탑, #아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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