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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텃밭 내가 살고 있는 원앙빌라의 뒤쪽 텃밭입니다. 똥오줌냄새 사는 곳이었고, 묵은 땅이었는데, 이곳을 갈아 엎었습니다. 언제 뉴타운 개발이 시작될지 알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또 다른 희망을 품어 보렵니다.
그늘진 텃밭내가 살고 있는 원앙빌라의 뒤쪽 텃밭입니다. 똥오줌냄새 사는 곳이었고, 묵은 땅이었는데, 이곳을 갈아 엎었습니다. 언제 뉴타운 개발이 시작될지 알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또 다른 희망을 품어 보렵니다. ⓒ 권성권

작년 11월 말 경 지금 사는 마천동 원앙빌라로 이사를 했다. 그 전까지는 남한산성 아래의 작은 상가교회에 셋방을 만들어서 살고 지냈다. 그러던 터에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부엌까지 불이 들어오는 따뜻한 방을 찾아서 이사한 것이었다. 물론 전세값의 절반은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은행 대출로 해결했다.

 

처음 이사할 때만 해도 3층으로 된 빌라라 아늑했다. 차가 다니는 도로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더욱 조용했다. 더욱이 우리 집 세 아이들이 지내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들이 많은 집이 원래 그렇듯, 우리 집 세 아이들도 온 방안을 헤집고 다닐 정도로 떠들어댔다. 그래도 거뜬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사한 지 3일이 지날 무렵 문제가 터졌다. 새벽기도회에 나가기 위해 일어났을 무렵 보일러에 빨간 불이 들어 온 것이다. 물이 부족한 탓에 보일러가 멈춰서 버렸다. 보일러를 다시 가동하기 위해 나는 수동으로 물을 보충했다. 그렇게 하기를 3-4일에 한 번씩은 해 줘야 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큰 결단을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보일러 물 분배기를 갈아줬다. 분배기가 낡아서 조금씩 물이 새 나갔고, 그래서 보일러가 멈춰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주인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처리한 일이었으니, 주인이 그것을 알면 순순히 값을 지불해 줄지 의문이었다. 뜻밖에 주인과 통화를 했는데, 내가 처리한 일을 듣고서, 주인은 아주 잘 했다며 그 비용을 곧바로 송금해 주었다.

 

그 일은 잘 처리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우리 집 아이들이 너무 떠들고 날뛰는 탓에 밑에 층 주인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보통 저녁 8시 반에 잠을 자기 시작해 9시가 되면 곯아떨어지고, 다음날 아침 7시 반이면 깨어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 녀석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들끼리 뒹굴고 야단법석을 피운다. 그럴 때면 나와 아내는 조용히 시키는 게 우리의 아침 일과다. 어쩌면 그것이 나와 아내가 아침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몫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어쩌다 한 눈을 팔았던지 유독 더 심했다. 그래서 참다못한 아래층 주인이 부랴부랴 올라 온 것이다.

 

더욱이 아래층에 사는 젊은 부부는 이제 갓 돌을 넘긴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것도 이사해서 떡을 돌릴 때는 몰랐고, 그 날이 돼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런 아들을 두고 있었으니 우리 집 아이들이 심해도 너무 심했던 것이다. 특히 토요일과 주일이면 그들 부부가 점심때까지 깊은 잠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도 모르고 지냈으니,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나와 아내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다. 매일 아침에는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토요일과 주일이면 이른 아침부터 교회로 나가는 대책이었다. 그것만이 아래층과 마찰을 피할 수 있고, 우리 집과 아래층 모두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를 세 달째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일은 없어 다행이다 싶다.

 

빌라 처마 밑 텃밭 내가 사는 원앙빌라 뒷쪽에 있는 그늘진 텃밭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 엎었고, 똥오줌 냄새로 가득차 있는 곳에 고추와 오이, 호박과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습니다. 이곳에서 희망을 지키려 합니다.
빌라 처마 밑 텃밭내가 사는 원앙빌라 뒷쪽에 있는 그늘진 텃밭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 엎었고, 똥오줌 냄새로 가득차 있는 곳에 고추와 오이, 호박과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습니다. 이곳에서 희망을 지키려 합니다. ⓒ 권성권

우리 집 바로 아래층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우리 집의 아래층의 아래층, 이른바 맨 밑의 반 지하에 사는 젊은 친구들이 문제다. 그들 젊은 친구들이란 흔히 말하는 다단계에 빠져 있는 대학생들이다. 그 친구들은 남자와 여자를 포함해 10명 정도 살고 있는데, 그곳이 반지하일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하나 밖에 없는 탓에, 보통 소변을 빌라 처마 밑에다 해결하곤 하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그 사실을 몰랐는데, 봄철인 요즘엔 그 냄새가 코끝을 진동해 몸서리가 칠 정도다.

 

나도 어린 시절 시골에 살 땐 그랬다. 방문 밖을 벗어나 화장실까지 가기가 귀찮고 무서웠던 탓에 그저 토방에 서서 오줌을 해결하곤 했다. 봄철과 여름철에는 유독 그 냄새가 심했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탓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이가 들면 다 해결하겠거니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그 친구들이 해결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 조만간 어떤 이야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더군다나 시시때때로 피워대는 담배냄새가 우리 집 3층까지 올라올 정도이니, 마냥 참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그게 내가 처한 셋방살이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빚을 내서 방을 구해 살고 있지만, 내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설움도 그렇고,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역겨운 담배 냄새와 오줌 냄새를 고스란히 떠맡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그렇다. 

 

그런데 한 달 전에 반장 아주머니를 만나고 난 뒤로는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이 밀어닥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반장 아주머니는 그 날 거주자들이 실제 주소지에 살고 있는지 조사 차원에서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나는 우리 집을 대표해 이름 석 자를 알려주었다.

 

그 분이 왜 조사를 해 갔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앞으로 2-3년 안에 마천동 일대가 뉴타운 개발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그때가 되면 세입자들에게는 작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 보상비를 주기 위해 조사를 해 갔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확하게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고, 그 기준을 어떤 차원에서 정한 것인지도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날 이후로 짹깍짹깍 초읽기라도 들어간 듯, 벌써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 그때 되면 또 어디로 이삿짐을 싸서 가야 할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5,500만원이니 그때는 또 얼마나 많은 빚을 내야 할지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터에 나는 작은 텃밭을 일구어냈다. 내가 살고 있는 빌라의 뒤편 처마 밑 그늘진 곳에 묵은 땅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삽 한 자루 정도의 땅인데, 그 전까지만 해도 잡초가 무성했고, 오줌과 똥냄새가 코끝을 진동했다. 그러던 그곳을 삽으로 헤집기 시작했고, 흙과 모래를 뿌려댔고, 거름까지 사다가 뒤섞어서 좋은 텃밭을 만든 것이다. 그곳에다 고추와 오이, 호박과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는데, 그것들이 잘 자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클 수 있을지, 얼마나 많은 가지를 뻗을 수 있을지, 얼마나 큰 열매를 맛볼 수 있을지는 문제이지 않다. 그저 마천동 일대가 뉴타운 개발이 시작되는 그 날까지, 이 작은 텃밭을 통해, 내게 불어 닥칠 염려들을 덜어보고 픈 마음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늘진 텃밭은 마천동 세입자로 사는 내게 희망과 다름없다.

덧붙이는 글 | 세입자 이야기 


#세입자#마천동 뉴타운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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