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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가 포화상태에 가까운 듯 성장 속도가 잠시 주춤거리는 요즘이다. 때마침 작고 느린 삶을 쫓는 이들도 느는 추세다. '문명(인간)의 위기'를 넘어 '지구별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삶의 철학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은 힘을 얻는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산업화'에 '규모의 경제'가 지배한다. 따라서 농촌 인구가 도시에 흡수되는 현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 또 농촌은 '공단과 공장을 유치해서라도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이런 현실 앞에서 '지역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너무도 힘겨워 보인다. 과연 해답은 있는 것일까? 사천시 곤양면에서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 시작됐다.

 

4월16일 오후, 곤양고등학교 강당에는 곤양지역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 동창회장과 학부모대표 그리고 시의원과 면장까지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댔다. '다니고 싶고 보내고 싶은 지역학교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를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이 토론회는 '내고장 학교살리기 준비위원회'가 마련한 것으로, 전 경남도의원이자 지역 교육에 평소 애정을 보여 온 강춘성(72)씨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한민국 농촌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교육문제가 곤양지역에 그대로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교육현황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각각 1개에 학생이 220명 126명 133명 다니고 있다. 저학년으로 갈수록 학생 수가 적어 농촌인구 감소현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상위 학교로 진학하면서 지역을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많음을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초등학교6학년이 되면 학생 수가 급감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도심에 있는 중학교로 보내기 위한 학부모들의 '사전조치'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곤양 곤명 서포 3개면이 한 학군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 비춰보면, '곤양고교생 133명'이라는 수치는 고교진학 과정에 얼마나 많은 지역이탈자가 생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생기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를 두고 입시 중심의 교육이 문제니 교육경쟁을 너무 부추겨서 그러느니 하는 것은 적어도 이날 참석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접근한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교육전문가들 중에 어느 누가 속 시원히 답할 수 있을까.

 

참석자들은 이내 현실적인 문제들을 언급했다. 어찌하면 그나마 있는 학생들을 지역의 상위학교로 진학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 가운데 '통학의 불편함'을 얘기하는 참석자들이 많았다. 농촌지역이다 보니 대중교통이 일찍 끊기는 데다 이동거리도 멀어 학부모로서 신경이 여간 쓰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러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도 있다고 했다. 학원차량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참석자들은 자치단체 예산으로 이를 지원하는 방안이 없는지, 나아가 초등학교 학교버스를 밤시간에 연장 운행하는 방안은 없겠는지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밖에도 자치단체에 호소하는 내용이 더러 있었다. 사교육과 거리가 먼 지역인 만큼 학교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야 하고, 이 예산을 자치단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해까지 지원되던 예산이 끊겼다"는 주장도 나와 함께 있던 시의원이 이를 확인하는 민첩성도 보였다.

 

또 학생들이 무료로 급식을 제공받게 하자는 의견에서 저녁식사까지 학교에서 책임지게 하자는 방안도 자치단체에 도움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학교와 지역이 함께 진정성을 갖고 좋은 학교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잠시 머물다 간다'는 생각으로 교직에 임하는 교사들은 없는지 묻고 싶다. 학부모나 지역사회에서도 아이들 교육에 더 신경 써야겠지만 학교의 분발도 촉구한다."

 

때로는 케케묵은 "공장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부르짖는 의견도 있었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교육에 분명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마치 그것이 좋은 학교 만들기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처럼 맹신하는 이들을 보면 씁쓸하다.

 

이날 토론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했고, 그러다보니 시간도 꽤 길었다. 토론 끝을 보지 못하고 일찍 나왔지만 새로운 교육 싹이 자랄 듯한 좋은 느낌이 지켜보는 이에게도 솟았다.

 

토론 참석자들은 이날 '곤양 지역학교 발전위원회'(위원장 강춘성)를 결성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사천, #지역학교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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