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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주거형태이면서도 우리생활에 녹아 들어오지 못한 것이 바로 한옥이 아닌가 한다.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형태인 세상에서, 서울 시내에 대지 마련하고 값비싼 건축비를 마련해야 되고, 다행히 비슷한 건축비로 나의 집이 마련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선뜻 내키지 않는 것은 익숙지 못한 주거양식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동문모임에서 누가 나에게 '시골에 한옥이 하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기에 단독주택이고 공간이 있다면 뜯어다가 마당 한쪽에 조립해서 사랑채로 쓰는 것이 어떠냐, 살기 불편하다면 북촌에 가서 한옥의 변형된 형태를 한번 보시고 참조하시라고 간단히 말했지만, 막상 내가 본 것은 기껏해야 삼청터널을 지나며 길거리에 가게로 쓰여 지고 있는 서양화된 한옥 몇 채 본 기억밖에 없다는 것이 떠올라 얼굴이 벌개 진 일이 있었다.

북촌은 북악산 끝자락 작은 능선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삼청동 거리, 동쪽으로는 계동, 능선에 가회동이 있으나 우선 삼청동과 가회동만 가보기로 했다.

삼청동길


젊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면 무엇이 맛있고 멋진 백이 있고 하며 좋아하는, 마음이 좀 복잡해지는 거리이다.  불과 90년대만 해도 이렇게 복잡하거나 패션과 음식으로 넘쳐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었겠는가?

눈높이로 보고 다니면 유럽풍의 거리 같기도 하고 위를 쳐다보면 달동네 같기도 하지만 위와 아래가 나름대로 오묘하게 결합되어 시간과 공간이 범벅이 된 것 같은 동네이다.  음식으로 치면 마치 부대찌개 같은….

평소 한옥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옥마을에 재현된 완벽한 한옥에서의 삶을 상상도 못하는 것은 이미 온 몸에 배어있는 서양식 생활습관 때문이다. 한 사람이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간단한 의식(衣食)문제조차도 공간문제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가전제품을 설계할 때는 대중의 삶을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거실로 쓰일 수밖에 없는 대청마루에 냉장고, 싱크대, 식탁, 응접세트, TV를 들여 놓고, 방안에 침대, 책상, 컴퓨터를 들여 놓으면 아마 주인은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장 변형되지 않은 한옥 카페. 소나무와 한옥이 잘 어울린다
 그래도 가장 변형되지 않은 한옥 카페. 소나무와 한옥이 잘 어울린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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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업용도로 바뀌어버린 삼청동 거리에서는 그러한 불편함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손님은 비좁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것이고 주인은 오히려 그것을 삼청동의 특색이라고 내세우는 듯이 보인다. 그러니 웬만큼 유명하다는 점포는 밖에서 줄을 지어 기다리는 손님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 개발이익을 톡톡히 누리는 곳은 북촌 중에서도 바로 이 거리 같다.

전면 벽체를 벽돌로 쌓아 새로운 맛이 나는 한옥. 옛것이라면 중국풍이라 하겠지만 요즘 사람이 변형을 시켰으니 중국풍이라 할 수는 없겠다.
 전면 벽체를 벽돌로 쌓아 새로운 맛이 나는 한옥. 옛것이라면 중국풍이라 하겠지만 요즘 사람이 변형을 시켰으니 중국풍이라 할 수는 없겠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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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을 보면 이렇게 좁은 채광창을 병렬로 배열해서 측면만 보고는 한옥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측면을 보면 이렇게 좁은 채광창을 병렬로 배열해서 측면만 보고는 한옥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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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에서 선재아트센터까지의 길은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담으로 막상 북촌의 맛을 느끼기 힘들지만 거리의 노점상과 자그마한 분식집, 카페들로 혼잡하다. 한옥의 길과 면한 벽체를 뜯어내어 유리창과 문을 내 천막으로 차양을 쳐놓은 집들이 좀 있다. 줄을 길게 늘어선 가게들은 작은 의자와 탁자 놓을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빼곡히 들여놓아 나 같은 사람은 들어가면 나이가 들어 분위기를 망치기도 하겠지만 이리저리 사람에 치일까봐 아예 들어갈 엄두도 안낸다.

유리케이스에 갇혀버린 인형 같은 한옥
 유리케이스에 갇혀버린 인형 같은 한옥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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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케이스는 담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방풍과 파고라 역할을 한다. 영업용 점포이기는 하겠지만 발상이 대단하다.
 유리케이스는 담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방풍과 파고라 역할을 한다. 영업용 점포이기는 하겠지만 발상이 대단하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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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서 눈여겨 볼만한 한옥은 청와대로 가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근처의 레스토랑 3군데인데 모두 고갯길을 절토하여 축대를 쌓은 곳이라 한옥이 거의 온전히 남아 있다. 둘은 계단을 이용하여 카페로 들어가는데, 그중 하나는 외형을 거의 손대지 않은 형태로 소나무 한그루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다른 하나는 벽체를 벽돌로 쌓아 길에 면한 부분은 석파정의 사랑채처럼 보이지만 골목으로 면한 부분은 서양식 좁다란 채광창을 병렬로 배열하였다.

마지막으로 다른 하나는 툇마루 부분의 처마와 마당을 유리상자로 싸서 파고라처럼 활용한 한옥인데, 아마 한옥을 하는 사람에게 점포용도로 리노베이션을 해달라면 이렇게 과감하게 손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경복궁 옆길에 상업용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고 거기에 몇몇 화랑들이 들어서면서 <문화거리>로 변화되고 몇 년 되지 않아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삼청동거리를 휩쓸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것은 그곳이 그들의 취향에 맞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번화가가 되어 버린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냐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북촌, #삼청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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