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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조팝나무꽃은 좁쌀 붙인 모양이기보다 한겨울에 함박눈을 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개한 조팝나무꽃은 좁쌀 붙인 모양이기보다 한겨울에 함박눈을 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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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영대를 제치고 거의 뛰어다니는 걸음으로 청소를 마쳤습니다. 산벚꽃이 축제처럼 만발하고, 조팝나무가 폭설이 내린 것처럼 가지 위에 흰 꽃을 이고 있는 지금의 헤이리 풍경에 안달 나고 봄꽃 향기에 몸달아 계실 이웃들도 보고 싶고, 오늘 다시 새롭게 선보이는 헤이리 각 공간의 전시작품들도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꽁무니를 빼던 아들도 동행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들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갤러리 나들이를 가는 것은 작품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라며 저의 만류에도 구태여 긴팔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왔습니다.

그림 구경이란 수학처럼 공식을 외우고 있어야 풀 수 있는 셈 공부도 아니므로 그냥 불쑥 갤러리를 방문해 작품을 마주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갤러리를 자주 출입하고 공부가 아닌 휴식으로 그림을 많이 대하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그림들에 마음이 젖어들기 마련이지요. 그 갤러리 나들이에 단지 아들을 동행케 하는 것만으로 그동안 방임했던 아비의 도리를 다한 양 위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들 친구 진택이 집을 지나다가 진택이 부모님인 이정규 선생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 선생님 부부도 아들 친구를 보자 또 다른 아들을 만난 양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들 친구 진택이 집을 지나다가 진택이 부모님인 이정규 선생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 선생님 부부도 아들 친구를 보자 또 다른 아들을 만난 양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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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의 앞집인 청향재 정원에 몇몇 이웃이 모였습니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볕을 즐기는 것은 이 봄에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모티프원의 앞집인 청향재 정원에 몇몇 이웃이 모였습니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볕을 즐기는 것은 이 봄에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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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흐드러진 헤이리의 하루

눈부신 봄빛 속으로 나오자 마른 칡넝쿨 아래에서 은밀하게 먹이를 구하던 까투리 한 마리가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언덕위의그림자' 이웃댁 옆 숲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앞집의 청향재 정원에는, 그 옆집 빈우당 김경중 선생께서 마당가에서 갓 뜯은 여린 쑥을 찹쌀가루에 지져낸 쑥전으로 맥주파티를 벌이고 있습니다. 번철 위에서 잘 익은 진달래를 얹은 화전이 미술작품처럼 곱습니다.

벚나무골의 벚나무가 드리워진 가지마다 꽃이 한껏 흐드러졌습니다. 이 마을 아트스페이스강의 강제순 화백께서는 이 시간 화실에서 붓을 잡는 것보다 정원사 역할이 더 신나는 모양입니다. 기실 자연을 화폭에 담는 강 선생님께 정원을 손보는 일도 그림 작업의 범주에 드는 일일 것입니다.

붉은 장갑을 끼고 정원을 돌보는 일은 아트스페이스강의 강제순 선생님에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의 연장입니다.
 붉은 장갑을 끼고 정원을 돌보는 일은 아트스페이스강의 강제순 선생님에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의 연장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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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갤러리에서 키우는 양 두 마리. 목걸이를 한 털 깎은 양의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순박해 보입니다.
 청개구리 갤러리에서 키우는 양 두 마리. 목걸이를 한 털 깎은 양의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순박해 보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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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그림에 옷을 입혀주는 헤이리의 유일한 액자집 '그림방아트'에도 들려보았습니다. 김종호 선생의 손길을 기다리는 액자들이 가득합니다. 맡겨진 여러 작가들의 작품도 한결 밝습니다.

리앤박갤러리에서 터치아트로 가는 산책로에는 목련이 큰 꽃잎을 달고 있습니다. 잎보다 꽃을 먼저 세상에 내보내는 목련. 나무줄기에 큰 꽃잎을 매달고 있는 목련은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처럼 진정 4월 햇살의 그늘을 만들만큼 크고 푸집니다. 하지만 굵고 검은 나무줄기에 한 송이 흰 꽃을 달고 있는 모습이며, 덩이째 툭툭 흰 꽃을 떨어뜨리는 모습이 제겐 화려함보다는 애절함으로 와 닿습니다.

쓰임이 다한 폐철의 아름다운 부활, 김병진 개인전

수많은 철사를 구부리고 용접해야 하는 철사 드로잉 조각은 연필이나 붓을 이용한 드로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품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수많은 철사를 구부리고 용접해야 하는 철사 드로잉 조각은 연필이나 붓을 이용한 드로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품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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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박갤러리]
김병진 초대전 'Drawing a space'
전시기간 | 4월 11일 ∼ 5월 17일
전시문의 | 031_957_7521
웹사이트 | 리앤박갤러리
www.leenparkgallery.com
오프닝리셉션 초대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김병진개인전'이 막을 올린 '리앤박갤러리'로 갔습니다. 개인전을 축하해주기 위해 온 지인들의 칭찬에 김병진 조각가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작가는 회화 같은 조각을 합니다. 재생철로 만든 철선을 굽히고 땜해서 나뭇잎도 만들고 꽃잎도 만들고 숲도 만들고 숲속의 집도 만듭니다. 벽에 고정된, 철사로 만든 그의 작품은 마치 평면 같지만 벽에서 10cm쯤 띄워져 있습니다. 철선으로 이루어진 그 작품의 그림자가 또다시 벽에 회화를 만들므로 엄연한 조각입니다.

자연 속에서 부분적으로 다듬은 부분을 철사의 선으로만 조형화한 김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이 작품들의 재료가 과연 차가운 쇠였었는가 의심스러울 만큼 친근하고 따뜻하며 예쁘기까지 합니다. 쓰임이 다한 폐철의 아름다운 부활에 경탄을 아낄 필요가 없습니다. 파티의 음식이 놓인 테이블도 김 작가의 작품입니다. 여동생의 혼수품에 보탰던 김 작가의 또 다른 변종(variation)이 전시장에 놓인 테이블입니다.

"시집가는 동생에게 오빠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고민 끝에 만든 것이 철사 테이블이고 철사의자입니다."

서정적인 갤러리의 선화, 3인의 드로잉전

터치아트 '선선색선線線色線'전 김혜련 작가의 먹 드로잉
 터치아트 '선선색선線線色線'전 김혜련 작가의 먹 드로잉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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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아트]
선선색선線線色線
전시기간 | 4월 4일 ∼ 4월 26일
전시문의 | 031_949_9437

헤이리 노을 동산을 등지고 갈대 늪과 갈대광장을 앞마당으로 둔 터치아트. 저는 꼭 이 갤러리의 작품을 보기위해서가 아니라도 그 옆을 지나칠 때면 2층 데크로 가서 헤이리를 조망하는 사치를 누리곤 합니다.

산과 늪 사이의 갤러리. 그 서정적인 위치뿐 아니라 공간 구성이 군더더기가 없고 연간 기획에 따라 전개되는 전시도 발걸음에 실망을 안기는 법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전시기획과 출판을 함께 아울러야 하는 끊임없는 정신적 노역의 상황에 관계없이 얼굴에서 늘 긍정의 웃음을 지우지 않는 진영희 대표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하루를 좀 더 신나게 채울 긍정의 용기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갤러리에는 김혜련·류승환·배석빈 3인의 드로잉전 '선선색선'이 열리고 있습니다. 김혜련 작가는 먹 드로잉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김 작가의 선화(線畵)는 21세기의 선화(禪畵)를 보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산란한 것들이 녹아내릴 때까지 길과 숲의 풍경을 오랫동안 응시하다가 마음에 앙금만 남은 상태에서 일필휘지로 그려낸 듯한 심상(心象)입니다.

류승환 작가의 신작로처럼 긴 작품을 가까이서 대하면 자학처럼 스스로를 고된 노동으로 내몬 작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0.3mm의 가는 펜이 덩어리져 보일 만큼 긋고 또 그었습니다. 10m짜리 이 두루마리 종이에 그어진 선의 총 길이는 과연 몇 Km가 될지 궁금합니다. 참으로 면벽(面壁)하는 수행의 작업입니다.

배석빈의 작품 앞에서 아들 영대는 유치원생 작품인지 물었습니다. 영대의 질문으로 볼 때 배 작가의 의도는 적중한 것 같습니다. 모호한 색 드로잉에서 그것을 읽어내는 나름의 방식을 찾을 일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당면하는 일상에서처럼….

터치아트를 나오다 다른 전시장에 들렸다 돌아오는 진 대표도 대면했습니다. 잠깐의 길 위 수다만으로도 한층 마음이 이완되는 효험이 있습니다.

끝임없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실험실, 아트팩토리

신진작가들의 용기가 되어주고 있는 아트팩토리
 신진작가들의 용기가 되어주고 있는 아트팩토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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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팩토리]
박노진 개인전 'stories'
전시기간 | 4월 11일 ∼ 4월 29일
전시문의 | 031_957_1064
아트팩토리의 전시를 만날 때마다 공장(factory)보다는 실험실(laboratory)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검정 된 것을 양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위해 끝임없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실. 이 실험실에서는 마음이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가 보장되는 도약의 무대일 수 있습니다. 상업 화랑에서 가능할 수 없는 실험들입니다. 아트팩토리를 드나들 때마다 진정 마음으로 응원하는 이유입니다.

늦은 발걸음이었지만 다행스럽게 전시장 불이 밝혀져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박노진의 기회초대전 '이야기'전입니다. 작년 2월의 '돌아보다'전에 이어 일년 만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가를 다시 만납니다. 작가의 캔버스를 통해 만나는 거울에 비쳐진 작가의 일상은 흔한 모습입니다. 그것들이 누구나 매일 접하는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캔버스 위의 일상은 더 이상 흔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것을 위해 매일 치열했기 때문입니다.

쪽빛이 되기 위해서는 쪽물에 담가라

석양과 나들이 나온 연인 한 쌍을 기꺼이 비추어 품은 헤이리의 갈대늪 풍경은 실내 갤러리가 담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석양과 나들이 나온 연인 한 쌍을 기꺼이 비추어 품은 헤이리의 갈대늪 풍경은 실내 갤러리가 담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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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완전히 서산으로 몸을 숨긴 시간, 써니 갤러리의 2층 공방에서 서로 마주앉아 흙으로 사랑을 빚는 연인들의 모습이 포근하고 정겹습니다.
 석양이 완전히 서산으로 몸을 숨긴 시간, 써니 갤러리의 2층 공방에서 서로 마주앉아 흙으로 사랑을 빚는 연인들의 모습이 포근하고 정겹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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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팩토리를 나서자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 아들과의 헤이리 한 바퀴, 안달 났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저와 발걸음을 함께한 반나절 갤러리나들이에서 영대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저는 모릅니다. 저는 아들이 화가가 되길 바라지는 않지만 앞으로 만날 고단한 인생의 노정에서 피로를 예술로 위로받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숲 속에 던져놓으면 어른보다는 훨씬 빨리 숲과 친해지는 모습을 봅니다. 자꾸 가르치려는 부모의 욕심만 비우면 됩니다. 문화와 예술의 감성을 키우는 일도 매한가지로 여겨집니다. 그저 갤러리에 던져두면 자연히 예술적 감성에 물들 것입니다.

쪽에 손을 담갔는데 손에 쪽빛이 남지 않겠어요? 문제는 성급한 부모가 자꾸 과외로 과정을 앞지르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얘기합니다. 학원에서 씌운 굴레를 벗는데 대학 4년을 소진해버렸다고. 그러므로 자신이 미술학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미대입시를 위한 데생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화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저와의 반나절 데이트에서 아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야 할 긴 인생의 여로에서 힘든 순간을 만나면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위로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욕심은 있습니다.
 저와의 반나절 데이트에서 아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야 할 긴 인생의 여로에서 힘든 순간을 만나면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위로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욕심은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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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헤이리, #갤러리, #이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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