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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6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교과부)가 작년 10월에 전국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제고사 결과를 '뒤처지는 학생없는 학교만들기-2008년도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및 기초학력 미달학생 해소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결과를 발표하자마자, 전국 곳곳에서 보고한 평가결과가 거짓과 잘못으로 드러남에 따라 국민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교과부는 '전면재조사'를 실시해서 대책을 발표한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1년 가운데 가장 바쁘고 중요한 때인 3월 초 전국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전면재조사를 벌이면서, 3월 10일에 실시하기로 했던 진단평가마저 진단평가를 할 시기가 아닌 3월 31일로 무리하게 옮기면서까지 '전면재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저도 작년에 학교 평가담당으로 일제고사를 진행한 업무책임자로서 당연히 '전면재조사'를 받았습니다. 분명 12월 31일 자로 교육청에서 온 공문을 보면, 평가결과를 보고할 때 '학교명이 노출되지 않도록 봉투에 담아서 교감이 밀봉하여 인편 제출'이라고 해서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별로 제출한 숫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점검을 한다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점검단은 우리 학교에서 보고한 자료를 인쇄해서 들고 온 것입니다. 문서 앞뒤에는 다른 학교 결과도 학교이름이 쓰인 채 딸려 있었습니다. '교감이 밀봉하여 인편 제출'이라고 할 때부터 의심하긴 했지만, 교육청이 하는 일을 보니 참으로 '눈 가리고 아웅'식이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학교 점검결과, '실수'로 기초학습 미달자를 한 명 빼고 보고 했고, 답안지가 한 과목에서 한 장 없어진 것 한 건, 두 번째 날 평가한 두 과목 한 아이 평가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학과 사회 과목 결과를 서로 바꾸어서 보고했습니다.

 

방학 중인 12월 31일에 갑작스럽게 공문이 와서 1월 5일까지 보고를 하라고 해서 담임교사에게 전화로 숫자를 불러 달래서 제가 보고 자료를 작성해서 보고한 것입니다. 점검이 끝나고 이미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신 담임교사에게 물어보니 두 번째 날 본 한 아이의 평가지가 모두 사라진 까닭은 그 아이가 두 번째 날 결석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전면재조사'를 받으면서 그렇잖아도 할 일 넘치는 학년 초에, 교과부가 학교를 도와줘도 시원찮을 판에 학교와 교사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일을 점점 벌여서 학교를 더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것인지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현장 교사들은 물론이고, 이를 바라본 국민들은 '전면재조사'를 하지 않아도 결과는 이미 뻔하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교과부는 '전면재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전면재조사' 결과를 교과부는 어떻게 발표하고, 어떤 방법으로 정리해 나갈지 궁금했습니다.

 

학교를 혼란에 빠뜨리면서 하는 '전면재조사' 뒤 한다는 발표는 3월이 지나고 4월 중순이 다가와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과부 장관님, '전면 재조사 발표 안하시나요?' 하는 기사를 써 올리기도 했고, 이 내용을 그대로 교과부 홈페이지 민원실에 교과부 장관님 앞으로 올렸습니다. 

 

 

드디어 4월 14일, 교과부는 '전면재조사' 결과인 '학업성취도 평가 관리체제 전면 개편'이라는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를 보고나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교과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년 초에 약 1만7천 명의 인원으로 한 달여 동안 점검을 한 결과 전체 답안지의 약 7.2%인 약 65만 장이 분실됐고, 오류건수는 1만6402건으로 전체 31.7%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점검결과, 전체적으로 전국 및 시·도 교육청 별로는 당초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전체 7.2%의 답안지가 사라졌고, 31.7%의 오류가 생겼다면서도 점검결과 당초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니요? 이 발표는 교과부 스스로가 처음으로 전국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아주 중요한 국가수준평가라고 하면서도 국가수준평가에 걸맞지 않게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고 진행했다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이번 발표를 보면, 작년에 실시한 일제고사는 누가봐도 교과부가 내세우는 국가수준 평가로서 조금도 가치가 없는 평가입니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앞으로도 계속 '평가관리 개선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합니다. 

 

'①초·중등학교 모두 표준화된 OMR카드를 사용하고, ②시험감독은 복수로 하며, ③채점도 교육청이 별도 채점단을 구성해서 일괄 채점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④결과보고도 전산시스템으로 자동 집계되도록 채점과 집계방식을 전면 개편토록 하였다.'

 

먼저 초등학생들에게도 OMR카드를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초등학생의 발달단계를 전혀 모르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발상입니다. 평가에서 OMR카드 사용은 평가를 하는 자들의 편리를 위한 것으로 중등학생들도 OMR카드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OMR카드 사용법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수능시험에서조차 잘못 기입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에게 OMR카드를 사용하게 한다는 것은 초등교육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시험 감독을 복수'로 한다는 말은 결국 교과부가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교사들은 교과부를 더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육청에서 '일괄 채점'하고 '전산시스템으로 자동 집계'한다는데, 이는 결국 교과부가 그동안 그렇게 아니라고 하던 '학교별 줄 세우기'는 저절로 실시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교과부는 고양이 쥐 생각하듯 '학생과 학부모의 평가부담완화'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내놓습니다.

 

'①초등학교 시험시간은 수업시간과 같은 40분으로 축소하고, ②전문계고는 시험과목에서 사회·과학을 제외하기로 했다.'

 

또한, 국가수준의 평가는 '학업성취도 평가'로 단일화하고, 국가가 10월에 실시하던 '초3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3월에 실시하는 '교과학습 진단평가'에 통합하여 시·도교육청이 주관하여 실시할 계획이라고도 했습니다.

 

초등학생의 시험시간을 수업시간과 같은 40분으로 해야한다는 것은 초등교육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해 보기 전에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 10월에 실시하는 초3 기초학력진단평가와 이듬해 3월에 실시하는 진단평가가 중복이 된다는 사실도 학교 현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다음과 같은 발표 내용입니다.

 

"작년에는 전수평가를 처음 실시하다 보니 현장에서 실수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금번 재조사를 통해 발견된 문제점들을 전면보완하면 올해 10월 실시될 평가에서는 유사한 문제점들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으로 실시하다보니 현장에서 실수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랍니다. 일제고사 선택권을 준 교사들을 해임하면서까지 실시한 아주 중요한 국가수준평가라면서 '처음이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것도 교과부 자신들의 실수가 아닌 '학교 현장' 실수로만 돌리고 있습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그냥 한번 해 보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그런 수준의 평가인가요? 아이들은 실험용 쥐가 아닙니다. 교과부는 '처음'과 그 뒤로 두 번째, 세 번째가 있지만, 아이들은 일생에 딱 한 번 치르는 평가입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실시하다보니 실수가 많았다'니요?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나요?

 

썩은 생선으로는 유명한 일식 요리사가 최고 성능을 가진 칼로 회를 뜬다 해도 회가 되지 않듯이, 이미 방법으로나 내용으로나 국가수준평가로서도 학업성취도 평가로서 가치가 없는 일제고사가 아무리 방법을 이리저리 보완해본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될 수 없습니다.

 

방법은 OMR카드 사용도 아니고, 복수 감독도 아니고, 일괄채점도 아닌, 일제고사식 전수 평가를 없애고 전처럼 표본 검사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몇 백억의 비용을 들여서 일제고사를 보지 않아도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은 이미 뒤처지는 학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뒤처지는 학생이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교과부가 나서면 나설수록 오히려 학교 현장에서 뒤처지는 학생을 가르칠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교과부는 뒤처지는 학생지도를 현장에서 교사들이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그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교과부는 일제고사 실시 방법에 대한 '실수'만을 얘기하고 있는데, 방법보다 더 중요한 평가문항 문제에 대해서는 쏙 빼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일제고사가 엉터리 평가였다는 교과부 발표를 보고, 국가수준평가라는 교과부 말만 믿고  이런 형편없는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준 교사들을 해임하고 파면한 교육청은 '실수'를 인정하고 교사들을 학교로 되돌려 보내야합니다.    


태그:#일제고사, #교육학기술부, #전면재조사발표, #초등교육, #학업성취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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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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