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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쉬는 날이면 어른들에게 인사를 다녔는데, 모처럼 둘이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고속도로와 관광지 모두 한산했는데요. 날은 흐렸지만, 공기도 맑고 봄기운을 완연하게 느낄 수 있는 포근한 날씨였습니다.

선운사 주차장에서 외롭게? 쉬고 있는 티고, 13살이나 먹어서 그런지 군산에서 고창까지 달리는 게 무척 피곤해보였습니다.
 선운사 주차장에서 외롭게? 쉬고 있는 티고, 13살이나 먹어서 그런지 군산에서 고창까지 달리는 게 무척 피곤해보였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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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었으니 우리도 이제는 다투는 걸 줄이자!'는 약속이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어서 둘만의 시간은 항상 행복한데요. 나들이를 할 때마다 어두운 길눈으로 13살 먹은 티코를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아내의 착실한 길잡이가 됩니다. 저는 면허증이 없거든요.

그런데 인간이라는 것이 감정의 동물이어서 안내판을 읽어주고 통행료도 챙기다 보면 고속도로 위에서도 말씨름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요. 정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여유를 가지고 먼저 입을 닫는 게 가장 좋은 처방인 것 같습니다.

이날도 고속도로 위에서 둘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뜬금없는 화제가 튀어나와 말씨름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안 되겠다 싶어 "좋은 날 분위기에 맞는 얘기를 하자고!"라며 방향을 돌렸더니 아내도 순순히 따라주었고 분위기는 급반전되었습니다. 웃기지요.

집에서 출발할 때는 백양사를 거쳐 내장산에 들러 산채비빔밥을 먹고 오려고 했는데, 중고 프린스(승용차) 얘기가 퇴직금으로까지 비약되면서 어쩌고저쩌고하느라 정읍 IC를 지나쳐버려 고창 선운사로 갔습니다.

젓갈산지 곰소의 황석어젓과 조개젓

선운사에서 돌솥밥과 장어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곰소에 들러 젓갈단지를 들러보았습니다. 단지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황석어젓과 조개젓이 생각났는데요. 마음에 드는 매장이 있어 들어갔더니 이름도 모르는 젓갈들이 단정하고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도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곰소 ‘다해젓갈’ 매장 주인아저씨, 곰소 젓갈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는데요. 조개젓의 90% 이상이 수입이라고 하더군요.
 곰소 ‘다해젓갈’ 매장 주인아저씨, 곰소 젓갈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는데요. 조개젓의 90% 이상이 수입이라고 하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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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에게 설명을 듣고 집에서 무쳐 먹으려고 조개젓 8천 원, 황석어젓 7천 원어치를 샀는데요. 아내를 힐끗 쳐다보니까 지갑을 만지작거리고만 있기에 제가 값을 치렀습니다. 매월 일정액의 주·부식비를 받는 처지이고 제가 먼저 사자고 했으니까 당연하지요. 더구나 지난달부터 5만 원이 올랐거든요.

노을의 고장 변산반도에서 천일염으로 숙성시킨 조개젓은 알을 배기 시작하는 5-6월경에 채취한 바지락을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입과 코로 느껴지는 맛이 뛰어나다고 하는데요. 소문대로 감지되는 맛과 풍미가 그만이었습니다.

주인아저씨 말에 의하면, 곰소 조개젓이 유달리 감칠맛이 하는 비결은 청정해역 위도에서 서식하는 바지락을 재료로 하고, 황석어젓 역시 맑고 푸른 칠산 앞바다에서 잡아 올리는 것을 재료로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공장에서 생산된 젓갈은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 서울 압구정점, 수원점, 대전점, 경남 진주점 등에 납품한다고 하는데요. 1년 넘게 저장하여 간수를 쭉 빼내고 곰소의 천일염에 버무려 변산반도의 청정한 골바람과 서해 낙조를 받으며 장기간 자연 숙성시켜 만든다고 합니다.

곰소는 서해바다가 보이는 어촌이며 300여 미터의 내변산 자락이 감싸고 있어 큰 강물의 유입이 없고, 주변에 공장이나 축사 등 환경오염 시설이 없어 젓갈을 만드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곰소가 젓갈산지가 된 배경에는 바지락, 해방조개, 백합, 죽합, 등 다양한 어패류가 근처 갯바닥에서 잡히고, 숭어, 도다리, 오징어, 꼴뚜기, 전어, 갈치, 밴댕이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청정해수를 활용한 천일염 생산단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내의 조개젓 무침

아내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조개젓 무침.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아내의 음식솜씨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로 고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내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조개젓 무침.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를 ‘아내의 음식솜씨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로 고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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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양념을 준비하고 무치는 동안 입에서 침이 돌았고, 몇 끼니 거른 사람처럼 언제 되느냐며 졸랐는데요. 다툴 땐 다퉈도 아내가 무친 조개젓 맛은 일품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날도 먹고 싶었던 음식이라서 그런지 코와 입으로 느끼는 풍미가 그만이었으니까요.

아내의 조개젓 무침에 들어가는 양념은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파, 다진 풋고추, 다진 양파, 통깨, 참기름 등인데요. 수입 조개젓은 무척 짜기 때문에 씻어내야 하지만, 천일염으로 숙성시킨 국내산은 삼삼하고 고소한 맛까지 곁들여져 국물을 버리지 말고 함께 무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젓갈을 무치는 순서는 먼저 적당한 크기의 그릇에 조개젓을 담고, 고춧가루와 통깨, 다진 파와 다진 마늘, 다진 풋고추를 넣고 살짝 버무려줍니다. 고춧가루와 다른 양념들이 어느 정도 섞어졌다 싶으면 다져놓았던 양파를 넣고 한 번 더 버무려주고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조개젓 무침이 완성됩니다. 단맛을 싫어하는 분들은 양파를 넣지 마세요.

잘 무친 조개젓은 매운맛, 단맛, 짠맛, 고소한 맛, 개운한 맛이 한꺼번에 느껴지면서 "과연 이 맛이로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데요. 밑반찬으로 일품이며 한 번 맛을 들이면 참지 잊지 못하고 자주 드나드는 것을 비유한 '조개젓 단지에 괭이 발 드나들 듯한다'라는 속담을 떠오르게 합니다.

밥을 한 수저 뜨고 조개젓을 집어먹으면 감칠맛이 입안에서 감돌면서 게장에 버금가는 밥 도둑이 됩니다. 팔팔 끓인 고소한 누룽지와 먹으면 나른해지는 봄날에 도망간 밥맛을 잡는 것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좋다니까 자주 드실 것을 권합니다.

대학시절부터 기숙사 생활만 했던 아내는 결혼해서도 음식 솜씨와는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반찬 때문에 속상한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40대 후반부터 조금씩 변하더니 지금은 젓갈 하나에서도 어머니 손맛을 느낄 수 있는데요. 고마운 마음으로 영원히 변하지 말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내, #조개젓, #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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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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