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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어느 작은 시골마을의 논에 피어난 자운영
▲ 자운영 꽃밭 해남, 어느 작은 시골마을의 논에 피어난 자운영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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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紫雲英)은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연분홍색 구름 혹은 연분홍색 옷감을 펼쳐 놓은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저 남도의 끝 해남의 어느 작은 마을 논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연분홍의 물결, 다가가면 구름처럼 연분홍빛은 한 걸음 멀리에서 나를 향해 손짓합니다. 연분홍 구름을 잡으려 한 걸음 한 걸음 연분홍 꽃밭을 걷다 뒤돌아보면 내가 걸었던 그곳에 연분홍 구름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비로소 공선옥 작가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산문집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운영 꽃밭에서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의 심정이 무엇인지, 왜 엄마는 자운영 꽃밭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가 첫새벽 서릿발 같은 차가운 기운에 절로 닭살이 돋는 듯이 내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서로가 있어 아름다운 존재들
▲ 자운영과 나비 서로가 있어 아름다운 존재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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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다 떠나버린 농촌, 텅 빈 초등학교는 왁자지껄했던 지난날의 메아리만 을씨년스러운 교실 복도를 타고 운동장으로 총총 걸어나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어깨를 맞대고 걸었을 좁다란 골목길은 허리 구부정한 노인네가 힘겹게 유모차를 의지하여 걸어가도 넉넉할 만큼 인적이 끊겼습니다.

도심의 지하철 환승역에선 사람에 떠밀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내리는데 이곳에서는 마늘쫑 올라오기 직전까지 자란 마늘밭에서 일하는 농부들만 얼핏 보일뿐입니다.

자운영의 보랏빛이 나비의 날개에도 물들었다.
▲ 자운영과 나비 자운영의 보랏빛이 나비의 날개에도 물들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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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다는 것, 세대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현실이 척박하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곳은 사람이 넘쳐 일자리가 없어 난린데 남도의 들녘은 넘치는데 일꾼이 없습니다.

자운영은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도 있고, 풀 전체는 약재로도 사용됩니다. 비타민이 풍부한 무공해식물이라 비빔밥 요리에 쓰면 맛도 독특하고 담백하다고 합니다. 꽃은 밀원식물로도 사랑받지만 녹비작물로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데 사용이 됩니다. 보랏빛 자운영 꽃밭이 갈아엎혀지면 이내 그곳은 초록빛 논밭이 될 것입니다. 자운영의 꽃말 '그대의 관대한 사랑'이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나의 행복'이라는 꽃말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자운영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밀원식물인 자운영은 수많은 곤충들의 잔칫판이다
▲ 자운영과 나비 밀원식물인 자운영은 수많은 곤충들의 잔칫판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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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벌이 연분홍빛 물결을 따라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부서진 파도의 파편처럼 혹은 이파리에 부닥쳐 산산이 부서지며 땅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파편처럼 어디로 날아갈지 모를 이 꽃 저 꽃을 탐하며 납니다.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서로 서로에게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삶의 관계인 것, 즉 평화의 원형을 자운영 꽃밭에서 보는 것입니다.

자운영의 꿀은 어떤 맛일까?
▲ 자운영과 벌 자운영의 꿀은 어떤 맛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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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이리도 먼 길을 오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출장길은 핑계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출장을 핑계 삼아 이곳 자운영 꽃밭에 나를 세운 것만 같습니다. 한두 개체씩 자운영을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연분홍 구름빛 가득한 자운영 꽃밭에 서 본 적은 처음입니다.

자운영밭에 누워 하늘을 봅니다. 하늘을 보니 꽃 피기 참 좋은 날입니다.
저기 길가에 벚꽃이 꽃눈이 되어 봄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갑니다. 그러나 이내 짧은 비행을 마치고 땅바닥에 떨어집니다. 그리 애써 피운 꽃을 어찌 이렇게 홀가분하게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버려야 할 것까지도 '어떻게 얻는 것인데' 움켜쥔 나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그녀의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그 제목이 와 닿는 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 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운영, #공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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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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