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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鷄肋, 닭의 갈비)은 버리자니 아깝긴 하지만, 취해봐야 실익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한중을 그런 닭갈비 같은 땅으로 생각하시는 겁니다. 결국 버리는 땅, 철군을 준비해야지요."

소설 삼국지 주인공 중 하나인 조조. 그리고 그의 신하였던 양수는 이처럼 주군의 심중을 너무 정확히 꿰뚫어 본 탓에 명을 재촉하고 말았다.

천하영웅 조조의 망설임을 불러 일으켰던 음식으로 후대에 회자되곤 했던 음식. 그런데 이 닭 자체가 서민들 주머니에 계륵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국민간식' 치킨의 가격이 간식의 가격대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국민 간식, 치킨 가격이 2만원?

저렴한 가격의 시장표 치킨.
 저렴한 가격의 시장표 치킨.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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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쉽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점의 가격상승은 꾸준하다. 업계 선두를 달리는 한 브랜드의 가격은 1만6천원에서 메뉴에 따라 1만 9천원까지, 곧 2만원 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업체마다 각종 재료와 부대비, 인건비 등 물가상승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고, 이 이유가 일견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감안한다 해도 치킨은 저렴하고 친근한 서민 음식의 대명사였기에 소비자들의 입맛은 씁쓸할 수밖에.

물론 저가형 치킨도 있다. 배달이라는 편리함만 포기한다면 1만원 밑으로도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하다. 저가형 치킨을 표방하는 몇몇 프랜차이즈가 그렇고, 무엇보다 재래형 시장에서는 5~6천원으로도 바삭한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구입할 수 있다.

"닭 자체는 우리가 더 싱싱하지요. 크기도 별 차이 없고. 우리가 7천원 정도를 받고 파는 치킨의 경우 무게가 700g 정도 합니다. 하지만 저쪽(프렌차이즈 업체)에서는 최하 1만 4천원 정도 하지요."

구로시장 입구에서 생닭과 달걀 등을 도매하며 치킨도 튀겨내는 한 상인은 최소한 닭의 신선도만은 보장할 수 있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이곳의 치킨 가격도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닭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프라이드 치킨은 한 마리는 재료의 가격에 2500원을 추가하면 된다. 가족 구성원의 수에 따라 크기를 정할 수 있으니 합리적인 편이다. 아무리 큰 닭을 튀겨내도 1만원이 넘지 않는다.

"싱거우면 소금 찍어먹으면 되고..."

치킨과 시원한 생맥주. 모든 직장인의 로망이 아닐까.
 치킨과 시원한 생맥주. 모든 직장인의 로망이 아닐까.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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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싼 것이 아니냐고 묻자, "치킨으로 마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닭과 달걀 판매가 주업"이라고 답한다. 대형 업체의 치킨 가격이 부담스러운 주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맛은 어떨까?

"맛있다고 하시는 분도 많은데… 큰 업체들만큼이야 하겠어요. 일단 그 사람들은 염지(닭에 염분을 투여하는 과정)가 들어가니까 닭이 짭조름하잖아요. 근데 싱거우면 소금이나 간장 찍어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웃음)."

아이들을 위해 치킨을 사간다는 한 주부도 맛있고 먹을 만하다며 주인의 손을 들어준다.

"브랜드 치킨이 조금 더 고급스러운 면은 있지만, 뜨거울 때 먹으면 그리 큰 차이는 없어요. 가격이 두 배가 넘는 걸 감안하면 이쪽이 더 경쟁력이 있지요. 어차피 소금 찍어먹을 걸 소금물에 미리 재 놓는 것도 싫고."

치킨의 맛은 변하고 또 변한다. 특히 업체들은 젊은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입맛을 잡기 위해 닭을 튀겨내기 전의 염지과정에 사활을 건다. 염지과정을 거치면 닭의 누린내를 잡아주고, 식어도 짭짤한 맛을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순수 옛 맛이 그립다는 이들도 있다.

동네 치킨도 경쟁력 갖추면 '대박'  

큼직하게 튀겨낸 치킨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란 튀김의 명제를 잘 풀어냈다.
 큼직하게 튀겨낸 치킨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란 튀김의 명제를 잘 풀어냈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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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림동의 평범해 보이는 한 동네 통닭집. 얼핏 대단해 보이지 않는 이곳이, 나름 방문자 수를 자랑하다는 맛 블로거들도 인정한 치킨집이다.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고 난다.

우선 중요한 가격, 얼마 전 1000원을 올려 1마리에 1만2900원이다. 100원 빠진 1만3천원. 매우 싸다고 할 순 없지만, 여타 치킨점 가격을 감안하면 적절한 가격이라 할 수 있다. 같은 가격으로 배달도 한단다. 특이하게도 큼직하게 잘린 다리와 날개가 각 3개씩이다. 잘게 자르지 않은 큰 조각은 '통닭'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킨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맛은? 얇게 입힌 튀김을 베어 물자 촉촉한 속살이 드러난다. 염지 과정을 거친 여타 닭들과 달리 짭짤함이 안 느껴지는데도 고소함은 살아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추억의 그 맛'이라며 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음식점을 경영했던 한 지인의 평가에 따르면, 튀김옷과 닭살 사이에 계란물을 발라 촉촉함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또 기름기를 확실히 제거해 내놓기에 담백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동네치킨의 승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맛을 찾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착한' 가격의 치킨이 그립다

많은 창업자들이 브랜드 치킨의 그늘로 들어서고 있다. 때로는 작은 성공을 이루기도 하지만, 프랜차이즈 본부 측에 무성의와 기형적 계약관계에 힘들어 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국내 1위의 치킨업계가 가맹점에게 적용한 불리한 약관 19개 조항을 수정 및 삭제토록 시정권고조치 당했다.

치킨을 향한 소비자들의 수요는 꾸준하다. 그리고 그 사이엔 맛과 가격이라는 함수가 포함되어 있다. 맛과 가격, 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방정식을 푸는 열쇠는 무엇일까. 경제 불황의 시기, 굳게 닫힌 시민들의 지갑은 획일화 되지 않은 개성의 맛과, 납득할 만한 가격을 기대하고 있다.

구로시장에서 만난 한 시민의 말이 농담처럼만 느껴지진 않는 시기다.

"비싸도 너무 비싸요. 이러단 닭 뼈까지 씹어 먹게 생겼어요."


태그:#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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