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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랑말을 탄 필자 부부, 필자가 탄 백마가 말썽을 부렸다
 조랑말을 탄 필자 부부, 필자가 탄 백마가 말썽을 부렸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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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사람인 걸 뻔히 알면서 수건이 또 세 개뿐이네, 이 사람들 정말 너무 하는구먼"
"그래도 간판은 그럴 듯하게 호텔이잖아?"
"호텔 좋아하시네, 여관급도 아니고 여인숙 수준인 걸"

한라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도깨비 도로와 러브랜드, 그리고 아름다운 돌공원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1층 식당에는 뷔페식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우선 저녁을 대충 먹고 3층 침실로 올라갔다. 숙소 간판은 그럴 듯하게 000호텔이었다.

그런데 먼저 씻으려고 화장실 겸 욕실에 들어간 일행이 투덜거리며 나온 것이다. 첫째 날도 그랬다. 크지도 않은 방에 다섯 사람씩 배정해서 잠자리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싸구려 여행이니 그러려니 하고 체념했었다.

그러나 한 방에 다섯 명의 투숙객이 들었으면 수건 다섯 개는 줘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 않은가. 그런데 수건을 달랑 세 개씩만 비치한 것이다. 결국 일행 한 사람이 내려가 항의를 하고서야 사람 수에 맞춘 두 개씩의 수건을 더 받아올 수 있었다.

이불과 수건까지 인색하기만 했던 불결하고 불친절한 호텔 숙소

이불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펴는 요는 방이 좁아서 세 개씩 밖에 펼 수 없으니 그렇다 해도 덮는 이불은 사람마다 한 개씩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요도 이불도 세 개씩 뿐이었다. 항의를 하며 요구했지만 겨우 한 개씩을 더 받아올 수 있었다.

"제주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니 아직도 멀었구먼, 이런 서비스 자세로는 해외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기 어렵겠어."

"여행사에서 투숙객 숫자는 확실하게 통보받았을 텐데 이불도 수건도 사람 숫자만큼 주지 않는 이런 불친절이 세상에 어디 있어!"

일행들의 불만은 높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불편한 심기는 일행 두 사람이 근처 횟집에서 사온 푸짐한 회를 안주로 몇 잔씩의 술을 마시는 것으로 해소했다. 그래도 한라산 등산을 한 날이어서 모두 피곤하여 잠에 곯아떨어질 수 있었다.

숙소 방에서 한잔하며 피로를 풀고 기분전환하는 일행들
 숙소 방에서 한잔하며 피로를 풀고 기분전환하는 일행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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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결하고 불친절했던 호텔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낸 일행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1층 식당에서 맛없는 식사를 대충 끝낸 다음 모두 짐을 챙겨 들고 버스에 올랐다. 호텔과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주인인지 지배인인지 아리송한 사람은 일행들이 모두 나설 때도 잘 가라는 인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행들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머쓱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오늘은 먼저 어디로 모실까요? 코끼리 쇼 한 번 보시죠? 재미있습니다."
버스에 오르자 가이드를 겸한 운전기사가 코끼리 쇼를 구경하라고 권한다.

"여행일정표에 조랑말 타는 곳이 있던데 조랑말은 언제 태워줄 겁니까?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이번 여행을 추진했던 친구가 나섰다. 여행사와 계약에 들어있는 무료코스는 기피하고 자꾸만 유료 관광 코스로 끌고 가려는 가이드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럼 먼저 조랑말을 타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가이드는 마지못해 조랑말 타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 양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울창한 삼나무 숲과 푸른 풀밭에서 풀을 뜯는 조랑말들이 평화롭고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먼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조랑말을 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랑말을 탄 문이용,강부임씨 부부
 조랑말을 탄 문이용,강부임씨 부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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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조끼를 입고 모자를 쓴 다음 저를 따라 오십시오"
대기실로 들어서자 곧 바로 우리들이 조랑말을 탈 차례였다. 우리들이 쓰고 있던 모자는 벗어놓고 승마장에 비치되어 있는 모자를 바꿔 쓴 다음 마부의 안내를 받아 말 타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난생 처음 타본 제주 조랑말, 별 것 아니네

조랑말 타는 곳은 사람이 쉽게 말 등에 올라탈 수 있도록 약간 높게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 부부가 가운데 자리로 들어가고 양 옆에도 우리 일행부부들이 자리를 잡았다. 아내들은 처음 타보는 조랑말이 조금 겁이 나는가 보았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무섭고 떨리네"
"나도 그래요, 말이 껑충 뛰어오르기라도 하면 어쩌지?"

아내들이 무서워하자 마부가 웃는다. 괜찮으니까 안심하고 타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말썽을 부린 건 내가 탄 말이었다. 여섯 마리의 조랑말이 나란히 서서 일행들을 태웠는데 다른 말들은 다소곳이 서서 사람을 등에 태웠다.

그런데 내가 탄 말이 무엇이 못마땅한지 코로 툴툴 콧바람을 불면서 자꾸만 머리를 주억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다른 말들과 나란히 서있던 녀석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서기까지 한 것이다. 여전히 머리를 크게 주억거리면서

조랑말을 탄 서상규, 김명순씨 부부
 조랑말을 탄 서상규, 김명순씨 부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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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옆에 서있는 친구의 말고삐를 잡고 있던 마부가 다가왔다. 마부는 조랑말을 끌고 제자리에 서게 한 다음 말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야 임마! 너 좀 맞을래? 요즘 안 때리니까 기압이 빠졌네, 가만히 있지 못해!"
마부는 손바닥으로 조랑말의 얼굴을 살짝 때리면서 하는 말이 꼭 사람끼리 하는 말씨와 같았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말이 알아듣습니까? 짐승인데"
"그럼요, 다 알아듣습니다. 얘들이랑 한 두 번 하는 말이 아니거든요"

마부는 자신 있게 말한 다음 여섯 마리 중 옆 자리 친구가 탄 한 마리의 조랑말을 끌고 앞으로 나섰다.

조랑말을 혼내며 대화하는 마부

마부가 끄는 말이 앞장을 서자 다른 말들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런데 조금 더 가자 다시 말들을 일렬횡대로 늘어세운다. 웬일인가 했더니 사진사가 앞으로 나섰다. 부부별로 나란히 세우고 말 탄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귀여운 조랑말  새끼 망아지
 귀여운 조랑말 새끼 망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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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진 찍어서 설마 서비스 하려는 건 아니겠지?"
"서비스? 어림없는 소리. 저 사진 한 장에 2만 5천 원씩이랍니다"

조랑말 타기 전에 대기실에서 먼저 조랑말을 탄 사람들이 사진 한 장에 2만 5천 원씩을 주고 받아가는 것을 본 일행이 귀띔을 해준다.

"그럼 그렇지, 우린 사진 안 찍어요, 찾아가지도 않을 사진 찍을 필요 없잖아요?"
사진사는 우리 일행들이 사진을 거부하자 돌아선다. 곧 선두 조랑말을 따라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탄 말이 또 말썽을 부린다. 이 녀석은 앞장 선 다른 말들을 따르지 않고 길가에 핀 유채꽃을 뜯어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발로 툭툭 치며 가자고 했지만 조랑말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앞장서 가던 마부가 돌아와 몇 마디 꾸짖으며 얼굴을 찰싹! 찰싹! 두 번을 때린 후에야 대열에 합류했다. 내 앞에 가고 있는 조랑말은 새끼 망아지를 거느린 어미 조랑말이었다.

귀여운 망아지는 어미 말을 뒤따라 쫄랑! 쫄랑! 걸어가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탄 말은 여전히 말썽이었다. 앞서가는 다른 조랑말을 뒤따르지 않고 계속 뒤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맨 앞에서 걷는 말을 이끌던 마부가 뒤돌아보다가 나에게 소리친다. 조랑말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라는 것이었다.

목장 마당가에 서있는 거대한 하루방
 목장 마당가에 서있는 거대한 하루방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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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짐승이라고 마구 때릴 수가 있겠는가, 엉덩이를 살짝 때려주었다. 그런데 조랑말은 여전히 입으로 툴툴거리며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자 마부가 뒤돌아보며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그 말 궁둥이를 채찍으로 힘껏 때려줘요!"

할 수 없었다. 다시 채찍을 들어 약간 힘을 주어 때렸다. 그러자 녀석이 성큼성큼 뛰어 앞서가는 말을 뒤쫓았다. 그러자 내 뒤를 따르고 있던 아내의 말도 덩달아 뛰어온다. 순간 아내는 무서운지 말 잔등의 손잡이를 힘껏 붙잡으며 허리를 숙였다.

우리들이 탄 조랑말들이 곧 처음 탔던 곳에 도착했다. 일행들이 약간 아쉬운 표정으로 말에서 내린다. 아내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무섭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뒤처졌던 말이 껑충껑충 달릴 때는 조금 무서웠다고 한다.

"조랑말 타는 거 별거 아니네,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고"
친구 부인이 매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나도 재미있었는데 달릴 때는 조금 무섭던걸요. 조랑말 등에서 떨어질 까봐."
아내도 좋았다고 한다. 비교적 키가 작은 조랑말들이 힘차게 달리지 않아 상대적으로 위험부담도 거의 없고 안심되어서 더욱 즐거운 조랑말타기가 되었던 것 같았다.

목장 마당가에서 활짝 꽃피운 동백나무
 목장 마당가에서 활짝 꽃피운 동백나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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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려 대기실로 들어가자 즉석에서 사진을 뺀 종업원이 사진의 주인공을 찾아 돈을 받은 다음 사진을 건네주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조랑말을 탄 거리는 겨우 200~300미터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조랑말을 타는 목장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하루방이 서있고 동백나무 두 그루가 붉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우리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민속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랑말, #호텔, #여인숙, #이승철, #망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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